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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와 함께한 나날들

《문화재와 함께한 나날들》(37) 중앙언론과 지역언론, 그 좁힐 수 없는 간극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1. 3.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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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현장 공개

 

 

 

한 분야의 소위 전문기자 급으로 오래 일하다 보면 어느 시점엔 전화 한두 통만으로도 각지의 현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대강 파악하기 마련이다. 소위 길목이라는 게 있어 이쪽만 체크하면 대략 어느 현장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 수가 있다.

언론이라는 시각에서 볼 때 문화재 현장 소식 중에 발굴 소식만큼 따끈따끈하고 잘 먹히는 기사도 드물다. 그 모든 것은 새롭기 때문이며, 이것이야말로 말 그대로 news 아니겠는가?

 

 

문화재청 보도자료 일례 

 



서울 혹은 이를 중심으로 하는 수도권에서 일어나는 발굴소식이야 어차피 중앙 몫이라 소위 ‘나와바리(영역)’ 다툼 문제가 그다지 발생하지 않지만, 그 외 지방 발굴 소식은 사정이 좀 달라 여러 모로 언론계 내부에서도 충돌을 일으키고 만다.

이는 같은 회사 내부에서도 늘 부닥치는 문제라, 그것을 누가 처리해야 할지를 두고 본사 문화부 문화재 담당이냐 혹 해당 지역 기자냐를 두고 잦은 다툼이 있기 마련이다. 내 경우는 내 욕심도 있고, 또 대강은 아는 사안이라 대체로 내가 맡아 처리했다고 생각한다.

이런 공장 내부 얘기는 지나치게 사적이라 이 정도로 퉁 치기로 하고, 이에서는 내가 몸담았던 연합뉴스를 포함하는 중앙언론과 지역언론 사이의 쟁투를 조금 논급해 두고자 한다.

발굴 현장 소식은 원칙으로는 문화재청에서 통제를 한다. 그것은 모든 발굴 관련 인허가를 이에서 독점하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이 업무 역시 지방으로 이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문화재청 보도자료 서비스 

 

 



나는 지방 이양이라는 대세는 찬성하지만 이 업무는 당분간 중앙정부가 통제해야 한다고 본다. 이 얘기도 나중에 더 자세한 얘기를 할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에서는 약한다.

어떻든 현행 문화재 발굴 행정에서는 지금도 대략 그런 것으로 알지만, 보도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하는 사안에 대해서는 문화재청이 일괄로 통제를 해서 보도시점과 발표 수위를 조절한다.

전국 급 중대 사안이라고 판단할 때는 문화재청에서 관련 보도자료를 정식으로 배포한다. 이는 풀(pool) 기사에 해당한다.

개별 언론, 혹은 개별 기자가 별도 코스를 통해 수집해 가공한 소위 특종(scoop) 기사의 대칭이다. 특종을 무에 대단한 것으로 알지만 그 어떤 경우에도 나 혼자만 쓰는 기사라는 기본 속성을 벗어날 수는 없다.

 

김제 벽골제 초낭 발굴현장



모든 발굴 소식은 정보 평등화 차원에서 차별이 존재할 수는 없다. 그런 까닭에 발굴소식은 원칙에서는 동시다발로 여러 언론사에 공통으로 배포된다. 이런 자료에 매몰된 언론 보도를 꼬집어 언론계 내외부에서는 ‘보도자료 기사’라고 하기도 한다.

문화재청이 일괄로 배포하는 이런 발굴소식은 당연히 ‘보도자료’라는 형식을 빌린다. 이 보도자료는 많은 실험을 거쳬 이제는 그 양태가 정착했으니, 조사 성과를 1천자 안팎의 텍스트로 정리하고, 그와 관련되는 도판을 첨부하며, 그 토대가 된 원본 자료, 예컨대 해당 조사 약보고서를 첨부한다.

이 세 가지가 발굴조사 관련 보도자료 문건을 구성하는 핵심이다. 한데 조사단에서는 여러 이유를 들어 대체로 첫 번째와 두 번째만으로 만족하는 일이 많지만, 나는 거의 반드시 세 번째를 요구했다. 나에게서 이런 자료 제출을 요구받은 조사원이나 조사단이 많을 것이다.

 

포항 펭수토기 발굴현장



나아가 두 번째 관련 도판 또한 저화질을 제출하는 일이 많지만, 이건 피해야 한다. 반드시 고화질을 첨부해야 한다. 내가 늘 말하듯이 사진은 고화질을 줄일 수는 있어도 반대는 성립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더불어 도판은 풍부하고 상세하며 설명적일수록 좋다. 이 점은 이 분야 종사자들은 늘 유념해 주었으면 한다.

한국 고고학 발굴 95%는 발굴 동기로 보아 소위 구제발굴에 속한다. 공사에 따른 불가피한 조사를 말한다.

그에 견주어 그런 시급성이 없이 대체로 기존에 문화재 보호구역으로 지정된 곳에 대해 보존정비 차원, 혹은 학생 교육 등의 목적을 위한 발굴조사를 학술발굴이라 한다.

 

레고랜드 예정지 춘천 중도



구제발굴은 예외가 있기는 하지만 당연히 그 조사 경비를 공사 시행자가 부담한다. 그런 까닭에 이런 구제발굴은 거의 100건이면 100건 모두 시행자는 조사 성과가 외부로 알려지기를 바라지 않는다.

