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 내 계정에서 과거의 오늘을 뒤지니 6년 전 오늘, 그러니깐 2014년 10월 23일 나는 나주에 있었다.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가 나주 정촌고분이라 하는 삼국시대 고분 발굴성과를 공개하는 날이었기에 그 취재를 위해 현장을 출동한 것이다.
문화재 담당 기자들이 이렇게 현장을 행차한다는 것은 발굴성과가 녹록치 않은 까닭이다. 그에서 이제는 꽤 유명해진 용코 머리 금동신발 한 켤레가 출토했다.
그 얘기는 잠시 뒤에 다루기로 하고, 우선 이 정촌고분이 어떤 곳이며, 어째하여, 무슨 목적으로 발굴조사에 들어가게 되었는지를 살피고자 하니, 아래 기사는 그 편린을 엿보게 한다.
2013.11.27 09:17:01
한변 40m 삼국시대 영산강유역 최대급 고분 확인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 나주 정촌고분 조사…벌집형 무덤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한변 길이 40m에 달하고 공중에서 내려다보면 정사각형. 현재 남은 높이 11m에 이르는 봉분에서는 구조로 보면 돌방(石室), 돌덧널(石槨), 옹관(甕棺)에 이르는 각종 매장시설이 지금까지 모두 8기가 발견된 이른바 '벌집형고분'.
삼국시대 영산강 유역에서 현재까지 확인된 고분 중에서는 규모가 최대이고 네모진 평면에 봉분 윗면은 편평하게 만든 초대형 방대형(方臺形) 고분이 전남 나주에서 발견됐다.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소장 이주헌)는 나주시 다시면 복암리에 있는 나주시 향토문화유산 제13호 정촌고분(丁村古墳)을 발굴조사한 결과 이런 사실들을 확인했다고 27일 말했다.
현재 발굴작업이 진행 중인 정촌고분은 현재까지 조사결과 6세기 전반 무렵에 축조한 고분으로 "입지와 규모, 봉분 겉을 마감하는 시설 등에서 지금까지 조사된 영산강 유역 고분 중에서 최고 수준의 권위를 보여주는 것으로 평가된다"고 덧붙였다.
정촌고분은 복암리 잠애산(해발 112m) 서쪽 기슭에 축조했다는 점에서 평지나 낮은 구릉에 위치한 인근 복암리 3호분을 비롯한 영산강 유역 다른 고분들에 비해 우월한 입지와 탁월한 조망권을 확보한 까닭에 규모 또한 상대적으로 거대하게 보이는 효과가 있다고 연구소는 설명했다.
조사 결과 고분 규모는 짧은 변 37.3m, 긴 변 40.0m, 봉분 높이 11.6m로 드러났다. 하지만 고분 정상부는 후대에 일부 훼손됐을 가능성을 고려하면 원래 봉분 높이는 13m가량 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봉분 겉에는 흙이 흘러내림을 방지하고 장식 효과도 내기 위해 깐 돌 시설인 즙석(葺石)과 봉분 둘레를 돌아가는 석축(石築) 시설인 호석(護石), 그리고 이런 석축 시설들을 지지하는 긴 네모꼴 돌인 장대석(長大石)이 봉분 북쪽과 서쪽 경사면의 중하위 지점에서 확인됐다.
조사단은 "즙석은 일부만 남았지만 원래는 경사면 전체에 깔았을 것으로 본다"면서 "이런 즙석을 사용한 고분은 영산강 유역을 비롯한 가야 일부 지역에서 확인된 바 있지만 이번처럼 즙석과 호석 형태의 석축 시설, 그리고 이를 지지하는 장대석 등이 함께 발견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라고 말했다.
현재까지 정촌고분에서는 시신을 안치하는 매장시설로 돌방(石室), 돌덧널(石槨), 옹관(甕棺) 등의 다양한 묘제(墓制) 8기가 확인됐다. 쉽게 말해 봉분 하나에 무덤이 벌집처럼 들어찬 것이다.
영산강 유역에서는 비교적 흔한 이런 무덤을 벌집형 고분, 혹은 아파트형 고분이라 부르기도 한다.
매장시설 8기 중 봉분 정상부에 있는 돌덧널과 옹관 등 6기는 대부분 훼손된 상태다.
하지만 남서쪽 경사면에서 발견된 굴식돌방무덤(橫穴式石室)과 남동쪽 바닥 부근에서 확인된 돌덧널무덤은 비교적 원형을 유지한 까닭에 앞으로 이에 대한 조사가 기대된다고 연구소는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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