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가모, 우리한테는 여전히 생소한 고장이다.
이태리 북부 잘 사는 동네, 밀라노라는 대도시 외곽 도시 비슷해서
듣자니 실제 전반으로 잘 사는 동네라 하며 아담하지만 그렇게 아름다운 곳이라 안종철 선생이 귀띰한다.
https://maps.app.goo.gl/KsxoYVJnBhP3mSrb8
꼭 그런 안 선생 말이 아니라 해도 그리스 여행을 끝내고 이태리로 넘어왔을 때,
또 북부 순행을 감행하러 나섰을 때는 저 베르가모를 들려보고 싶었다.
본래 막연한 코스로는 같은 북부 벨트에 속하는 셰익스피어 도시 베로나를 밝고선 서진을 계속해
밀라노에서 하루이틀 머물면서 저 베르가모를 들렀다가 유벤투스 프랜차이즈 시티 토리노[투린]에서 며칠을 보낸다는 계획이었다.
그 막연한 계획은 파도바 체류로 바뀌어 다 포기해야 했으나,
밀라노는 스탕달 때문에라도 가봐야 할 곳이었고, 토리노는 실상 이집트 컬렉션이 가장 졿은 박물관이 이곳에 있어 봐야 할 곳으로 점찍은 데였다.
그렇다면 왜 베르가모인가?
코로나 때문이다.
유럽 역시 이번 코로나19 사태로 박살이 났거니와 그 진원지가 실은 베르가모였다.
이곳을 시발로 대규모 감염자가 속출하면서 인류는 미증유 대재앙으로 빠져들었다.
이 작은 도시에서 하도 많은 사람이 죽어가는 바람에 신문 부고란이 특설판을 증대해야 할 정도였으니,
실은 그 현장을 내가 보고 싶었고, 그 방문에서 그때 죽어간 사람들이 떼로 묻힌 공동묘지를 보고 싶었다.
다 죽은 자식 불알 만지기라는 것 잘 안다.
그래도 언제나 그렇듯이 가 본 데가 주는 흥분보다는 보지 못한 곳이 주는 아련함이 큰 법이다.
물론 변수는 있었다.
밀라노인가? 최후의 만찬이 있다는 데가?
그쪽 관람을 알아보려고 예약을 두들겼지만, 도대체가 표가 나지 않았다.
그 예약이 성사됐더라면 나는 갔을 것이다.
나아가 애초 이번 여행 목표는 발칸반도였다.
그래서 불가리아를 그렇게 많이 들여다 봤고, 트라키아를 그리 죽도록 팠다.
이건 아마 다음으로 미루거나 영원히 이루지 못한 꿈으로 남겨야 할지도 모르겠다.
내년엔 쌩까던 영디기가 조지아를 같이 가자는데, 그쪽 행차를 생각해 본다.
물론 성사된다면 지금과 같은 그런 장기가 아니라 대략 일주일이나 열흘 정도가 될 것이다.
이런 장기 여행은 중남미만 아니라면 종을 쳐야 한다.
'이런저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진 갈무리로 스트레스 만땅이었던 오늘 (30) | 2024.12.17 |
---|---|
안경을 맞춘 날 (29) | 2024.12.17 |
코리아에 왔다고 각중에 시칠리서 터진 탄성 (32) | 2024.12.14 |
주연배우가 초장에 퇴장하는 일은 없다, 탄핵심판의 경우 (31) | 2024.12.14 |
참지 못한 국물에의 욕망 (31) | 2024.12.14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