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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 THESIS

[낙서하도洛書河圖](아청阿城 지음, 김영문 옮김, 글항아리, 2023. 06) by 김영문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3. 6.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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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년이 넘게 걸려서 책이 출간되었다. 이 책을 번역할 때 너무 재미 있어서 번역은 내버려두고 중국어 원서를 이틀만에 독파한 기억이 난다. 그만큼 지적 자극이 강했던 책이다.

지금 뒤적여보니 그 때 열정이 새삼 떠오른다. 그 느낌을 [옮긴이의 말]에 적어두었으므로 여기에 주요 대목을 가져와서 페친 여러분께 소개한다.(아직 서점 배본 전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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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청은 여기에서 더 나아가 북극성 중심의 천극신 신앙 체계를 바탕으로 중국 선진철학의 논리와 특징까지 규명해내려 하고 있다. 아청의 설명은 이렇다.

상나라는 천극신 신앙을 신봉한 모권(母權) 사회다. 그러나 주나라에 이르면 상나라의 천극신 신앙은 계승했지만 부권(父權)이 모든 권력의 중심에 놓인 사회가 된다.

역(易)도 상나라는 곤(坤)을 중시하는 『귀장』을 썼지만 주나라는 건(乾)을 중시하는 『주역』을 썼다. 모권 사회는 음(陰), 유(柔), 약(弱), 허(虛), 자(雌), 하(下) 등의 가치를 숭상하고, 부권 사회는 이와 반대로 양(陽), 강(剛), 강(强), 실(實), 웅(雄), 상(上) 등의 가치를 숭상한다.

이로 인해 주나라에서는 부권 중심의 전쟁과 폭력과 패권이 만연하면서 천극신 신앙도 무너져 내린다. 주나라가 천극신 신앙을 잃고 통치 권위를 상실하자 예악이 붕괴되면서 짐승 집단보다 더 극악한 사회가 도래한다.

춘추전국시대 제자백가의 등장은 주나라가 천극신 신앙 체계를 잃어버리는 시기와 맞물린다. 그 중 공자와 노자가 선진철학의 각성을 대표한다. 공자는 현실에서 인(仁)과 예(禮)를 수단으로 사회 질서의 회복을 추구하면서 궁극적으로 인간의 자유의지가 실현된 태평성대를 소망한다.




이에 비해 노자는 좀 더 복고적인 회귀성 각성을 추구한다. 즉 부권 중심의 주나라 질서를 벗어나 모권 중심의 상나라 질서로 회귀하려 한다. 그것은 바로 천극신 신앙에 바탕한 현빈(玄牝)의 세계다.

순자를 거쳐 이사와 한비에 이르는 법가는 공자의 예를 이어받긴 했지만 공자가 추구했던 자유의지를 이해하지 못한 나머지 공자 사상을 소외시키고 이질화하여 전쟁과 패권을 추구한다.

아청은 위의 논리를 풀어가는 과정에서 다음과 같이 실로 놀라운 주장을 펼친다. 공자는 성악론자다. 극기복례란 인간의 동물성 연원에서 출발한 논리다.

문(文)이란 자원 점유와 자원 분배 행위에 대한 제한이다. 무(武)란 인간의 선천적인 동물성이다. 하늘은 양(陽)이 아니라 음(陰)이며, 오히려 땅이 양이다.

장자는 심미(審美)가 아니라 심추(審醜)의 의미를 최초로 발견한 사람이다.

이 주장들 중에는 이미 개론적인 문제 제기가 된 주제도 있지만 모두 우리의 지적 호기심과 영감을 자극하는 명제가 아닐 수 없다.



3
이 책의 마무리에 해당하는「동아시아 문명에 대한 추측」에서 아청은 더욱 대담한 상상력을 발휘한다.

동아시아의 벼농사 문명(稻作文明)은 남중국해, 동중국해, 황해, 발해 등 지금의 바다 밑 대륙붕에서 기원했고, 그것이 중국, 한국, 일본으로 상륙하여 동아시아 특유의 문명을 이뤘다는 것이다.

아청은 이 도작문명의 공통 종교가 바로 북극성을 숭배하는 천극성 신앙이라고 한다. 그런데 어떻게 바다 밑에서 벼농사가 기원할 수 있단 말인가?

