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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현장

기습 공격에 당한 왕조시대 이전 이집트인 게벨린 맨 Gebelein Man

by taeshik.kim 2024. 7.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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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벌라인 혹은 게벌린 혹은 게벨린 남자[Gebelein Man]로 지칭하는 대략 5천500년 전, 고대 이집트 왕조 국가 등장 이전 이른바 왕조 이전 시대[Predynastic period] 미라들 중 한 분으로,

함께 같은 지역에서 출토한 다른 미라들과 함께 흔히 게벌린 미라[Gebelein Mummies]라는 이름으로 통용한다.

19세기 말에 이집트에서 출현해 1900년에 브리티시 뮤지엄에서 기증받아 현재 이 박물관이 소장 중이다. 

게벨라인 왕조 이전 미라 Gebelein predynastic mummies는 모두 6구 자연 미라 시체를 말한다.

당시까지 이들 미라는 왕조 등장 이전 단계 최초의 완전한 이집트 미라로 꼽힌다.

무엇보다 보존 상태가 경악할 정도로 좋아 19세기 말 영국박물관 이집트학 관리인 월리스 버지 Wallis Budge가 이집트 사막 게벨라인Gebelein(오늘날 나가 엘 게리라 Naga el-Gherira) 근처 얕은 모래 무덤에서 발굴했다. 

Budge는 같은 무덤에서 저 6구 시신을 발굴했다. 남자가 둘, 여성은 한 명이었고 나머지 1명은 성별이 불분명했다.

일부 껴묻거리는 발굴 당시 '항아리와 돌칼 pots and flints'로 기록됐으나 이들은 박물관에 인계되지 않아 행방이 묘연하다.

세 구 미라는 여러 유형(갈대 매트, 야자나무 섬유, 동물 가죽)으로 덮힌 채 발견되었으며, 이는 여전히 미라와 함께 남아 있다.

시체는 왼쪽 옆구리를 대고 누운 태아 자세로 발견되었다.

1901년 이래로 최초로 발굴된 시신(EA 32751)은 박물관에 전시 중이다.

이 미라는 원래 빨간 머리 때문에 진저(Ginger)라는 별명을 얻었다. 하지만 이 별칭은 인간 유해에 대한 최근 윤리 정책에 따라 공식으로 사용하지는 않는다.

저 미라가 발굴된 사정을 보면 이렇다.

1895년과 1896년 아비도스Abydos, 투크Tukh, 히에라콘폴리스Hierakonpolis 및 게벌라인Gebelein 유적이 발굴되었다.

1892년 이집트 고대 유물 책임자인 자크 드 모간Jacques de Morgan은 Abydos와 나카다Nakadah에서 발견된 도기가 왕조 시대 이전 것임을 증명하여 많은 유럽 고고학자의 관심을 관심을 자극했다.

각 발굴 작업이 완료될 때마다 현지 이집트 주민들은 계속해서 유적을 수색했다.

1895년에 E. A. Wallis Budge는 영국박물관을 대표해 이집트 유물 관리국과 협력하여 알바르샤흐Al-Barshah에 있는 제12왕조 무덤에서 관과 장례용 가구를 어렵게 얻었다.

나아가 도기, 창, 화살촉, 조각이 있는 돌칼, 뼈 조각상, 일부 인간 유해(주로 피부나 살이 남아 있지 않은 뼈로 설명된다) 등 왕조 이전 유물을 지역 주민들로부터 구매하기 시작했다.

1896년 Budge에게 더 많은 미라를 발견했다고 주장하는 Gebelein 주민이 접근했다.

그 시신으로 안내를 받아간 Budge는 그 즉시 그것이 왕조 이전 시대 미라로 인식함으로써 최초의 완전한 왕조 이전 미라를 확인했다.

그는 발굴을 시작해 Gebelein 가장 북쪽 언덕 동쪽 경사면에 위치한 Baḥr Bila Mâ(물 없는 강) 얕은 모래 무덤에서 총 6구 미라를 수습했다.

유일한 부장품은 성인 여성 시신과 함께 발견된 항아리와 다른 시신과 함께 드러난 고리버들, 모피, 리넨 일부 잔해였다.

왕조 이전 시대에는 시신을 대개 알몸으로 매장했으며 때로는 느슨하게 감쌌다.

이러한 매장 환경에서는 시신을 따뜻한 모래로 덮으면 시신 수분이 대부분이 빠르게 증발하거나 배수되어 자연적으로 건조되어 보존된다.

이 방법은 인공 미라화가 개발되기 전인 왕조 이전 이집트 시대에 널리 사용되었다.

이러한 마른 모래 매장에서 발생한 자연 미라화는 사후 생존에 대한 이집트의 원래 신앙으로 이어졌고 사후 세계를 위해 음식과 도구를 남기는 전통을 시작했을 수 있다는 점에서 이 발굴은 의미가 크다. 

모든 미라는 무릎을 턱쪽으로 올린 채 왼쪽으로 누워 비슷한 구부린 자세를 취했다.

중왕국 시대까지는 이처럼 죽은 사람은 옆으로 눕혀 매장됐다.

이 기간 이후에는 등을 대고 묻혔으며, 제5왕조부터는 시체가 항상 완전히 펴져 있었다. 

시신은 각각 별도 얕은 무덤에 묻혔는데, 이는 당시 이집트 매장에서 가장 일반적인 형태였다.

2012년 11월, EA 32751(게벨라인 맨)이 살해되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런던 크롬웰 병원에서 촬영한 미라 CT 스캔 결과, 이 게블라인 맨은 사망 당시 18~20세 정도였으며 근육도 잘 발달되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왼쪽 견갑골 아래에서 스캔 결과 몸에 구멍이 드러났다.

살인 무기는 견갑골 아래 갈비뼈가 부서지고 폐를 관통 할 정도로 강력한 것으로 나타났다.

부상은 길이 12cm, 폭 2cm 이상 구리 칼날이나 돌칼에 의해 발생한 것으로 여겨졌다.

이 게블라인 맨(Gebelein Man)이 기습당해 죽은 것으로 보는데 방어상 상처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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