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대학 동창 중에선 인류사 대량 학살현장만 찾아다니는 이가 있다.
그제는 아이히만 이야기를 하는데, 그가 독일이 패망하고 숨어든 곳이 아르헨티나라고 하면서 왜 아르헨티나로 갔는지, 페론주의와 곁들여 설명하는데 나루호도 나루호도를 연발했다.
난징 학살현장을 댕겨온 그가 올해 중인가는 아르메니아를 다녀온다 한다.
그런가 하면 같은 동창 중에 세상 요지경한 요지경스런 음악은 다 헤집는 친구가 있다.
내가, 그리고 다른 친구들이 우리가 좀 알 만한 음악을 소개하라 하면 보란 듯이 어디서 보도 듣도 못한 음악을 툭 던진다.
어디서 이런 자료를 찾느냐 하니 롤링스톤이니 하는 옛날 음악잡지를 뒤진다 한다.
우리가, 그리고 나 역시 예외는 아니어서 쉬 잊는 점이 이른바 덕후로 상징하는 저런 각 분야 전문가는 실은 아득히 저 먼 곳 어딘가가 아니라 바로 내 주변에 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내가 일상까지 속속들이 너무 잘 안다는 이유로 가장 값싸게 평가절하하는 이가 바로 그 아주 가까운 친구다.
조금만 벗어나면 그가 바로 해당 분야 세상에서 가장 전문하는 사람인데도 말이다.
찾아보면 바로 내 주변에 있는 사람이 제일하는 전문가다.
이름만으로 어디 어줍잖은 외국인 연구자 불러다가 해외 석학 초청?
웃기는 작태 그만하고 그런 석학 바로 내 주변 내 친구 중에 있다는 사실 잊어서는 안 된다.
예수도 제 고향에서는 등신 취급받았다.
왜? 어릴 적부터, 코흘리개부터 너무 잘 안다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잊은 점이 있다.
그런 예수도 고향을 떠나 어디서 무얼 하고 다녔는지는 모르지만, 혹자는 사막에 가서 혼자 쇼를 하기도 한 모양이다마는
암튼 내공 내실 단단히 다져 적어도 야부리에 관한 한 언터처블 넘버원이 되어 있었다는 사실이다.
한 제국을 창건한 유방도 그랬다.
이 친구 동네 이장이라, 본래 망나니 그쪽 동네 건달이었다.
하지만 이 건달이 무슨 능력이 있는지를 그 주변에서도 제대로 몰랐다.
그는 인재발굴의 일인자였다.
그는 언제나 새로운 인재를 발탁할 적에는 우선 개망신부터 줬다.
일부러 벌개 벗고 손님을 맞기도 했고, 고주망태인 것처럼 행동하기도 했다.
저가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면밀히 지켜보고선 쓸 만한 놈인지 아니면 밥이나 한끼 먹여 돌려보내야 하는지를 판단했다.
그렇게 발탁한 놈도 끝까지 갈 놈, 적당한 시점에 내쳐야 하는지를 끊임없이 의심하고 시험했다.
이야기가 옆으로 다시 새려 한다.
암튼 내가 찾는 전문가는 저 현해탄 건너 일본에, 태평양 건너 미국 아이비리그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내 주변에 내 곁에 내 친구 중에 있다.
괄목상대는 해외 석학이 아니라 내 주변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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