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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이들 남월국 유물이 곧 위만조선 유물이다

by taeshik.kim 2024. 5.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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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로 남월국 시대를 본다.

이에서 소개하는 유물 중에는 남월국 이후 것이 있기는 하나 다 그 유습이다.

출토지는 남월국 도읍이 있던 광동성 광주 일대다.

왜 이런 유물들을 봐야 하는가?

위만조선 때문이다.

위만조선도 이런 유물이 나와야 한다.

곧 예서 소개하는 남월국 유물이 위만조선 유물이다.

이걸 모르니 위만조선을 둘러싼 각종 헛소리가 남발한다.

내가 매양 말하듯이 서한 유물과 서한시대에 해당하는 유물은 반딧불과 번갯불의 차이다.

중국학계는 일부러 이 둘을 혼용착종한다.

이른바 하나의 중국을 만들어내기 위한 역사고고학의 음모다.

이 공작을 알고서도 속아야 하겠는가?


호두금구옥룡대구虎頭金鉤玉龍帶鉤. 서한남월왕박물관西漢南越王博物館 소장.

 

응수금대구雁首金帶鉤. 1983년 상강象崗 남월왕묘南越王墓 출토. 서한남월왕박물관西漢南越王博物館 소장.

 
이 대구帶鉤는 구체鉤體가 부리가 긴 큰 기러기를 형상화한 것이라, 머리는 뒤를 향하고, 긴 부리는 몸체에서 뺀 상태이며, 양 날개는 움츠린 형태다.

대구帶鉤란 간단히 허리띠 버클이다. 

남월왕묘에서 출토한 대구帶鉤는 36매枚다. 후장실後藏室을 제외하고는 각 실室에서 모두 발견됐다.

그 조형造型을 보면 수금水禽·거북[龜]·뱀[蛇]·용龍·호랑이[虎] 등이 있다. 개중에는 보석을 상감하고 금을 도금하고[鎏金], 금 바탕[金質] 대구帶鉤製도 있다.

당연히 신분이 높은 사람들이 찼다. 
 

동방銅鈁. 1983년 상강象崗 남월왕묘南越王墓 출토. 서한남월왕박물관西漢南越王博物館 소장

 
남월왕묘와 기타 남월 귀족묘에서 적지 않은 성주盛酒 기명器皿이 출토되고 있으니, 온주존溫酒樽·부瓿·제통提筒·호壺·방鈁 등이 있다.

재질로는 동銅과 도기 등이 있다. 주기酒器가 대량 출현한다는 사실에서 남월국 경제 사정을 읽어낼 수 있다.



번우蕃禺 명銘 동정銅鼎 전체와 명문 세부. 1983년 상강象崗 남월왕묘南越王墓 출토. 서한남월왕박물관西漢南越王博物館 소장

 
팽저烹煮 혹은 성식기盛食器다. 뚜껑 위에다가 “번우蕃禺, 소부少內”라는 글자를 새겼고, 몸통 바깥에다가 “번우蕃禺, 소부少內, 용2두2승容二斗二升”이라는 글자를 박았다.

“번우蕃禺”는 번우番禺라, 진秦나라 때 남해군치南海郡治이며, 나중에 남월국도南越國都가 되었다.

이는 그런 사실을 증언하는 유물이다.

“소부少內”란 진한秦漢 시대 궁정 부고府庫를 관리하던 관원이다. 

 

동광아치銅框牙卮. 2010년 서만로西灣路 구舊 광주주관창廣州鑄管廠 M227 출토. 광주시문물고고연구원廣州市文物考古研究院 소장

 
저 기물 안에는 고리 모양 동봉銅棒이 있으니 아마도 무엇인가를 흔들어 소리내는 데 썼을 것이다.

이 기물에는 청동과 황금과 칠목漆木, 그리고 상아象牙와 같은 다종한 재질을 활용해 공예 수준이 극히 정미精美하다.

한대漢代에 상象牙 사용은 상당히 널리 퍼졌다.

상아는 인새印璽를 만드는 재료이기도 하며 제후나 왕이 황금을 대신해 올리는 공물이기도 했다.
상아로 만든 기물은 남월묘에서 적지 않게 발견된다.

서기 166년에는 대진왕大秦王 안돈安敦이 사신을 보내 연안을 따라 중국에 와서 3가지 예물을 바친 일도 있는데 개중 하나가 상아였다. 
 