괜한 화제 혹은 논란이 되면 자칫 그 현장이 보존 조치되고 그에 따라 공사 자체가 무산할 수도 있으며 그것이 아니라 해도 일정 부분 공정에 차질을 부를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 매양 이런 고고학 조사 성과는 숨기려는 공사시행자와 그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조사단이 대체로 그것을 파헤치려는 언론과는 긴장 관계를 형성하기 마련이다. 문화재청 역시 내가 보는 한 공사시행자나 조사단에 가깝지 결코 언론 편은 아니다.

 

삼척 흥전리사지



모든 발굴성과는 정해진 절차에 따라 국민에게 일반 공개되어야 하지만, 이는 문서상에 존재하는 이상일뿐 실제는 무슨 조사가 이뤄졌는지도 전연 모른 채 묻혀 버리고 지나가는 유적이 전국에 걸쳐 비일비재하다.

한데 요새는 이런 조사 결과 배포처가 지방으로 이양되는 일이 많다. 굵직한 일에 대해서만 문화재청이 개입하고, 기타 그렇지 않은 곳은 해당 지자체를 통한 배포가 증가하는 추세인 듯하다.

특히 전국 관심사보다는 지역 관심사에 국한하는 발굴의 경우는 후자를 택하는 일이 많다. 이럴 때 그 배포 홍보처는 예외없이 그 지역 언론이다.

그럼에도 전자건 후자의 경우건 언론보도에 국한할 때 항용 우선 배정이 문제가 된다. 다시 말해 중앙언론을 우선할 것인가, 지역언론을 우선할 것인가 하는 선택의 기로에 설 수밖에 없다. 특히 전국적인 관심을 끌 만한 발굴은 이 문제가 심각한 편이다.

 

울산 영축사지 



왜인가 하면, 중앙에 대한 지역의 뿌리 깊은 차별 의식이 있으며 그에 따라 특히 지역언론의 불만이 팽배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내가 봐도 우리 사회 곳곳에서는 지역 발전은 허울에 지나지 않고 언제나 중앙 지향이다.

언론 기관에 동시에 배포되는 소위 풀 기사라고 해도, 언뜻 이런 시스템이 가장 공평한 듯하지만, 그런 사안에 대해서는 언제나 중앙언론 기사가 우선 주목받는 까닭에 지역 언론에서는 지역 우선을 내세울 수밖에 없으며, 그만큼 불만이 팽배하기 마련이다.

극단적인 예를 들건대 경주에서 일어난 어떤 발굴 소식으로 김태식이 연합뉴스에서 취급한 기사와 그 지역언론 기사 중에 독자는 어떤 것을 택하겠는가?

이들은 왜 우리 지역에서 일어난 발굴 사건이 왜 중앙에서 먼저 다루어야 하느냐고 볼멘소리를 하기 마련이다. 그런 까닭에 지역언론에서는 이런 일로 해당 지자체나 발굴조사 기관들을 협박에 가까울 정도로 위협한다.

 

장수 동촌리고분



내가 매양 특정 지역에서 일어난 발굴 소식을 전할라 치면 한결같이 조사단에선 우선은 막아선다. 심지어 살려달란 말도 한다. 연합에서 먼저 나가면 우린 죽는다 난리다.

이럴 땐 곤혹스럽기 짝이 없다. 실제 이런 일로 곤혹에 빠진 조사단이 많다. 어떤 때는 나한테 먼저 정보를 제공했다 해서 지역 언론 기자들이 벌떼처럼 지자체장을 묵사발을 내고, 그에 대한 보복으로 그 지자체장 지시로 중간에 발굴단이 교체된 일도 있다.

지역 언론 얘기 나온 김에 나에게 무척이나 인상적으로 남은 역사 전문기자로 부산의 국제신문 조해훈이 있었다. 이 사람은 지역언론 기자로는 매우 드문 역사 전문으로 그 깊이에 내가 찬탄을 금치 못했다. 부산 경남 지역 이 분야 기자로는 독보적이었다.

이런 그를 동아대 고고학과 터줏대감 심봉근이 그리 아꼈다. 그가 총장이 되자 조해훈을 학교 홍보실장으로 영입했다. 이후 그가 어찌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심봉근이 중도하차 하는 바람에 그 역시 타격을 받지 않았나 걱정이다.

그러고 보니 고고학 교수로는 아마 내 기억에 한국 종합대학 사상 첫 총장 심봉근에 대해서도 기억나는 일을 남겨야겠다.

 

경주 황남동 120호분 



또 하나 언론 통제와 관련해 첨언할 것은 통제를 왜 하냐는 조사단 아우성이다. 왜 이런 말이 나오는지 내가 모르진 않는다.

더구나 요새 추세는 발굴현장 자체의 상시 개방이다. 발굴 자체가 하나의 문화현상으로 자리잡으면서 나오는 욕구다.

그런 점에서 점진적인 통제 완화 현상이 분명히 감지되는 것은 고무적인 현상이다. 한데 현장 개방과 언론 통제는 분명히 다르다.

저 취지엔 전적으로 찬동하나, 섣부른 개방은 자칫 현장에 따라선 조사 자체를 마비시킬 수도 있다. 충분한 점검과 대비가 있어야 한다고 나는 본다.

 

양주 대평리2호분 



혹여 통제의 고삐가 조금이라도 풀린다면, 그리하여 만약 내가 다시 기자가 된다면 나는 그 현장을 마비시킬 자신이 있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하는 것이니 다른 오해는 없기 바란다.

(2016. 3. 20)

***

5년 전 생각이라 지금은 바뀐 대목도 없지는 않다. 다만 큰 줄기는 지금도 생각이 같아 전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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