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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주대첩] (14) 또 하나의 제국, 승리가 초래한 변화

by taeshik.kim 2024. 2.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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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주대첩 이후 고려가 구축한 외신 세계

 
귀주대첩이라는 고려의 완승, 거란의 참패로 끝난 제3차 고려거란전쟁은 잦은 전쟁과 아슬아슬한 평화로 점철한 두 왕조 관계를 재편했을 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국제질서 또한 지형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 이로부터 거란이 망하기까지 100년간 이른바 평화의 시대가 열렸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거란의 팽창도 이 전쟁과 더불어 끝이 났다. 정복왕조 거란이 정복을 멈췄다는 것은 현상 유지를 의미하며, 그것은 곧 평화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선언하는 위대한 팡파르였다. 물론 크고 작은 충돌은 없지 않았고, 거란 내부 또한 이런저런 반란 움직임이 없지는 않았지만, 종래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한 위대한 평화의 시대가 열렸다. 

이 평화의 시대는 고려가 피로써 이룩한 것이었다. 거란은 이 참패를 숨기고자 하고 분식하려 했지만, 어찌 그 소문이 나지 않겠는가? 고려의 대승은 고려를 둘러싼 국제질서도 재편했다. 

이 위대한 승리는 동북아에서 고려를 작은 중화로 만들었으니, 이내 거란과 국교를 정상화하고 다시 고려가 그 외신으로 들어가는 했지만, 그 내부에서는 힘의 균형이 깨져 고려는 한반도를 중심으로 그 영역으로 확실히 포섭되지 아니한 탐라를 복속하고, 서북면과 동북면 방면 여진의 종주국으로 한동안 군림하게 된다.

왕국 단계는 아닌 변방이기는 했지만, 울릉도 또한 이른바 한국사 영역으로 포섭되어 들어오기 시작한 시점이 바로 이때다. 

여진이 금이라는 또 하나의 제국으로 재편되기 이전까지 백년 동안 고려는 저들의 또 다른 종주국이었다. 여진 각 부족은 다투어 고려 조정을 찾아 공물을 바치기 시작한 것이다.  

고려가 대승한 그해 1019년 3월에는 당장 철리국鐵利國 추장酋長 나사(那沙가 사신 아로대阿盧大를 보내서  말을 헌상하자 그 두 달 뒤에 고려는 그 답신으로 철리국에 사신을 보내 보빙報聘하고, 그 다음달에는 동여진東女眞 추장 나사불那沙弗이 무리를 거느리고 내조來朝했다.

같은 해 7월에는 서여진西女眞 추장 아라불阿羅弗이 무리를 거느리고 와서 말을 헌상했는가 싶더니 8월에는 동여진 모일라毛逸羅가 무리를 이끌고 내조했다. 이 모일라는 고려는 관계官階와 관직을 올려주었다고 하니, 조공 책봉 관계였던 것이다. 
 
그해 12월에는 동흑수東黑水 추장 구돌라仇突羅가 찾아와 말과 병장기를 헌상했는가 하면 이듬해 1월에는 흑수말갈黑水靺鞨 알시경閼尸頃과 고지문高之門 등 24인이 와서 토산물을 헌상했다.

다시 같은 달 서여진 추장 고두화高豆化가 와서 토산물을 헌상했다. 그 다음달에는 동여진東女眞 검불라黔弗羅가 와서 말을 헌상했다.

그해 3월에는 여진 귀덕장군歸德將軍 불나弗那가 내조하고, 4월에는 동여진 추장酋長 달로達魯가 무리를 이끌고 와서 쌀 300석을 헌상한 일도 있다. 5월에는 흑수말갈黑水靺鞨 오두나烏頭那가 와서 토산물을 헌상했다.

그 다음달에는 불내국弗柰國 추장 사가문沙訶問이 여진 사람 노울달奴鬱達을 통해 토산물을 헌상하고 그 이듬해 1021년 1월에는 흑수말갈 추장 아두타불阿豆陁弗이 와서 말·활·화살을 헌상한다. 그 다음달에는 동여진 회화장군懷化將軍 마저개摩底介가 내조하고 다시 그 다음달에는 서여진 모일라毛逸羅와 나홀라가 와서 말과 초서貂鼠 가죽을 헌상한다. 

다시 같은 달 철리국鐵利國이 아예 사신과 표문을 보내어 예전과 같이 귀부하게 해 달라 한다. 그해 7월에는 탐라耽羅라 방물을 바치고 동여진 흑수黑水 추장 거울마두개居蔚摩頭蓋가 온다.

그 다음달에는 동여진東女眞 실빈實彬과 아리고阿梨古가 내조하고, 그 다음달 9월에는 흑수말갈 소물개蘇勿蓋와 고지문高之門이 와서 토산물을 헌상한다.

그 다음달엔 동여진과 서여진 추장 아로대阿盧大와 아개阿蓋가 나란히 내조하고 그 이듬해 1월에는 흑수 추장 사일라沙逸羅와 만투불曼投弗이 내조한다. 2월에는 서여진 저라這羅가 토산물을 헌상하고 탐라도 토산물을 헌상한다.

1022년 5월에는 흑수말갈 소의疎意가 찾아오고, 7월에는 동여진과 서여진 아라대阿羅大 등이 오고, 8월에는 철리국 추장 나사那沙가 흑수黑水의 아부간阿夫間을 보내어 토산물을 헌상한다.

이런 행렬이 줄을 잇는다. 고려가 탐라를 품고 여진 각 부족을 품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이 바탕을 이해해야만 왜 금나라 시조가 신라 출신임을 자랑스레 선전했는지를 이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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