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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위만은 옥의玉衣를 걸쳐야 한다! 이건 지상명령이다!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5. 6.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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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남월국왕 문제文帝 무덤에서 출토한 사루옥의丝缕玉衣라 

결국 옥으로 만든 수의 일종으로 그런 옥 조각은 직물 실로 꿰맸다는 뜻이다. 

서한 시대 다른 제후국왕 무덤을 보면 금루옥의金缕玉衣라 해서 금실로 옥 조각을 꿰맨 일이 많다. 

중산국왕 무덤이 대표적이라 

결국 서한시대에 제후국왕은 옥의玉衣를 걸친다는 공식 혹은 관습이 작동함을 추찰한다. 

문제는 황제. 

이 황제 무덤은 제대로 발굴된 데가 없어 알 수가 없지만, 저런 옥의 혹은 그 비스무리한 수의를 걸쳤을 것으로 짐작한다. 

다음 문제는 위만을 필두로 하는 위만조선 국왕들.
 
사기랑 한서 조선열전에 의하면 위만조선은 초대 군주 위만을 거쳐 아들을 지나 손자 우거에 이르러, 서한에 망했다. 

3대만 있었는지, 혹은 그 중간에 다른 국왕이 있었는지는 알 수가 없지만,

3대가 100년을 지속하기에는 너무 대수가 길어 혹 그 사이에 한두 대가 탈락하지 않았나 싶다. 

암튼 저 위만을 필두로 하는 그 군주 무덤은 현재까지 종적을 감춘 채 드러나지 않았다. 

언젠가 어디선가는 튀어나온다.

그 자리가 평양?

난 아니라고 본다. 

평양일 수가 없다.

왜? 

동시대 군주 무덤이야 발견되지 않는다 해도 그에 봉사한 다른 지배 계층 무덤은 무더기로 발견되어야 정상인데

유감스럽게도 평양과 주변에서는 위만조선 시대 지배 권력층 무덤이 발견되지 않았다! 

단 한 기도 없다. 

물론 발굴조사가 철저하지 못한 책임을 물을 수도 있지만 이럴 수는 없다. 

대신 위만조선 시대에 해당하는 무덤들이 다른 데서는 무더기로 쏟아져 나왔다는데 심각성이 있다. 

요서지역을 중심으로 위만조선 시대 왕궁 혹은 그 별궁이라 볼 만한 유적이 쏟아져 나왔고 그 시대 지배계층 무덤은 수백 기 수 천기가 쏟아졌다. 

이걸 중국고고학은 언제나 동호니 예맥이니 하는 말도 안 되는 정치체로 모조리 집어넣는가 하면

심지어 진개에 의한 연나라 정벌 때 요서 요동을 다 먹은 것처럼 가장해서 이 시대에 해당하는 모든 중국색 완연한 무덤은 연나라 유산으로 간주한다. 

그걸 믿니 이 등신들아? 

각설하고 위만은 물론이고 그 보위를 이은 아들 또한 무덤이 발견된다면 저런 옥의玉衣를 걸쳐야 한다! 

왜?

이걸 구구한 말로 설명해야겠는가? 

기다려라 언젠가는 튀어나올 테니 말이다. 

내 생전이 아니라면 죽어서 나올 테니 그때를 위해 이 글을 써 둔다.

난 저들 돌탱이 같은 고고학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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