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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귀주대첩 spinoff] 요사遼史 이국외기二國外記가 적록한 귀주대첩

by taeshik.kim 2024. 2.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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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나라 때 편찬된 요사遼史는 24사 혹은 25사 중에서도 그 졸속성이 가장 심각하다는 비판을 듣거니와, 실제 내가 통독해 봐도 그런 측면이 없지는 않다. 하지만 그렇다 해서 이 이상 가는 거란 통사는 지구상에 없다. 

이 요사는 외국열전이 독특해서 유독 고려와 서하西夏 두 나라는 이국외기二國外記라 해서 별도로 독립한 점을 들 수 있다.

그만큼 거란 국제교류사에서 두 왕조가 차지하는 위치가 막강한 까닭이다.

물론 거란한테 가장 중요한 이웃 왕조는 宋이었지만, 그 송은 본사가 따로 있으므로, 이렇게 두 왕조만은 따로 독립해서 이렇게 특기한 것이다. 

이 이국외기 중 고려를 보면, 두 왕조가 전쟁을 비롯해 교류한 역사를 편년체 식으로 정리했으니, 그 요긴함이야 일러 무엇하겠는가? 
 

 
이에는 당연히 우리가 흔히 귀주대첩이라 부르는 1018~19년 고려거란전쟁 제3차전 기술도 있다. 그 대목만을 적출해 소개한다.

요사 중에서는 권107 열전 제35다.  


(개태開泰) 7년(1018), 조칙을 내려 동평군왕東平郡王 소배압蕭排押을 도통都統으로, 소허열蕭虛烈을 부통副統으로, 동경유수東京留守 야율팔가耶律八哥를 도감都監으로 삼아 다시금 고려를 치게 했다. 12월, 소배압이 다茶·타陀 두 강 사이에서 싸우다가 우리 군이 불리해져서 천운天雲과 우피실右皮室 두 군대가 익사자가 많았으며 천운군天云軍 상온詳穩 해리海裏와 요련장遙輦帳 상온詳穩 아과달阿果達과 객성客省 작고酌古와 발해渤海 상온詳穩 고청명高清明 등이 모두 진영에서 죽었다.

8년(1019), 조칙을 내려 소배압이 고려를 정토할 때 저지른 죄를 조목조목 따지고는 석방했다. 공이 있는 장교는 벼슬을 더 높여주고 전몰자 장교의 부인들은 더하여 봉해줬으며 그 자식들은 등용했다. 남피실南皮室 군교軍校로 공이 있는 자들한테는 의물衣物과 은견銀絹을 차등 있게 하사하고 금백金帛을 내어 효리肴里와 날가涅哥 두 해군奚軍한테 하사했다.

8월, 낭군郎君 갈불려曷不呂 등에게 명령을 내려 여러 부족 병사를 이끌고는 대군大軍을 모아 고려高麗 정벌에 동참토록 했다. (고려왕) 왕순王詢(현종)이 사실을 보내어 방물方物을 바치겠다고 구걸했다.

9년(1020), 야율자충耶律資忠이 돌아오면서 왕순이 항복하는 표문을 올리자 왕순의 죄를 풀어줬다. 

(開泰)七年,詔東平郡王蕭排押為都統,蕭虛烈副統,東京留守耶律八哥為都監,復伐高麗。十二月,蕭排押與戰於茶、陀二河之間,我軍不利,天雲、右皮室二軍沒溺者眾,天云軍詳穩海裏、遙輦帳詳穩阿果達、客省酌古、渤海詳穩高清明等皆沒於陣。八年,詔數排押討高麗罪,釋之。加有功將校,益封戰沒將校之妻,錄其子弟。以南皮室軍校有功,賜衣物銀絹有差,出金帛賜肴里、涅哥二奚軍。八月,遣郎君曷不呂等率諸部兵,會大軍同討高麗。詢遣使來乞貢方物。九年,資忠還,以詢降表進,釋詢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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