 

도용좌등陶俑座燈. 1999년 선열남로先烈南路 대보강大寶崗 M5 출토. 강주시문물고고연구원廣州市文物考古研究院 소장.

 
광주廣州의 경우 서한시대 말기 무덤에서 이런 도질탁등용陶質托燈俑이 처음 등장하기 시작해 동한시대에 이르면 저런 유물이 많이 보인다. 저처럼 머리 위 혹은 손으로 등잔 밑을 받치는 도용은 동시대 중원문화권 그것과는 차이가 있다. “호인胡人”을 형상화한 것으로 보인다.

도용은 맨말이며 대체로 깊은 눈 높은 코, 짙은 구렛나룻과 수염이 특징이다. 일부에서는 넓은 코 두툼한 입술을 표현한 것도 있고 또 어떤 데서는 귀걸이와 터반을 걸친 것도 있다. 

이 등잔 도용은 묘주 관 앞과 뒤에 놓았다. 아마도 외국에서 온 노비 아닐까 한다. 

 

화훼문 와당花卉纹瓦当, 남월왕박물원南越王博物院 소장.

 

인화대방전印花大方磚. 2005년 남월국궁서유지南越國宮署遺址 출토. 남월왕박물관南越王宮博物館 소장

 
이런 구운 방형 벽돌을 바닥에 깔았으니 장식 용도 말고도 습기를 방지하는 효과가 있었다. 남방 풍토에 맞는 건축자재라는 점이 중요하다. 
남월국 궁전에서는 바닥 벽돌은 두텁고 무거운 것들을 사용하고 장식을 화려하게 넣었다. 



곰 장식 답타[웅식답타熊飾踏跺. 2006년 남월궁서유지南越國宮署遺址 출토. 남월왕궁박물관南越王宮博物館 소장.

 
건축부재다. 탑타踏跺란 곧 대계臺階다.

길이가 긴 공심전空心磚으로 만들었다.

측면에다 장식 성격의 곰을 부조로 표현했다.

곰은 고대에는 용맹勇猛과 상서祥瑞를 상징하는 동물이다.

이 곰을 차용한 뿌리는 중원문화 영향이라 하는데 글쎄 과연 그럴까? 
 

만세萬世와당. 남월궁서유지 출토

 

만세萬歲 와당瓦當. 1997년 남월궁서유지南越國宮署遺址 출토. 남월왕궁박물관南越王宮博物館 소장

 
와당瓦當이란 통와筒瓦의 와두瓦頭를 말한다. 풍우침식을 막는 한편 장식효과가 크다. 궁전이나 관서官署, 사묘寺廟 같은 등급이 비교적 높은 건물에 쓴다. 

 

청유통와靑釉筒瓦. 1995년 남월궁서유지南越國宮署遺址 출토.


표면에는 승문繩紋을 장식하고 청색유약[青釉]를 입혔으며, 안쪽에는 마점문麻點紋이 있다.

현재까지는 중국에서 발견된 녹유와로는 가장 이른 유면통와釉面筒瓦다. 

 

사루옥의絲縷玉衣. 1983년 상강象崗 남월왕묘南越王墓, 서한남월왕박물관 소장西漢南越王博物館

 
옥의玉衣는 옥갑玉柙, 혹은 옥갑玉匣이라고도 한다. 옥 조각들에다가 구멍을 내서 실로 꿰맸다. 한대漢代에는 황제를 비롯한 최고 권력자들이 입고 저승으로 가는 옷이다.

그것을 편철編綴하는 재료에 따라서 금실로 꿰면 금루옥의金縷玉衣, 은실로 꿰면 은루옥의銀縷玉衣라 하고 기타 구리실로 꿴 동루옥의銅縷玉衣, 다른 직물실로 꿴 사루옥의絲縷玉衣와 같이 부른다.

남월왕南越王 조매趙眛의 이 사루옥의件絲縷玉衣를 구성하는 옥편玉片은 광동廣東 곡강석협 유지曲江石峽遺址 출토 옥기玉器와 상당히 가까워 응당 남월국 궁정에서 제작한 것으로 본다.

제작 연대는 한무제漢武帝 원수元狩 원년(기원전 122년)으로 보는데, 이때는 하북河北 만성한묘滿城漢墓 중산정왕中山靖王 유승劉勝과 그의 부인 두관竇綰의 금루옥의金縷玉衣가 제작된 때보다 대략 10년이 빠른 것이다.

