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무흐 공작 줄리아노 데 메디치 상[Portrait of Giuliano de' Medici, Duke of Nemours]은 1526~1534년 미켈란젤로가 제작한 높이 1.68m짜리 대리석 조각이다.
피렌체의 산 로렌조 대성당 Basilica di San Lorenzo 에 있는 메디치 예배당 Medici Chapel 장식 중 하나다.
느무흐 공작 줄리아노 데 메디치 Giuliano de' Medici (1479-1516) 무덤 중앙 조각이며 이상화한 그의 초상이다.
높이로 보아 실물 크기였을 것이다.
느무흐 공작 줄리아노 데 메디치는 로렌초 1세 Lorenzo the Magnificent 의 셋째 아들이자 교황 레오 10세 Pope Leo X 의 형제다.
그는 선장으로 표현되며 두 명의 우화적인 인물인 낮과 밤이 그의 발 앞에 있다.
이에서 줄리아노 데 메디치(Giuliano de Medici)는 로마 장군 같은 갑옷을 입었으며 손에는 교회 지팡이로 보이는 지팡이를 든 모습이다.
다른 한 손에는 자비를 상징하는 동전 한 닢을 들기도 했다.
미켈란젤로는 저와 같은 군인 복장을 통해 젊은 공작이 군사 업적이 뛰어남을 이상화하고자 했다.
하지만 그의 재임 기간은 매우 짧았고 이렇다 할 영광도 없었다.
띨빵 군주였다.
고인과는 전연 상관없는 모습이었다.
돈 준다는데 뭔 짓인들 못하겠는가?
미켈란젤로는 우르비노 공작 Duke of Urbino 로렌초 데 메디치 Lorenzo de' Medici 동상이 완성된 후인 1526년 무렵에 줄리아노 동상 작업을 시작했다.
이 조각은 미켈란젤로가 피렌체를 떠난 1534년 이전에 완성되어야 했다.
1533년에는 조반니 안젤로 몬토르솔리 Giovanni Angelo Montorsoli 한테 모든 마무리 작업을 맡겼다.
감실에 삽입된 이 작품은 고대 로마 장군처럼 옷을 입고 앉은 젊은 공작을 보여주며, 조르지오 바사리 Giorgio Vasari 가 지적했듯이 "우울한"인 로렌조와는 대조적으로 자부심을 느끼는 태도를 보여준다.
그렇다면 저 공작 실제 면모는 어땠을까?
공교롭게도 그 유명한 라파엘로가 남긴 초상이 있다.
이 모습이 훨씬 실제에 가까웠을 것이다.
무슨 강인함? 무슨 육체파?
그건 그렇고 이 사람은 두 위대한 르네상스 작가의 손끝에 남았으니, 영광이라 해야 할까?
뭐 당시엔 물주였으니깐 그런 생각이나 했겠는가?
그건 훗날의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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