마지막 빙하기까지 지금의 동아시아 대륙붕이 모두 육지였다는 사실에 근거를 두고 있다. 이건 콜럼버스의 달걀 같은 논리일 뿐이지만 지금의 바다에 막힌 상상력을 넓혀놓고 보면 참으로 많은 것들이 다시 보이게 된다.

특히 아청은 근래에 중국 동남 해안 지역에서 발굴되는 선사문명 유적은 주위의 자원 조건이나 경제 여건으로 볼 때 그곳에서 발생하기 어려우므로 그 문명의 영역을 대륙붕까지 확장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물론 이에 대한 타당성 여부는 논란거리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의 대담한 상상력은 타성에 젖은 우리의 사고를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더욱 흥미로운 점은 이처럼 석기시대로부터 비롯된 천극신 신앙의 도안이 사라지지 않고 지금도 생생하게 살아 있다는 사실이다.

아청은 중국 서남쪽 소수민족 먀오족과 이족 등의 전통의상에서 「낙서」와 「하도」 부호를 찾아냈을 뿐 아니라 천극신 신앙과 관련된 다양한 도상(圖象)까지 찾아냈다.

그리고 그것을 중국 선사시대 유적에서 출토된 유물 및 상·주 청동기 문양과 비교하여 일치점과 유사점을 확인한다.

이 책의 올 컬러 사진은 모두 이런 천극신 신앙과 관련된 도상들로 채워져 있다. 문자 텍스트보다 훨씬 많은 양이라 어쩌면 무슨 전시회의 도록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 책의 이미지는 단순한 볼거리가 아니라 아청의 대담한 상상력을 뒷받침하는 훌륭한 증거 역할을 한다.

이는 아청의 분방한 상상력과 함께 이 책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이기도 하다.

......




5
문화대혁명이라는 극악무도한 폭력을 겪은 아청은 개인의 자유의지와 현빈의 세계를 지향한다. 그의 입장에서 지금의 동아시아 대륙붕은 현빈이 살아 숨 쉬는 거대한 천극신의 골짜기인 셈이다.

『노자』의 ‘곡신불사(谷神不死)’라는 말이 이보다 더 잘 어울리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 듯하다. 이런 그가 폭력과 패권과 중화 중심의 논리를 비판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가 제시한 도작문명권도 동아시아 각국의 평등한 자유의지 실현을 궁극적 목표로 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과연 아청의 뿌리찾기(尋根) 작업의 끝은 어디일까?

이 책을 읽고 번역하는 과정에서 오랜만에 받은 지적 자극으로 가벼운 흥분 상태에 처해 있었다. 좀 더 냉정하게 판단해보면 아청의 주장에는 몇몇 논리적 비약이 포함되어 있다.

그가 채택하고 있는 도상학적 방법도 겉으로 드러난 형상의 유사성에 근거하여 독단적인 결론을 도출할 위험성이 있다. 하지만 이 책 본문에서 드러나듯 그의 상상력은 전혀 터무니없는 것이 아니다.

나름의 근거와 논리에 입각하여 설득력 있는 결론에 도달한다. 따라서 이 책을 통해 타성에 젖은 우리의 사고와 상상력의 벽을 두드려 보는 것도 전혀 의미가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이 혹시 앞으로의 지적 비약에 작은 계기로까지 작용할 수 있다면 벽돌을 던져 옥을 얻는(抛磚引玉) 망외의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을 번역하면서 계속 머리에 떠오른 또 하나의 인물은 바로 이 책의 기획자 노승현 선생이다. 노승현 선생과는 그동안 많은 작업을 함께 했다. 그가 기획한 책을 번역할 때마다 항상 그의 밝은 눈에 놀라곤 한다.

이번은 더더욱 노 선생의 혜안에 탄성을 그칠 수 없었다. 예민한 직감과 담대한 추진력으로 짧은 순간에 이런 책을 건져올리는 걸 보면 그의 공력이 예사롭지 않음을 느낄 수 있다. 늘 감사의 마음을 갖고 있다.

글항아리의 여러 식구들도 이 책을 아름답게 편집하기 위해 불철주야 노고를 아끼지 않았다. 나의 많은 번역서가 이들의 땀방울로 세상에 나왔다.

출산의 고통을 묵묵히 감내해온 글항아리 식구들에게도 다시 한 번 마음 깊은 고마움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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