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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망 무쌍이었던 조선후기 성리학 성리학이라고 했지만 조선후기 학문과 동의어이다. 어차피 조선후기에는 성리학밖에 제대로 된 학문이 없었기 때문에. 여담이지만 필자는 성리학을 한 번 작심하고 파 본 적이 있다. 따라서 전공자 분들 정도야 안되겠지만 대략 조선시대 성리학자들이 뭘 떠들었는지 정도는 파악하고 있다. 그 당시 조선후기 성리학을 공부하면 정말 실망했던 것은 임란 이후 수백년 동안 그 많은 선비들이 밥만 먹고 글만 쓰며 살았던 터에 도대체 창의적인 이론이 단 하나 이 시기에 나온 적이 없었다는 점이다. 물론 조선후기에도 성리학 논쟁은 몇몇 굵직한 것이 있었는데 그 논쟁들, 알고 보면 북송대 학자들 사이에 다 있던 이야기라고 하면 믿겠는가? 사실 16세기의 사단칠정논쟁도 이미 북송대 다 있었던 논쟁이 조선에서 느닷없이 재연된 것인데,.. 2025. 3. 25.
인도태평양 선사학회: 2026년 11월 https://www.ippasecretariat.org/ippa2026 Indo-Pacific Prehistory AssociationDr. Anggraeni Gadjah Mada Universitywww.ippasecretariat.org인도태평양 선사학회 Indo-Pacific Prehistory Association (IPPA) 가 2026년 11월 인도네시아에서 열리는 모양이다. 필자는 과거에 이 학회 두 번인가 참석했는데상당히 많은 학자가 모인다. 가 볼 만하다. 관심있는 분들께서는 위 링크를 따라가 보시길. 2025. 3. 24.
왕조실록에는 왜 산불이야기가 별로 없을까 요즘 산불이 너무 커서 많은 분들 상심이 크실 줄 안다. 빨리 진화되어 더 이상 피해가 없었으면 좋겠다. 각설하고, 왕조실록에서 산불을 찾아보면 생각보다 내용이 많지 않다. 산불이 많았는데 별일 아니라 생각해서 채록이 안 되었을 수도 있고, 실제로 많지 않았을 수도 있을 텐데, 어느 쪽일까? 둘 다 가능성이 있지만 필자가 보기엔 후자의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 필자가 어린 시절에도 산불은 있었다. 그때 온동네 어른들과 애들까지 모두 산으로 올라가 소나무 가지 꺾어들고 불을 두드려 껐는데지금 생각해 보면 그 산불이 요즘처럼 맹렬하지 않았던 것이일단 산에 나무가 별로 없어 무서울 정도로 타오를 수가 없었다는 생각이다. 조선시대이미 산에 나무가 없어 산불이 나봐야 지금처럼 맹렬하지 않았던 것 아닐까? 조선시대에.. 2025. 3. 24.
[한국학계의 후진성 그 또 다른 이유] 정치보다 알바! 바로 앞서 신동훈 교수께서 한국학계가 낙후를 면치 못하는 가장 심각한 이유로 짙은 정치 성향을 들었으니, 그 연원을 조선시대로까지 논급햐셨으니 나 역시 이에 이견이 있을 수 없다. 같은 맥락 혹은 비슷한 맥락에서 왜 한국학계가 후진을 면치 못하는가를 내가 지켜본 바를 기준으로 논하면 저거다. 본업보다는 알바에 열심이기 때문이다. 신 교수님이야 그 업계에 몸담았기에, 그리고 나랑은 인품에 현격한 차이가 있어 상당한 예의를 차리고 점잖게 말을 하셨지만 나는 그럴 수 없다. 태생이 다르고 인성도 다르기 때문이다. 각설하고 이에서 알바는 그 학문 본연의 연장을 가장한 학문 외적 활동을 말하는데, 물론 이런 경향이 왜 짙게 나타나는가 하는 데 대대해서는 여러 분석이 있을 수 있지마는 그건 이 자리서는 논외로 치고.. 2025. 3. 24.
한국학계는 왜 낙후하는가 요즘 중국학계를 보면그 성과가 한국보다 낫다. 네이쳐 사이언스를 넘나드는 논문이 자국 연구만으로도 쏟아져 나오고특히 필자의 분야도중국 친구들 요즘 너무 잘한다. 일본이야 그렇다고 쳐도 왜 한국학계는 중국한테도 낙후되는가?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필자가 보기엔 이렇다. 한국학계의 낙후는 사실 일제시대에 시작된 것도, 지금 새삼스럽게 쳐지고 있는 것도 아니고, 조선후기에 이미 중국과 일본 학계에 뒤떨어져 있었다. 그 차이를 지금도 못좁히고 있는 것이다. 특히 학문을 바라보는 자세에 있어 한국학계가 여러모로 문제가 많은데, 이렇게 근본이 탄탄하지 못한 이유는 결국 따지고 보면조선후기까지 이유를 소급할 수 있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학자들이 정치판을 넘본다? 이미 조선후기 우리나라 선비들의 행태가 지금까지 .. 2025. 3. 24.
깔대기 모양 두형 칠기가 등잔받침? 가야문화유산연구소가 김해 봉황동 유적 발굴성과라 해서 공개한 목제 유물 중 이른바 항아리형 목기가 나는 실은 촛대 아닐까 의심했거니와 이 의심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말해 둔다. 다만 촛대라 해서 많은 오해를 유발할 수 있음을 알거니와 내 친구 이영덕 원장 지적대로 설혹 그것이 맞다손치더라도 정확히는 등잔받침이라 해야 한다는 지적을 겸허히 수용해서 등잔받침으로 추정한다는 정도로 해 둔다. 한데 이번에 그런 제기류 중 가장 많은 칠기 목제 유물로 주목할 것이 이른바 두형斗形 목기들이라이는 생김새가 천상 깔대기 모양이라 길쭉하니 나팔형으로 벌어지고, 받침 또한 그 나팔을 엎어놓은 것과 같으니 한국고고학이 악질적인 고질, 곧 모양새만 정신 팔리고 기능에는 전연 관심이 없었던지라 뒤늦게 내가 저런 두형 칠기를 .. 2025. 3.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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