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5년 노예상인선 광고 발견이 배는 '약 185명의 노예를 수용할 수 있다'고 명시한 광고가 공개되었다.
이 광고는 도시 부두가 '사색 공간'으로 탈바꿈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이다.
19세기 영국 노예상인선advert 광고가 리버풀에서 발견되었다고 영국 일간 더 가디언이 12일(한국시간) 보도했다.
이에 따르면 과거 대서양 노예 무역 중심지였던 이곳은 오랫동안 감춰진 역사를 조명하는 "사색 공간contemplation space"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한다.
리버풀 흑인 역사 연구 그룹 Liverpool Black History Research Group (LBHRG)은 리버풀 국립 박물관 National Museums Liverpool 의뢰로 머지 강 캐닝 독River Mersey’s Canning Dock의 역사를 조사하던 중 1805년 7월 25일자 메티스호Metis 광고를 발견했다.
고어의 리버풀 종합 광고지Gore’s Liverpool General Advertiser에 게재된 이 220년 된 이 광고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적혀 있다.
"레이크 앤 브라운Lake and Brown에 문의하세요. 리버풀에서 건조된 약 9년 된 놀랍도록 빠른 범선 메티스호를 수의 계약으로 판매합니다. copper fastened on the stocks하며[무슨 뜻인가? on the stocks를 브리티시 잉글리시에서는 in preparation or under construction을 의미한다는데?], 매우 잘 건조되었으며, 본 법률에 따라 약 185명의 노예를 실을 수 있습니다. 현재 3번지, 해체 선착장에 정박해 있으며, 그곳에서 검사를 받을 수 있습니다.
Apply to Lake and Brown: We have on sale by private contract, the remarkably fast sailing ship Metis, Liverpool built, about nine years old, copper fastened on the stocks, is very well found and will carry by the present act, about 185 slaves. Now lying in No 3, graving dock, where she may be inspected."
그레이빙 독graving dock 또는 드라이 독dry dock은 선박을 수용할 수 있을 만큼 큰 공간으로, 선박이 입항할 수 있도록 침수시키거나 선박을 수리할 수 있도록 배수할 수 있다.
200년 동안 리버풀의 드라이 독은 대서양 노예 시대에 아프리카에서 포로로 잡힌 사람들을 아메리카 대륙으로 운반하는 데 사용된 선박을 포함해 선박의 빠르고 효율적인 유지 보수를 가능하게 함으로써 상인들의 수익을 극대화했다.
LBHRG 연구에 따르면, 18세기와 19세기에 노예상인들은 영국 시장을 위한 소비재를 실은 채 드라이 독으로 돌아갔다.
여기에는 영국산 총기와 교환된 물품들이 포함되어 갈등과 포획을 부추겼다.
1억 파운드를 들여 해안가를 개조하는 프로젝트에서 드라이 독의 역사에 따른 인명 피해가 처음으로 인정받고 있다.
이 프로젝트에는 제2 드라이 독을 대중을 위한 사색 공간으로 전환하는 계획이 포함되어 있다.
리버풀 지역 사회 단체인 Writing on the Wall, 20 Stories High, Squash, 그리고 LBHRG가 참여한 이 설계는 현재 완료되었으며, 건축 허가를 받았고 올여름 공사가 시작될 예정이다.
스튜어트는 이렇게 말했다.
"18세기 리버풀 역사를 살펴보면 '아프리카 무역을 위해 준비된' 배에 대한 완곡한 표현이 많이 나옵니다. 그리고 메티스에 대한 광고처럼 매우 직접적인 표현도 있습니다."
"선박들이 습식 부두wet docks에 들어오면, 건식 부두에 공간이 생기면 재빨리 그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수리가 진행되는 동안, 선적된 물품들은 부두에 하역되어 판매되었는데, 노예들이 생산했거나 식민지 역사와 분명히 연관된 많은 물품들이었습니다. 럼주와 면화, 커피, 설탕, 담배, 과일, 니카라과 나무Nicaragua wood(자단rosewood), 그리고 진주조개 등이 그 예입니다."
LBHRG 조사에 따르면, 메티스 광고에 이름이 나온 사람 중 한 명이 선장 존 브라운John Brown으로, 30년 동안 정기적으로 노예 무역 항해를 했는데, 이는 단 한 사람이 수천 명 노예 무역에 관여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리버풀에서 최초로 기록된 노예 무역 항해는 1699년이었다.
16년 후, 세계 최초의 상업용 밀폐형 습식 부두인 리버풀 올드 독Old Dock이 개장하면서 선박 출입이 더욱 편리해졌고, 1760년대에는 캐닝 독Canning Dock에 건식 부두가 추가되었다.
이러한 혁신과 리버풀의 위치는 이 도시가 국제 항구로서 성장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는데, 그 중심에는 잔혹한 아프리카인 노예 무역이 있었다.
스튜어트는 이렇게 덧붙였다.
"이 유적은 정말 독특합니다. 18세기 후반, 리버풀은 이 부두 덕분에 영국 노예 무역 80%를 장악했지만, 이 유적의 다층적인 역사는 사라졌습니다. 리버풀의 어느 누구도 노예 경제에서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습니다. 대서양 횡단 노예 제도Transatlantic slavery는 영국 역사의 핵심적인 부분이기 때문에 우리는 계속해서 이 문제에 대해 이야기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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