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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아들을 낳으면 거처가 상승한 고려시대 내명부 여인들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4. 1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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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고려거란전쟁에서 현종의 여인으로 등장한 두 사람. 위가 정식 부인이고, 아래가 김은부가 피난 중인 현종한테 잘 보이려고 잠자리 시중들게 바친 딸이다. 정비는 왕자를 생산하지 못하고 일찍 죽어도, 저 후궁이 아들을 낳으니 그가 바로 고려 중흥시대를 이끈 정종인가다.

 

고려사 권4, 세가4  현종원문대왕顯宗元文大王 19년(1018) 무오년을 훑으면 이 해 가을 7월


정축일에 그리 기다린 후사 이을 왕자가 연경원延慶院에서 탄생하자 형亨이라는 이름을 내려주고

왕자를 생산한 후궁은 거주하는 공간을 원院이라 불렀지만, 이제는 궁宮이라 고쳐 부르게 하는 한편 후한 예물을 내려주었다

丁丑 王子生於延慶院, 賜名曰亨, 改院爲宮, 仍賜禮物.


고 한다. 

저에서 말하는 연경원延慶院은 중의적 의미가 있다.

첫째 장소, 둘째는 그 왕자를 낳은 어머니가 그것이다.

따라서 연경원에서 왕자가 태어났다는 말은 연경원이라는 장소에서 왕자가 태어났다는 뜻인 동시에, 그 왕자가 연경원 주인인 후궁한테서 태어났다는 뜻이기도 하다.

왕자 생산과 더불어 그 어미가 신분 상승이 발견된다. 

고려시대 왕의 여인들은 궁궐 안에 각기 거주하는 공간이 따로 있었다.

한데 그 신분이 정비냐 후궁이냐에 따라 달랐다.

후궁도 같은 후궁이 아니어서 등급이 있었다. 

고려왕조 역시 철저한 일부일처제 사회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왕한테 정식 부인은 오직 한 명이었고, 나머지는 다 후궁이요 첩이었다. 정식 부인이 아니었다. 

이 왕의 여인들은 그가 정식 부인이냐 아니면 후궁이냐에 따라 거처도 달랐다.

정비는 거처를 궁宮이라 한데 견주어, 그 바로 아래 후궁은 원院이라 했다. 그 아래로는 또 등급별 명칭이 따로 있다.

이 궁과 원의 주인을 각각 궁주宮主 원주院主라 했다. 이는 명백히 신라 사회 유습이다. 

현종은 정실 부인한테서 아들을 두지 못했다.

후궁인 연경원한테서 비로소 왕자를 봤다.

보위를 이을 왕자를 생산하니, 어머니는 아들로 지위가 정해진다는 규율에 따라 그 어미는 宮으로 격상했다.

이리 되면 왕한테 정식 부인이 두 명이 되는 셈이다. 실제 그랬을까?

이는 편법이었다. 아들을 존귀하게 만들기 위한 편법이다.

이는 왕이 죽고 나서 종묘 합사 문제, 그리고 왕릉에 어느 여인이 합장되는가에서 폭로된다.

아무리 후궁이 아들을 두어 그 아들이 다음 보위를 이은 宮이라 해도, 종묘에, 그리고 왕릉에 결코 왕과 합사될 수는 없었다. 

이로써도 고려가 일부다처제가 아님이 명명백백하다. 

이 고려시대 내명부 봉작제도가 내가 볼 때는 구멍이 숭숭 뚫린 상태다.

제법 묵직한 단행본까지 나와 있지만, 핵심을 비켜난 데가 너무나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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