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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욕망의 변주곡 (4) 남색男色과 파천황의 마복자摩腹子

아래 원고는 2010년 11월 6일 가브리엘관 109호에서 한국고대사탐구학회가 '필사본 <화랑세기>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주제로 개최한 그해 추계학술대회에 '욕망의 변주곡, 《화랑세기》'라는 제목을 발표한 글이며, 그해 이 학회 기관지인 《한국고대사탐구》 제6집에는 '‘世紀의 발견’, 『花郞世紀』'라는 제목으로 투고됐다. 이번에 순차로 연재하는 글은 개중에서도 학회 발표문을 토대로 하되, 오타를 바로잡거나 한자어를 한글병용으로 하는 수준에서 손봤음을 밝힌다. 앞선 연재 글들은 '욕망의 변주곡'이라는 키워드로 검색 바란다. 


3. 남색男色과 파천황의 마복자摩腹子


MBC에서 《화랑세기》를 주된 텍스트로 삼아 《선덕여왕》을 제작한다고 하고, 그러면서 내가 회원으로 몸담은 신라사학회로 드라마 제작진이 ‘학술자문’이 들어왔을 때, 나는 저 극심한 근친혼 신라사회를 공중파 방송이 어떻게 소화할 수 있을까가 몹시도 궁금했다. 사실 신라가 아버지 어머니가 같은 형제자매, 그리고 아버지와 딸, 어머니와 아들을 빼 놓고는 아무리 근친이라도 혼인을 할 수 있는 근친혼 사회라는 점은 《화랑세기》 출현 이전에도 널리 알려진 사실이었다. 하지만 막상 공개된 《화랑세기》는 이런 예상을 훨씬 더 뛰어넘는 근친혼 사회임을 보여준다. 근친혼뿐만 아니라 언뜻 보기에 친한 사람들끼리는 아내나 첩도 주고받는 사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불러낸다. 


이런 보기로 《화랑세기》 출현 이전에는 철석같이 한 사람에 대한 다른 표기로 알았던 용수龍樹-용춘龍春 형제가 있다. 《화랑세기》 출현을 통해 기존 사서에 보이는 두 표기가 동일한 사람에 대한 이칭異稱이 아니라 실은 각기 다른 사람으로 형제임을 비로소 알 수 있게 되었다. 이는 《화랑세기》 진위를 판별하는 데도 매우 막중한 의미를 갖는데, 《화랑세기》에서 두 사람으로 갈라놓았다고 해서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보이는 龍樹 龍春이 두 사람으로 드러난 것이 아니라, 《화랑세기》에 이 둘을 다른 사람으로 기술했는데, 이를 보고 다시금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두 표기를 보니, 이들 텍스트 자체에서도 이미 둘은 다른 사람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는 사실이 중대하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미실로 열연한 고현정. 미실의 남자관계는 복잡다기하다.



이에서 한 발 더 나아가 《화랑세기》는 형인 용수龍樹에게 본부인은 진평왕의 딸로서 선덕善德의 언니인 천명공주天明公主라 하고, 이 둘 사이에 태어난 아들이 바로 김춘추金春秋라 했거니와, 용수가 먼저 죽으면서 그 아내인 천명과 아들인 춘추를 동생인 용춘龍春에게 맡겼다고 했으니 이 점이 비상하기만 하다. 이런 사건 전개를 정작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용수를 일찍 죽여 퇴장시킨 데서 한 발 더 나아가 박예진이 扮한 천명天明 또한 비교적 이른 시기에 퇴출시키고 말았다. 천명은 퇴출 이전, 과부가 된 몸으로 춘추를 키우면서 김유신을 흠모하는 여인으로 설정했거니와, 그러면서 같은 남자를 마음에 품은 선덕과 묘한 긴장 관계로 설정하기도 했다. 


내가 정작으로 궁금했던 점은 이 용수-용춘 문제를 드라마가 어떻게 서술할 것인가였지만, 예상대로 이를 《화랑세기》에 기초해서 끌고 갈 수는 없었다. 상상해 보라, 이 21세기 백주 대낮에 형이 죽어 형수를 아내로 취한다는 구성이 어찌 용납될 수 있겠는가? 모르긴 해도, 드라마 제작진은 용수-용춘 문제를 이렇게 해결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는 결국 아무리 우리가 신라사회를 이해하려 한다 해도 다름 아닌 현대의 도덕이 그것을 가로막는 일대 장애물임을 여실히 보여준다. 현대의 도덕윤리, 그것이 괴물 《화랑세기》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가장 큰 장애가 된다. 


이런 현대의 윤리 관념은 의외로 명색이 역사학, 그것도 지금으로부터 적어도 천년 이상을 거슬러 올라가는 고대 한국을 주된 연구대상으로 하는 이들에게 강박强拍으로 작동하는 듯하니, 그것이 《화랑세기》의 진위眞僞를 판별하는 가장 큰 준거점 중 하나가 된다는 사실이 나로서는 의외로만 다가온다. 위서론僞書論에 선 어떤 논자는 《화랑세기》에 보이는 마복자摩腹子를 보고는 질겁하면서 《화랑세기》 자체가 파천황破天荒이라는 말을 내뱉었으며, 또 다른 위서론자는 이 마복자를 포함해 “《화랑세기》가 보여주는 특색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신라사회를 호색好色적으로 그리고 있다”는 점을 비롯해 색공色供과 사통私通, 동성애同性愛, 증蒸 등을 거론했다. 이들의 논점에서 문제는 그렇기 때문에 이런 성향, 혹은 내용을 담은 《화랑세기》가 가짜라는 것이다. 


