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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삼국지는 "서書"인가? "지志"인가? by 김영문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4. 10.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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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수가 삼국지를 처음 편찬할 때는 아마 세 나라 역사에 위서魏書, 촉서蜀書, 오서吳書라는 이름을 붙이고 통일된 체제의 총서 형식으로 구성한 뒤 위서, 촉서, 오서를 각각 독립된 책으로 발간하여 따로 유통시킨 것으로 보인다.


* 몇 가지 증거가 있다. 우선 구당서舊唐書 경적지를 살펴보면 삼국지 중에서 위국지魏國志 30권은 ‘정사正史’ 부문에 편입했지만, 촉국지蜀國志 15권과 오국지吳國志 21권은 ‘편년編年’ 부문에 편입했다.
 
만약 삼국지를 처음부터 한 부의 책으로 편집하여 유통했다면, 그것을 고의로 분리하여 서로 다른 부문 목록에 수록할 이유가 없다.


* 또 삼국지를 처음 판각한 송宋나라 판본을 살펴보면 그것을 한 부의 책으로 합쳐서 편집했음에도 ‘판각 어명 첩문牒文’을 촉서 첫머리에도 편입했을 뿐 아니라, 그 목차까지도 ‘첩문’과 같이 수록했다.
 
이는 본래 위서, 촉서, 오서가 독립된 책으로 편집·유통되던 때의 형태를 그대로 반영한 양식임이 분명하다.
 
이렇게 분리되어 유통되던 판본을 북송 진종眞宗 함평咸平 6년(1003) 국자감에서 한 부의 책으로 합간合刊했고, 이 판본이 이후 모든 삼국지 판본의 조본祖本이 되었다.


* 그렇다면 진수가 처음 삼국지를 편찬할 때 세 나라 역사의 제목을 어떻게 명명했을까?
 
삼국지 송각본宋刻本을 보면 그 일단을 짐작할 수 있다. 현재 송대의 각 판본을 살펴보면 각 권 첫머리 맨 위에 해당 권卷의 제목이 있고, 그 아래에 삼국 각 부문의 역사서의 명칭으로 위서, 촉서, 오서라는 제목이 붙어 있으며 맨 아래에 이 세 역사서를 총괄하는 제목으로 국지國志 일~육십오一~六十五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무제기제일武帝紀第一  위서魏書  국지일國志一
---유이목전제일劉二牧傳第一  촉서蜀書  국지삼십일國志三十一
---손파로토역전제일孫破虜討逆傳第一  오서吳書  국지사십륙國志四十六


* 즉 진수는 삼국 각 역사의 제목을 위서, 촉서, 오서라 불렀고, 이 세 나라 역사를 모두 총괄하는 제목은 국지라고 불렀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 국지가 세 나라 역사를 포괄하므로 ‘세 나라의 국지’라는 의미로 『삼국지』라는 통합 명칭도 일찍부터 널리 쓰였던 것으로 보인다.


* 예컨대 진서 진수전에 이미 진수가 “위, 오, 촉 삼국지, 모두 65편을 편찬했다.(撰魏、吳、蜀 三國志, 凡六十五篇.)”라는 기록이 있고, 송서 배송지전裴松之傳에도 “주상이 [배송지로 하여금] 진수의 삼국지에 주注를 달게 했다.(上使注陳壽 三國志)”라는 기록이 있으며,
 
북위의 위서魏書 권43 엄릉전嚴棱傳에도 “마침내 진수의 삼국지에 옛날 훌륭한 사관의 기풍이 들어있다고 언급했다.(遂及陳壽三國志有古良史之風.)”라는 기록이 있다.
 
이로써 국지 또는 삼국지는 통합 명칭으로 쓰였고, 삼국 역사의 부분 명칭은 위서, 촉서, 오서였음을 알 수 있다.


* 또 흥미로운 사실은 남북조 북위北魏 시대에 양조梁祚가 위서, 촉서, 오서로 분리·유통되던 삼국지를 통합하여 국통國統이라는 명칭도 쓴 적이 있다는 것이다.
 
즉 삼국지나 국지라는 통합 명칭 외에 국통이라는 명칭도 쓰인 적이 있으며 삼국지를 합간하기 위한 시도가 일찍부터 있었음을 알 수 있다.


* 그런데 문제는 북위北魏의 역사서 위서魏書가 나오면서 발생했다. 위서는 북위가 멸망한 뒤 북제北齊의 학자 위수魏收가 편찬한 책으로 남북조시대 북위의 역사를 기록한 총 124권 기전체 단대사斷代史다.
 
북위의 역사서 제목을 위서라고 붙이게 되자 어쩔 수 없이 삼국지의 위서와 혼동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 특히 삼국지는 북송 때 한 부의 책으로 합간될 때까지 각각 세 부의 책으로 분리되어 유통되었으므로 제목만 봐서는 북위의 위서와 삼국지의 위서를 분간할 수 없게 되었다.
 
이 때문에 구당서 경적지에서는 기존 삼국지 위서를 위국지魏國志, 촉서를 촉국지蜀國志, 오서를 오국지吳國志라고 기록했다.
 
당시에 이미 널리 쓰이던 삼국지 통합 명칭 국지에다 삼국의 구체적인 명칭을 덧붙여 북위 역사서 위서와 혼동을 피한 것이다.


* 이러한 경향은 더욱 강화되어 북송 때 삼국지를 판각할 때는 각 권 제목 아래에는 옛 명칭인 위서, 촉서, 오서라는 제목은 남겨두었지만 모든 낱장 판심에는 위지魏志, 촉지蜀志, 오지吳志라고 명기했다.
 
이것은 새로운 전통이 되어 원元, 명明, 청(淸)에 이르기까지 지속되었고, 이 번역본 저본인 ‘사고전서본’ 삼국지에까지 이어졌다.


* 따라서 지금은 이러한 새로운 전통에 따르고 북위의 역사서 위서와 혼동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삼국지 각 부문의 제목을 굳이 위서, 촉서, 오서로 부를 필요는 없다고 본다.
 
오히려 위지, 촉지, 오지로 명기하는 것이 역대 학자들의 고심에 부응하고, 본래 삼국지라는 명칭의 의미에도 어긋나지 않는 방향이 아닐까 한다.


*** Editor's Note ***


김영문 선생 말마따나 이를 보면  [위지]를 꼭 [위서] 로 바꿀 필요는 없다는 뜻이 되겠다.


삼국지 체제의 특징 by 김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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