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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현장

느닷없이 패망한 야요이 마을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5. 7.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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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관점에서 유적 위치를 보아야 한다. 저때 무슨 국경이 있겠는가? 포항 건너편이다.

 
아오야카미지치, 곧 청곡상사지青谷上寺地 Aoyakamijichi Site 유적은 일본국 돗토리현鳥取県 돗토리시鳥取市 아오야초青谷町 아오야青谷에 있는 조몬 시대縄文時代 말기 이래 헤이안시대에 걸치는 복합 유적이지만, 특히 야요이 시대弥生時代 마을 유적으로 유명하다.

국도 건설 계획에 따른 구제발굴이 1998년(평성 10년) 이래 3년 3개월에 걸쳐 이뤄져 약 5만5천평방미터가 조사되었다.

전형적인 저습지 유적으로, 야요이인 뇌를 비롯한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어 '야요이의 지하박물관弥生の地下博物館'이라고도 한다. 

청곡평야青谷平野 중앙을 차지하며 당시 지형의 높고 낮음을 이용한 인간 활동 흔적이 남았다.
 

두개골님들

 
지형이 높았던 곳에서는 무수히 많은 흙구덩이가 확인되는 반면 주변 습지에서는 논 흔적이 드러났다.

야요이시대 전기 후반에 마을이 들어선 모습이며 그 중기 후반에 현저한 마을 확대가 있어 한동안 그런 형세를 유지하다가 고분시대 전기 초엽에 갑자기 모습을 감춘다.

눈에 띄는 대목은 삼나무杉 판재를 이용한 호안護岸 시설이다.

유적 남동부에서 검출된 야요이시대 중기 후반의 호안시설에는 길이 260센티미터, 폭 70센티미터 거대한 판을 여러 개 세워 말뚝으로 고정했다.

후기에 이르러 높은 지형을 둘러 홈을 쳤는데 이에서 시판열矢板列[무슨 소리야?]을 겹겹이 박아 놓았다. 이러한 호안 시설 중에는 건축 부재를 전용한 것이 보인다.
 

유적 분포양상, 그리고 인골 출토 지점



유물은 방대한 토기 말고 철기·청동기·목기·석기·골각기 등 다양하다.

유적 동쪽 도랑에서 야요이시대 후기 100개체가 넘는 약 5300점 인골이 발견되었는데, 그 중 110점에 살상흔이 보였다.

또한 두 점에서는 척추 칼리에스脊椎カリエス에 의한 병변이 확인되었다.

이것은 일본의 가장 오래된 결핵 사례다.

일본에서 처음으로 야요이인弥生人 뇌가 3인분 발견되었다.

이 뇌에서 채취한 DNA를 바탕으로 얼굴이 복원되었다.

발굴된 야요이 시대 후기로 보이는 남성 인골에 대해서, 국립과학박물관이나 국립역사민속박물관이 부계 Y염색체를 분석해 2020년 연구 보고로 발표한 결과,

5점 중 2점은 Y염색체 하플로 그룹 C1a1, 1점은 하플로 그룹 D, 1점은 하플로 그룹 O, 나머지 1점에 대해서는 「불명」(Y염색체 하플로 그룹을 특정할 수 없었다)이었다.

뇌를 꺼낸다고 짤랐나?


모계 미토콘드리아 DNA 분석 결과, 이곳 야요이시대 고인골은 현대 일본인에서도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하플로그룹인 하플로그룹 D4가 많이 검출됐다.

특히 하플로그룹 D4b2b1 및 D4b2a2가 많이 검출되었는데, D4g1a, D4a1a1, D4a2a, D4c1b1, D4c1b2, D4c2 등과 마찬가지로 현대 일본인에서도 볼 수 있는 다른 하위계통 예도 발견된다.

하플로그룹 D4 이외에서는 하플로그룹 M7b1a(특히 하위계통의 M7b1a1a1) 및 하플로그룹 N9a2(특히 하위계통의 N9a2a이지만, N9a2d도 일례 있음)가 많이 검출되었다.

그 외에는 하플로그룹 B가 4개 예(B4b1a1b, B4c1a1a1a, B4f, B5b1a2가 각각 한 개 예씩), 하플로그룹 C1a가 한 개 예, 하플로그룹 D5a1a2가 한 개 예, 하플로그룹 G2A2가 한 개 예, 하플로그룹 M9A2가 한 개 예,

그리고 이전부터 조몬인 유래로 추정되는 하플로그룹 N9b가 한 개 예, 하플로그룹 M7A2A가 한 개 예 보고됐다.
 

구미가 살짝살짝 땡긴다.

 
나아가 2021년 연구보고에서 마찬가지로 다른 5명분 남성 인골 유전자 검사를 실시한 결과, 2점이 Y염색체 하플로그룹 D(그 중 1점은 D1b까지 특정), 2점이 하플로그룹 O1b2(그 중 1점이 O1b2a1까지, 다른 1점이 O1b2a1a1까지 특정), 그리고 1점이 어느 하플로그룹에 속하는지 불명(특정할 수 없었다)으로 발표되었다. 

120cm가량의 전나무 방패에서 녹색 안료(녹토緑土)가 확인됐다. 이것은 동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녹토 사용 예다.

나아가 35점 분석糞石[똥 화석]이 출토되었다. 이것은 야요이시대 분석으로서는 가장 많다. 

이상은 위키피디아 일본어 항목을 추린 것이다. 

저에 대한 자세한 보고 혹은 그것을 토대로 삼은 연구를 내가 아직 보지는 못했다.

다만 저 기술만으로 짐작 가능한 대목은 서기 200년 무렵에 대량 폭력과 학살, 전쟁이 있었고, 그에서 몰살한 이 지역 사람들이 몰살당하고서 그 시체는 도랑에 던져졌으며 그와 함께 마을 역사는 끝났다는 사실이다. 
 

바닷가라 어업 활동 관련 도구도 당연히 많을 듯하다.

 
저들이 몰살했다 함은 저항이 있었다는 뜻이기도 하거니와, 영역 지배를 관철하려는 외부 폭력, 곧 권력이 있었다. 

왜 여자들까지 다 죽였을까? 저 멸망에는 증오가 깔렸다. 

이런 폭력적 결말이 꼭 저 마을에서만 일어났을까? 아니었을 것이다. 

서기 200년 무렵 폭력의 실체, 이것이 궁금하지 않은가? 

저 도토리현은 한반도 동해안을 기준으로 삼으면 일본 열도 상륙지점이다. 

저를 우리가 연구해야지 않겠는가? 

앞서 그 출토 인골 얼굴 복원 소식을 전한 김에 생각나서 거칠게 정리해 둔다. 

 

1800년전 도토리현을 누빈 야요이 여인

 

1800년전 도토리현을 누빈 야요이 여인

약 1,800년 전 일본 열도 한 구석을 살다간 여성 얼굴이 최근 복원됐다. 지난 3월 20일, 도취현 도토리현鳥取県 도취시 도토리시鳥取市 아오야 가미지치 역사공원Aoya Kamijichi Historical Park이라는 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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