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찾는다고 삼층짜리 서재를 통째로 뒤졌다.
1999년 혹은 2000년 무렵 공주고 앞 어느 헌책방 갔더니 꽂혔더라.
이 서점에서는 이외에도 해방 직후 학산 이인영이 손보기 한우근 등 제자 다섯명인가를 데리고 만든 국사개론인지 하는 책도 구득하는 행운을 누렸다. 이 희귀본을 누가 내다 놨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저 공주고 60년사는 나로서는 좀 독특한 인연이 있다.
가루베 지온[輕部慈恩]이란 인물이 있다. 식민지시대에 공주고보 한문 국어교사로 재직하며 공주 일대 고분 천여기를 도굴한 자다.
그에 대한 관심은 공주 지역 역사고고학도들이 주목하던 터였다. 당시 공주박물관장 서오선 공주대 교수 윤용혁 이남석 등이 그런 움직임을 보였다.
그에 더해 최석영이 가루베에 대한 글을 쓰고 있었다.
나 역시 그 즈음 무령왕릉 발굴 30주년을 앞두고 가루베에 대한 행적 조사에 착수했다.
그러던 차에 혹여 공주고교사에 그의 행적이 나오지 않을까 해서 공주에 들른 김에 마침 저 책이 보여 구득했다. 와서 보니 그의 행적이 잔뜩 드러났다.
나는 2001년 무령왕릉 30주년 특집을 하면서 맨 먼저 가루베를 파헤쳤다.
물론 가장 중요한 근거 중 하나가 바로 저 책이었다.
이후 가루베에 대한 글을 보니 모조리 저 책을 인용하더라.
(2016. 3. 13)
***
이 책자에는 이 학교 출신자들의 회고록이 여러 편 실렸다. 김종필 역시 이 학교 출신이지만 그의 회고록은 없다.
식민지시대 이 학교를 다닌 학생들한테 그 교사 중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긴 교사가 가루베였다.
그는 이미 당시에 와박사瓦博士로 일컽어졌다. 그만큼 그는 백제고고학에 미쳤다. 그가 당시로서는 생소하기만 한 백제고고학을 개척한 원훈대신인 것만은 분명하다.
다만 그의 조사는 허가가 없는 도굴이었다는 점이 심각성을 더한다. 그가 1940년 무렵 강경여고로 옮기는데 그 이유 중 하나가 이것이었다.
이후 강경여고 교사를 뒤진다 했다가 여직 그것을 찾지 못한 상태다. 강경여고 조사를 다녀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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