나로서는 의아한 점은 《고려사》와 《고려사절요》, 나아가 그들이 그토록이나 《삼국사기》 《삼국유사》만큼이나 자주 끌어다대는 《일본서기》, 혹은 산더미 같은 중국의 문헌들을 통톡하면 그와 같은 판단이 얼마나 섣부른지를 싱겁게 판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그들이 쉽사리 의혹의 눈초리를 던진 동성애 문제를 먼저 보기로 하자. 


《화랑세기》에는 남성간 동성애를 직접 지칭하는 용양龍陽 혹은 용양신龍陽臣이라는 표현 외에도, 폐嬖 혹은 폐신嬖臣 혹은 폐아嬖兒, 그에 더불어 잉신媵[臣]과 같은 말이 여러 번 보이거니와 남성 간 관계에서 이 말은 예외 없이 동성애 관계임을 암시하거나 명시한다. 한데 이런 말이나 표현이 《고려사》와 《고려사절요》에도 자주 보인다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여기서는 그런 사례 중 하나로 《고려사절요》 제2권 목종선양대왕穆宗宣讓大王 기유 12년(1009) 조에 보이는 기록 하나만을 들기로 하거니와, 이에 의하면 왕의 폐신嬖臣으로 지은대사좌사낭중知銀臺事左司郞中 유충정劉忠正, 합문사인閤門舍人 유행간庾行簡 등이 있었다 하면서 이 중 유행간에 대해서는 “얼굴이 아름다우므로 왕이 그를 사랑하여 남색男色으로 총애했다”고 한다. 이런 사례를 비교하면 남색의 대표주자처럼 인식된 공민왕이 결코 당시로서는 성도착증 환자가 아니었음은 명백하다. 


나아가 중국사에서도 동성애에 빠진 인물을 심심찮게 만날 수 있으니, 한漢 무제武帝 유철劉徹과 악사樂士 이연년李延年의 관계는 널리 알려진 고사이며, 《漢書》 잉행媵幸 傳은 아예 전한前漢시대 제왕의 남색 행각 열전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면 《안자춘추晏子春秋》에는 제齊 경공景公이 너무나 아름다워 그의 신하가 왕을 탐냈다는 이야기도 수록될 정도다. 


고대 중국뿐만 아니라 고대 일본, 특히 나라시대에는 승려 집단에서 男色은 꽤나 광범위했다는 사실은 이제 새삼스런 내용도 아니다. 이런 동성애에 대한 공시적, 통시적 접근을 통해 볼 때, 《화랑세기》에 나타난 동성애가 결코 평지돌출이거나 파천황이므로 믿을 수 없다는 주장은 성립할 수 없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김춘추 엄마 천명공주 역으로 열연한 박예진. 천명공주는 애초 용춘한테 맘이 있었지만, 그의 형 용수한테 시집가야 한 비운의 여인이다. 엄마가 말귀를 잘못 알아들어 엉뚱한 남자한테 시집보냈다.



《화랑세기》를 통해 비로소 모습을 드러낸 마복자摩腹子라는 관행도 그런 말 자체가 이곳을 통해 처음으로 드러난 것은 분명한 듯하지만, 그렇다고 이에서 보이는 마복자摩腹子 제도 또한 통시적, 공시적 접근을 시도하면 결코 파천황일 수 없음이 드러난다. 내 보기엔 한국 고대사학계에서 《일본서기》의 신인도, 혹은 인용도를 높인 결정적인 사건은 1971년 공주 무령왕릉 발견, 발굴인 듯 하니, 이곳에서 발굴된 그의 묘권墓券에 의하면, 《삼국사기》에서는 도대체 보이지 않는 무령왕의 출생 연대가 《일본서기》에 보이는 그것과 흡사 일치할 뿐만 아니라, 그의 이름 또한 묘권과 《일본서기》가 동일하게 사마斯麻인 데 비해 《삼국사기》는 ‘斯摩사마’라고 기록한 것이다. 이 묘권墓券의 출현은 《일본서기》를 새삼 돌아보게 만들었으니, 이 자리에서는 무령왕 출생과 관련한 기록만을 적출하여 그것을 《화랑세기》와 비교하기로 한다. 


묘권에 의하면 영동대장군寧東大將軍 백제百濟 사마왕斯麻王은 나이 62세 때인 계유년癸酉年(523) 五月 병술삭丙戌朔 七日에 붕崩했다 했으니, 이로써 역산하면 그의 출생 연대는 461년이 된다. 다만, 이에서 조심할 대목은 이 무렵 나이는 이른바 滿 나이가 아니란 점을 염두에 둘 때 그의 정확한 출생년은 462년이 된다. 


