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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양반의 호를 지어주며 서예가가 쓰다>
나는 잘 모르지만, 내 아버지 연배 분들한테 '한국남'이란 의사는 꽤 유명했다고 한다.
TV에 나와서 입담으로 사람들을 웃기고 의학 상식도 많이 알려주었다나.
그런 그가 백아 김창현(1923-1991)을 찾아 호를 하나 지어달라 한 모양이다.
서예가이자 한문학자였던 백아는 고심 끝에 《주역》에서 그럴 듯한 구절을 찾아 호를 짓는다.
그리고 이를 직접 써서 닥터 한에게 주었다.
경원經園.
《주역》의 '둔'괘에 이르기를, 군자는 경륜經綸으로써 널리 세상을 구한다 했다.
한국남 박사는 국수國手이다. 날마다 나에게 별자(호)를 구하였다.
대개 세상을 다스리는 것과 사람을 오래 살게 하는 것엔 진실로 두 가지 이치가 있을 수 없다. 그런 까닭에 이에 (《주역》의 이 말을) 취하여 호로 삼아 경원이라 부르고, 드디어 그 문설주에 써붙이노라.
1976년 동짓달 백아가 수경당에서 붓을 시험하다.
듣자니 한국남 박사는 의료사기에 연루되는 등 끝이 좋지 않았다 한다.
그래서 그의 호마저 남의 손에 넘기고 말았는지, 원래 액자표구되어있었을 글씨 상태가 퍽 험하다.
하지만 날카롭고 깔끔한 획을 구사한 백아의 필치가 역력하고, 또 받는 사람이 역사에 작으나마 이름을 남긴 이이니 흥미로운 작품임에는 틀림없다.
이런 글씨를 보여주신 소장가께 감사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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