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서 신동훈 교수께서 주로 의식용 장식용 칼을 두고 하신 맥락으로 이해하거니와,
이런 칼에서 특히 중요한 것은 칼이라는 그 알맹이보다 그 거죽떼기, 곧 칼집이라는 말씀을 하신 바
위세품이라면 칼집이 더 중요하지 않았을까
위세품이라면 칼집이 더 중요하지 않았을까
우리 청동검 칼집을 보면 참 공을 많이 들이고 아름답다는 생각을 한다. 저 칼집에 꽂은 칼 도대체 몇 번이나 뽑아 사람들 보는 데서 휘둘렀을까. 일본 에도시대에는 사무라이 칼이 완전히 신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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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나는 가오라 한다.
가오 잡는다고 할 때 그 가오 말이다.
가오는 의식을 지배한다.
가오는 그만큼 중요하다.
그렇다면 지금 계속 문제 삼는 비파형동검, 이 명칭이 얼토당토 않다마는 암튼 이 개구리배 닮은 이 곡인단검曲刃短劍은 거죽떼기가 도대체 어찌 생겨먹었을까?
이 궁금증을 해결하기가 여간 쉽지 않은데, 중국 땅이건 한국땅이건 뭐 제대로 칼집에 꽂혀서 나오는 일이 없는 까닭이다.
혹 있는데 내가 놓쳤을 수도 있지만, 혹 봤다면 나한테 알려주기 바란다.
껍데기 곧 가오는 어디다 팔아먹고 암짝에도 쓸모없는 그 알맹이만 나오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이게 왜 나와야 정상이냐 하면,
이 칼이 첫째 그 지역 사령관쯤 되는 권세가 무덤에만 나오는 까닭이며,
둘째 꼭 한 자루 정도만 나오고,
셋째 여타 껴묻거리가 대체로 화려한 까닭이다.
이는 곧 비파형동검이 떵떵거리며서 권력 구가한 사람들 전유품 비슷하다는 뜻이다.
그런 놈들이 개똥폼 내려면 당연히 그 칼은 그럴 듯한 칼집에 들어가 있어야 한다.
물론 시간이 흐르면서 유기물질인 이 칼집은 다 녹아없어지고 그 알맹이만 남았다 할 수도 있겠지만,
좀체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또 그 후대 다른 의식용 칼이 발굴하는 양상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점에서 의아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얼마 전 발굴된 경산 양지리 목관묘 출토 무기류 양상이다.
보다시피 개폼 냈다.
그 개폼, 곧 가오다시는 칼이라는 알맹이랑은 관계없고 보다시피 저 칼집이다.
저 칼집만 있으면 쭉정이도 있어 보인다.
왜?
저 칼집만 씌우면 안에 찡가넣은 것이 목칼인지 돌칼인지 청동칼인지 쇠칼인지 구분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만큼 가오가 중요하다.
한데 그렇게 개똥폼내기용이라는 비파형동검에는 왜 껍데기 거죽떼기 가오다시가 없단 말인가?
도대체 왜? 왜? 왜?
[또라이 고고여행] (3) 뒤죽박죽한 분류, 체계도 없고 기준도 없다
https://historylibrary.net/entry/%E3%85%87-684
[또라이 고고여행] (3) 뒤죽박죽한 분류, 체계도 없고 기준도 없다
대략 기원전후까지 동아시아 지역 동검을 생김새별로 농가서 분류한 지도다. 저 분류가 성립하기 위한 절대 조건은 첫째 동시대 존재성 혹은 시간적 선후성이요 둘째 분류의 일관함이다. 첫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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