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마누라 죽이기 한 장면
임진왜란 어간을 살다간 조선의 지식인 어우당(於于堂) 유몽인(柳夢寅, 1559∼1623)의 《어우야담(於于野譚)》에 나오는 일화 중 한 토막이다.
예로부터 교화하기 어려운 이가 마누라다. 남자 중에 강심장인 사람이라도 몇이나 부인을 두려워 않을 수 있으리오? 옛날에 어떤 장군이 10만 병사를 이끌고 드넓은 들판에서 진을 치고는 동서로 나우어 큰 깃발을 세우니, 하나는 푸른색이고, 다른 하나는 붉은색 깃발이었다. 장군이 이윽고 군사들에게 거듭 말했다.
“마누라가 두려운 자는 붉은 깃발 아래 서고, 두렵지 않는 자는 푸른 깃발 아래 서라.”
10만 군사가 모두 붉은 깃발 아래 모여 섰는데 유독 한 놈만 푸른 깃발 아래 섰다. 장군이 전령을 시켜 그 이유를 물으니 답이 이랬다.
“제 마누라가 항상 저에게 경계하기를 ‘남자 셋이 모이면 반드시 여색을 논하니 남자 셋이 모인 곳에 당신은 일체 가지 마시오’라고 했습니다. 하물며 지금 10만 남자가 모여 있지 않습니까? 이에 감히 마누라 명을 어기지 못해 푸른 깃발 아래 홀로 섰나이다.”
하긴 오죽 마누라가 무서우면 마누라 죽이기에 나서겠는가?
그나저나 이 인용문을 보면, 분명 남자 셋만 보이면 반드시 여색을 논한다 했거니와, 그러고 보니 승리 단톡방 사건이 그 유래를 따지면 참으로 유구하구나.
이에 수록된 또 다른 일화다.
나라가 화평한 시절, 향리들은 모두 제라립濟羅笠이라는 삿갓을 썼으니 백제·신라시대의 방립方笠이다. 유순(兪洵)한테는 아끼는 여종이 있으니, (제라립을 쓰는) 향리의 마누라였다. 유순이 일찍이 그 방에 몰래 들어가니 유순의 마누라가 몽둥이를 들고 따라 들어왔다. 유순이 벽에 계라립이 걸린 모습을 보고는 응겁결에 그 갓을 쓰고는 방바닥에 바짝 엎드리니 유순의 마누라가 향리인 줄 알고는 줄행랑을 쳤다.
마누라한테 얻어 텨져 눈탱이밤탱이 되어 출근했다가 동료들한테 개망신당한 관리 이야기도 나온다. 조선이 엄격한 부계 중심 사회요, 남성 중심이며, 가정에서 가장의 권위는 절대적이었다. 에헴 그의 말 한마디에 온 집안이 조용해졌다? 칠거지악? 글쎄, 그런 때도 있고, 그런 집안도 없지는 않았겠지만, 전반으로 보아 적어도 집안에서 지고지존 절대의 권위는 마누라요 어머니였다.
남자가 여자를 이긴 적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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