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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김태식 추천도서3》이탁오 평전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0. 9.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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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의심은 지극히 합리적이었으나 시대는 그를 이단으로 만들었다.

쉰살 이전 나는 다른 개새끼 짓는다고 따라짓는 개새끼와 다름없었다는 고백 하나로 그는 이미 형극의 길을 갔다.

이 역본은 이미 발간 당시 열화와 같은 서평을 등에 엎었지만 한때의 회오리가 아닌가 안타까와 하다가 지금 기회를 빌려 강권하노라.


지금 보니 유종원으로 석사만이 아니라 박사까지 했구나. 아예 쥐어짰구만? 



번역은 유창하다.

우리 文文 홍승직 회장님이 뻬갈 마시는 틈틈이 옮겼다 하는 전설이 있다.

일단 잡숴봐.

(2014. 9. 9)

 

*** 

 

초판 출간 직후 이 책 소개 내 기사를 소개한다. 

 

2005.04.14 17:03:37
"나는 50세 이전에는 한 마리 개였다"
분서(焚書)로 세상 불태운 이탁오 평전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투사가 되는 방식은 크게 두 갈래 정도가 있는 것 같다. 정말 투사가 되어야 한다는 열망에 의한 자발적 투사가 있는가 하면, 어찌하다 보니 그렇게 되는 수도 있다.


이지(李贄. 1527-1602). 호는 탁오(卓吾)가 있고 굉보(宏甫)라고도 하며, 탁오자(卓吾子), 이화상(李和尙), 독옹(禿翁), 백천거사(百泉居士)라고도 했다. 이름이나 호를 우리는 무심히 넘기는 경향이 있는데, 그것을 유심히 봐야 하는 까닭을  이지에게서 본다.

 

화상(和尙)이나 거사(居士)는 불교적 색채가 짙고(후자에는 도교적 색채도 농후하다), 독옹(禿翁) 또한 글자 그대로는 독수리 머리를 한 노인이란 뜻이니, 대머리이거나 스스로 머리를 깎아 승려가 된 두 가지 경우를 상정할 수 있다.

 

26세에 발을 들여놓은 관직 생활을 탁오는 54세 되던 해에 4품으로 그만두고 조용한 곳으로 낙향해 유유자적하고자 했다. 

 

탁오 이지 

 

이런 그가 환갑이 지난 62세에 갑자기 삭발을 감행했다. 삭발한 그날은 마침 여름인 데다, 두피 가려움증도 있었던 탁오는 땀 냄새도 나고 비듬까지 날려 참지 못하다가 주변 사람이 삭발하는 장면을 보고는 내친 김에 자기도 머리를 밀었다.

 

4품 관리 출신이 머리를 깎다니. 그리고 중이 되다니. 그가 머물고 있던 현(縣) 전체가 들썩였다. 특히 관리들이 난리가 났다. 풍속을 교화해야 할 교도관 구실까지 겸한 그들로서는 무엇보다 황실의 불호령이 두려웠다.

 

그렇다면 유자(儒者)로서는 결코 용납되기 힘든 이런 일을 왜  감행했을까? 그 자신이 친구 초횡에게 털어놓은 변명이다.

 

"지금 속된 무리들과 모든 가짜 도학자들이 함께 나를 이단이라고 지목하니 나로서는 차라리 결국 이단(異端)이 됨으로써 그들이 내게 허명(虛名)을 더했다는 비난을 면하게 해 주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는데, 어떤가?"

 

물론 이 말을 액면 그대로 믿을 수는 없다. 다만, 그가 살다 간 명대(明代) 중국의 지식인 사회에서는 좀처럼 보기 드문 반항적 지식인, 공자와 맹자를 깔아 뭉개고, 정호-정이 형제를 우롱하며, 주자를 능멸까지 한 이탁오가 전적인 자의에 의해 이단(異端)으로 치달은 것은 아니었다는 점을 확인하기에는 충분하다.

 

주변에서 너무나 자신을 두고 쑥덕이는 말이 많기에 그들이 원하는 대로 '나는 정말 이단이 되기로 했다'는 의미다.

 

하지만 탁오에게는 이단을 향한 강렬한 싹이 일찌감치 있었음은 부인하기 힘들 듯하다.

 

38세에 조부상을 당하고 3년상을 치른 그는 40세가 되던 가정 45년(1566), 노자에 심취하기 시작했다. 이 무렵에 또 친구 이봉양(李逢陽)과 서용검(徐用檢)의 권유로 주자학이 역시 이단시하는 양명학에 빠져들었다.

 

다른 점잔 빼는 유자들이 뒤에서 읽기는 했으나 겉으로는 외설이라고 배척한 서상기라든가 수호전을 찬미했으며, 불교 또한 열렬히 공부했다. 이런 다양한  분야를 섭렵한 다음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나이 50 전까지 나는 한 마리 개였다."

 

각성한 이 개 한 마리는 이렇게 짖어댄다.

 

"나는 이럴 적부터 성인의 가르침을 배웠으나 정작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겠다. 공자를 존경하나 공자의 어디가 존경할 만한지는 알지 못한다. 이는 난쟁이가 사람들 틈에서 연극을 구경하면서 다른 사람들의 '잘 한다'는 소리에 덩달아 따라하는 장단일 뿐이다."

 

이런 그를 결국 명말(明末) 사회는 결코 용납하지 않았다. 76세가 된 만력 30년(1602년), 탄핵받아 수감된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생전에 간행한 에세이집 '분서'(焚書)에서 이런 제목을 붙인 까닭에 대해 그는 불태워 버려야 할 책이라는 의미를 담았다고 했다.

 

우리는 곧잘 이런 말에 깜빡 속아넘어가곤 한다. 불태워 버릴 책이라면 쓸 이유도 없었으며, 설혹 그런 책을 만들었다 해도 그 자신이 태워버리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제목을 보건대 이탁오는 분명 후세가 자기를 변명해 줄 것이라는 강렬한 기대감을 안고서 분서를 썼다. 

 

순천향대 중문과 홍승직 교수가 완역한 '이탁오 평전'(돌베개)은 중국 시사 혹은 사회문화 평론가들인 옌리에산ㆍ주지엔구오 공저로서 무겁게만 느껴지던 이탁오를 국내 독자들에게 편안하게 안내한다. 

 

혹여 이 책을 읽고 이탁오의 직접 음성이 더욱 궁금한 사람은 김혜경 씨에 의해 지난해 완역된 '분서'(한길사. 전 2권)를 보라. 순서는 바꿔 역주 '분서'를 먼저 읽어도 상관없다. 589쪽. 2만2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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