한데 《일본서기日本書紀》 웅략기雄略紀 5년 신축辛丑 조에는 사마斯麻의 출생담이 수록됐거니와, 이에 의하면 사마는 이해 6月 병술삭丙戌朔에 축자筑紫의 각라도各羅島라는 곳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묘권墓券이 말하는 그의 향년享年을 역산한 461년과 비록 1년 차이를 보이기는 하지만, 대단히 신뢰할 만한 기록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이로써 《日本書紀》가 한편에서는 섣불리 버릴 수 없는 기록임이 명확해졌다. 


《일본서기》에서 내가 주목하고자 하는 바는 이와 정확히 연관된다. 바로 이 대목에서 언급한 그의 출생담이다. 이 웅략기雄略紀 5년 조 그의 탄생담에 의하면, 조금은 기이하게도 사마斯麻는 아버지가 둘이다. 생물학적 아버지(Biological Father)는 엄연히 백제百濟 가수리군加須利君, 즉 개로왕蓋鹵王이지만 그를 출산할 당시 그의 어머니는 군군軍君, 즉 곤지昆支의 아내였으므로 곤지昆支는 양부養父가 되는 셈이다. 한데 곤지昆支는 개로왕蓋鹵王의 동생이다. 더욱 기이하기만 한 대목은 개로왕이 자기 씨를 베어 만삭이 되고 산달을 가까이 둔 婦를 동생인 곤지에게 내렸다는 사실이다. 개로왕은 곤지를 일본에 파견하면서 당부하기를 “나의 잉부孕婦는 산월産月이 가까워졌으나 만약 (일본으로) 가는 길에 아이를 낳는다면 그 아이는 배에 태워 속히 서울로 보내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때가 이해 4월 7일이었다. 이런 몸으로 원래 남편인 개로왕의 씨를 밴 여인은 시동생이라 할 수 있는 곤지의 부인이 되어 함께 일본으로 가다가 그 해 6월 1일 축자筑紫의 각라도各羅島에 이르러 아들을 낳으니 그가 바로 사마斯麻라고 한다. 


무령왕 묘. 이에 의해 무령왕 탄생 연대를 안다.



무령왕릉 묘권墓券을 통해 《일본서기》는 새롭게 사료로써 부각되긴 했지만, 지금도 여전히 개로왕이 자기 아이를 밴 婦를 동생에게 내렸다는 기록에 대해서는 여전히 이렇다 할만한 신뢰를 보내지 않는 것으로 안다. 하지만 곰곰 생각해 보면, 사마왕斯麻王 출생 연도가 실제와 부합하는 것으로 판정이 난 마당에 그것을 기록한 같은 대목에 보이는 다른 출생담은 왜 이런 푸대접을 받아야 하는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나아가 만삭인 자기 아내를 동생에게 내려 주었다는 언급도 지극히 상식 수준에서 생각해 본다면, 이 시대, 혹은 이런 기록이 채록된 시대에는 분명히 그런 습속이 있었을 것이라고 상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이야말로 파천황이다. 이와 같은 습속이 고대 일본사회 내부에서는 물론이요, 인근 고대 한국과 중국에서도 쉽사리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적어도 내가 지금까지 훑어본 바로는 그렇다. 


여자테니스 선수들인 Greet Minnen (BEL, l.)과 Alison van Uytvanck (BEL, r.). 둘은 동성애 연인일 것이다.



하지만 이런 사정은 《화랑세기》가 출현하고, 그에서 마복자摩腹子 제도가 출현함으로써 우리는 비로소 그것을 파천황의 영역에서 건져내는 디딤돌을 마련했다. 이 마복자에 대해서는 비교적 많은 논급이 있었거니와, 이종욱의 견해를 빌린다면 다음과 같다. 


“신라의 독특한 제도로 임신을 한 여자가 보다 높은 지위를 가진 사람으로부터 사랑을 받은 후 낳은 아들을 마복자라고 한다. 높은 지위의 세력들은 정치적인 지지자를 갖게 되고 마복자는 후원자를 갖게 되는 제도이다. 왕들도 마복자를 가졌고 화랑들이나 낭두들도 마복자를 가졌다.” 


이런 정의 혹은 설명에 대해서는 내 나름의 보충과 산삭刪削을 가하고 싶으나, 그럴 여유가 없어 그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를 기약하기로 한다. 다만 이 자리에서는 《화랑세기》가 말하는 마복자 제도의 백제식 버전이 개로왕과 곤지 사이에 있었던 일이라고 비로소 할 수 있다는 점만을 상기하는 것으로 만족하고자 한다. 


여담이기는 하지만, 나는 개로왕이 동생 곤지에게 넘겨주었다는 만삭의 婦를 정비正妃로 보지 않는다. 틀림없이 후궁이었을 것이다. 나아가 곤지에게도 이 여인은 정부인正婦人이 아니라 분명히 첩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사마斯麻는 적어도 생물학적으로는 개로왕의 서자庶子일 것이다. 이런 庶子가 나중에 동성왕을 대신해 권력을 장악하고 대권까지 거머쥐게 된 데 대해서는 추후 전고專考를 약속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