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대신영玉臺新詠 권9에 한 성제 때 동요 2수[漢成帝時童謠歌二首]라 해서 전한 말기 성제 때 민간에서 부른 동요 두 가지가 수록됐으니
그에는 다음과 같은 서문이 있다.
한漢나라 성제成帝의 조황후趙皇后는 이름이 비연飛燕이라 후궁에서 가장 총애를 받으니 항상 황제를 따라 출입했다.
당시 부평후富平侯 장방張放 역시 아첨으로 총애를 받아 기문지유期門之游라 일컬어졌다.
그런 까닭에 노래에 이르기를 「장공자張公子는 수시로 황제를 알현하네時相見」라 한 것이다.
비연飛燕은 질후가 심했으니 성제는 (정식 황후한테서 혹은 다른 후궁들한테서) 아들을 두지 못했다.
그런 까닭에 이르기를 「황손을 쪼네啄皇孫」、「꽃이 피었지만 열매가 없다華而不實」고 말한 것이다.
왕망王莽 스스로 일컫기를 漢 황실을 대신하는 이는 土德을 숭상하니 색은 황색을 숭상한다했거니와 그래서 이르기를 「황작黃雀」이라 한 것이다.
비연이 마침내 폐사廢死하니 그런 까닭에 「사람들한테서 동정을 샀다為人所憐」고 한 것이다.
漢成帝趙皇后名飛燕,寵幸冠於後宮,常從帝出入。時富平侯張放亦稱佞幸,為期門之游。故歌云:「張公子時相見」也。飛燕嬌妒,成帝無子,故云:「啄皇孫」、「華而不實」。王莽自云:代漢者德土,色尚黃,故云:「黃雀。」飛燕竟以廢死,故「為人所憐」者也。
그 첫 번째 노래는 다음과 같다.
제비야제비야 꼬리 함초롬한데
장공자는
수시로 임금 만나네
나무 대문에 청동 문고리 달게 되었으니
제비 날아들어 황손을 쫀다네
燕燕尾殿殿,張公子,時相見。
木門蒼狼根,燕飛來,啄皇孫。
두 번째 노래는 다음과 같다.
계수나무 꽃이 피었지만 열매 맺지 않고
노란 참새만 그 우에 둥지 튼다네
옛날엔 부러워했지만
지금은 불쌍히 여기네
桂樹華不實,黃雀巢其顛。
昔為人所羨,今為人所憐。
저 조비연趙飛燕은 출신이 비천했다가 느닷없이 벼락 출세를 했으니 황후도 쫓아내고선 그 자리를 꿰찼다.
하지만 자기 동생을 후궁으로 들였다가 동생한테 결국 쫓겨가서 골방에 쳐박힌다.
비연飛燕은 본명이 아니라 훗날 얻은 이름이다.
몸매가 하도 가늘어서 날아가는 제비 같다 해서 이렇게 일컬은 것이다.
양귀비가 툰실이 계열 미인인데 견주어 비연은 그 정반대 건너편에 위치하는 빼빼로형 미인이었다.
달기는 어떨까? 이 여인은 외모에 대한 기술이 없다.
첫 수 燕燕尾殿殿에서 燕燕이라는 말이 조비연을 지칭한다.
둘째 수에서 주목할 대목은 계수나무가 꽃은 피었지만 열매가 끝내 없었다?
이 비유가 훗날 신라시대로 치고 들어오는데 , 그 유명한 선덕여왕 지기삼사知幾三事 중 하나인 모란 이야기 배경이 된다.
이에 의하면 당 태종 이세민이 모란 그림과 더불어 그 씨를 보냈지만, 여왕은 그렇게 심은 모란꽃이 향기가 없을 줄 알았다.
왜?
그 모란 그림에 나비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를 배필이 없는 자신을 이세민이 기롱한 것이라 했지만 천만에.
그런 뜻이 아니라 외려 거꾸로 남자가 있었지만 후사를 이을 아들을 두지 못했다는 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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