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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현장

지들 스스로 찾아간 라오콘, 그 속내는?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5. 1.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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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콘 앞에서



장장 다섯 시간 뺑뺑이를 돈 바티칸 미술관

"세상에, 박물관 다섯 시간은 처음 아냐?"

막 바티칸 탐방을 마치고 녹초가 되어 들어온 아들놈이 동생한테 키득키득 웃으며 한 말이다. 

그랬다.

예약에 맞추어 오전 8시에 입장해 다섯 시간 죽치다가 나왔으니 말이다. 


라오콘은 생각보단 규모가 작다.



박물관은 30분 내지 1시간 관람하는 데다. 아니 그래야 한다. 

박물관을 입안하고 운영하는 사람들은 말로는 아니라고 하나 하는 짓은 박물관을 하루 종일 머무는 시설로 만들고자 하는 욕망에 사로잡혀 있다.
 
박물관은 피곤한 데다.

박물관 종사자들로 다른 박물관 가 본 사람들은 직감한다.


어느 중세 성화 앞에서



박물관 미술관이라는 데가 얼마나 피곤한 데고, 그래서 사람 살 곳이 아니며,

특히 1시간 이상 머물 수 없는 지옥과도 같은 곳이라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왜?

세상 돌아다녀 보면 박물관 미술관만큼 갑갑함을 주며, 체력 소진을 많이 부르는 데는 없다.

박물관은 피곤한 데다.

그 피곤한 데다 1시간 이상 사람을 붙잡아둔다?

실은 한 시간도 길다. 


본격 공략을 준비하며



이제 박물관은 30분을 붙잡는 시대로 가야 한다. 

문학으로 치자면 토지나 장길산 태백산맥 같은 대하소설이 아니라 조선후기 소품문으로 가야 한다.

중단편 그 어중간한 가와바타 야쓰나리 설국雪國 유키쿠니도 이제는 길다 느끼는 시대다. 

아무튼 그런 시대에 물경 다섯 시간 뺑뺑이를 돌렸으니,

제아무리 그곳이 바티칸박물관이라한들,

또 그보다 더 유명한 루브르박물관이라한들, 오늘 미친 짓 한 번 해 봤다. 

왜?

오늘이 로마 마지막 일정이요, 이탈리아 마지막인 까닭이다.


시스티나 예배당 가는 회랑



물론 향후 영영 다시 오지 않는다는 말은 아니지만, 이번 여행에서는 오늘이 실상 마지막이라,

내일은 귀국을 준비하며 이스탄불로 쉬웅 나른다. 

바티칸미술관을 왜 가야하는지를 나는 두 가지 예화로 말했다. 

왜 유명하냐 묻지 말고 아무튼 우야둥둥 미켈란젤로 시스티나 예배당 천지창조랑 같은 작가 라오콘상은 모름지기 봐두어야 하며,

그 앞에서 내가 왔다는 기념 촬영은 해두어야 훗날 쓸모가 있으니 그런 줄로만 알라 하고 말했다. 


시스티나 예배당 입성 직전



하도 세뇌교육을 해서인지, 들어서자마자 이놈들이 어쩐 일로 저 두 작품은 언제 보냐 보챘으니,

알고 보니 보고 싶다는 욕망이 아니라 빨리 그것만 보고서는 나가서 뒹굴뒹굴하겠다는 심산이었다.

지들 하고픈 일 하고 탱자탱자 놀겠다 이거라는 사실을 조금은 늦게 파악했다. 

그래서 일부러 저 두 작품은 막판에 보여주고자 했다.

오늘 뺑뺑이 잡아 돌리고선 막판에 지쳐 나가 떨어질 때 그때쯤 보여주겠다 했다. 


한 장 찍고 제지당한 시스티나



저 둘 중에선 어차피 천지창조야 관람 코스를 고려할 때 막판에 볼 수밖에 없게 되어 있다.

문제는 라오콘.

그에 이르는 코스에서 나는 이집트며 페르시아며 하는 데 정신이 팔려 사진 촬영을 하고선 자연스럽게 애들이랑은 동선이 갈라지고 말았는데,

한두 시간 지났을까 휴대폰을 보니 아들놈이 연신 통화를 눌러댔더라. 

놀라운 사실.

애들이 이미 라오콘에 가서는 지들 맘대로 기념촬영하고,

하도 많이 들이닥치는 한국가이드 관광객 틈바구니에서 슬쩍 끼어들어서는 들을 것 안 들을 것 두어 팀이나 묻어갔다는 사실이었다. 


몰카


그 전에 나는 애들한테 교육하기를 박물관 미술관 관람 좋은 방법 중 하나가 한국 단체 관광객 틈에 끼어들어 줏어듣는 일보다 좋은 방편 없다 했으니, 그걸 맘대로 이용한 것이다. 

물었다.

가이드가 어찌 설명하더냐고.

블라블라 하는데, 됐다. 절반은 흘려버려야 한다 하고 말았다.

책임지지 못할 이야기 참말로 많이들 쏟아내지 않나 싶었다. 

이제 라오콘 봤으니 다음 남은 마지막 과제 시스티나 예배당은 언제 가냐 보챘으니, 빨랑 그걸 보고 튀자 이런 말이었다.

이 무렵이면 이미 나도 체력이 바닥이 난 상태라, 그럼 이제 그걸로 땡 치자 하고 그곳으로 향하는데,

옛날에도 그랬지만, 그에 이르는 길이 얼마나 먼지, 죽는 줄 알았다.

그만큼 이미 나는 녹초였다. 


바티칸 미술관 입장을 기다리는 사람들



나아가 종래와는 관람 동선도 확실한 자신은 없으나 꽤 달라지지 않았나 싶다. 

아무튼 그렇게 해서 물경 다섯 시간에 이르는 바티칸 미술관 대장정을 마무리했으니,

이로써 이태리도, 로마도 안녕을 고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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