이런 대금對襟 형식 사루옥의絲縷玉衣는 이전 문헌이나 발굴에서는 없던 새로운 물품이다.
 

사련체동훈로四聯體銅熏爐. 1983년 상강象崗 남월왕묘南越王墓 출토. 서한남월왕박물관西漢南越王博物館 소장

 
묘주인 부인이 응당 사용했을 향로로 디자인이 독특하다. 몸체와 덮개는 평면 “田” 자 모양이고, 저 네 작은 박스는 막아서 서로 통하지 않게 했다. 각 통마다 여러 가지 재료를 넣었을 것이다. 해외에서 수입한 향 재료들을 썼을 것이다.
 

방형동고로方形銅烤爐. 1983년 상강象崗 남월왕묘南越王墓 출토. 서한남월왕박물관西漢南越王博物館 소장



남월왕묘에서 이런 고로烤爐는 3건이 나왔다. 출토 당시 grilling을 위한 다양한 악세사리로 장착했으니,

스토브를 매달기 위한 쇠로 만든 체인[철련鐵鏈], 바베큐를 위한 긴 포크[장차長叉, 쌍차雙叉와 삼차三叉도 있다], 쇠 드릴 iron drills [철간鐵釬], 그리고 쇠 고리 [iron hooks, 철구鐵鉤]가 그들이다. 

노 벽면 네 곳에 네 쌍 젓먹이 돼지[乳豬]가 있으니 이들 돼지 주둥이는 위를 향하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이 오븐은 새기돼지 요리용이 아니었을까 한다.

 

반룡유금동병풍탁좌蟠龍鎏金銅屏風托座. 1983년 상강象崗 남월왕묘南越王墓 출토. 서한남월왕박물관西漢南越王博物館 소장

 
머리 쪽 장식으로는 얼굴이 둘인 짐승과 주작을 배치했으니 이는 漢문화 특징이라고. 칠목병漆木屏 벽면에는 붉은색과 검은색 권운문卷雲紋 도안을 넣었으니 이는 초 문화 특색으로 간주된다.

무릎을 꿇은 남자가 입에다 뱀을 문 채 손으로 그 뱀을 다루는 도안도 있는 모양이라, 그 남자는 코가 낮고 눈이 크다. 맨발에 홋바지[단고短褲]와 단수갈의短袖葛衣를 걸쳤다. 복식이나 자세로 볼 때 남월 사람이다.

뱀 식용은 고대 습속이며 월인들이 하던 일이다.

반룡형蟠龍形 탁좌托座의 경우 남월 토템인 뱀과 개구리 조합에다가 중원 지구에서 숭상하는 용을 결합했다는 점에서 다문화 전통을 보인다고 본다고.

이런 병풍은 서한시대 영남지역 한漢·초楚·월越 문화가 융합한 실증이다. 

 

유금동호鎏金銅壺. 1983년 상강象崗 남월왕묘南越王墓 출토. 서한남월왕박물관西漢南越王博物館 소장

 
출토 당시 전체 용기가 사견絲絹으로 감싼 상태였고 안은 붉은 대추를 채웠다.
 
남월국南越國 시대 묘장墓葬에서는 인공재배한 과실이 많이 발견된다.

현재까지 드러난 것으로는 감귤柑桔·복숭아[桃]·자두 혹은 배[李]·여지荔枝·감람橄欖·烏欖오람·첨과甜瓜·모과木瓜·황과黃瓜·호로葫蘆·매실[梅]·양매楊梅·준조酸棗 등이 있으니 이는 남월국시대 농업을 반영한다. 
 
 

동제통銅提筒. 1983년 상강象崗 남월왕묘南越王墓 출토. 서한남월왕박물관西漢南越王博物館 소장

 
성주기盛酒器다. 


 

문제행새文帝行璽 용뉴금인龍鈕金印. 1983년 상강象崗 남월왕묘南越王墓 출토. 서한남월왕박물관西漢南越王博物館 소장

 
“문제행새文帝行璽” 용뉴금인龍鈕金印은 현재까지 중국 영토내에서 발견된 유일한 서한시대에 해당하는 금인金印이다.

이는 진한秦漢 시대에 천자가 새璽를 사용하고 그 재료는 백옥白玉으로 삼고 螭虎로써 인뉴印鈕를 만든다는 규제를 깨뜨린 것으로 함께 발견된 “황후지새皇后之璽” 옥인玉印과 “황제신새皇帝信璽” 봉니封泥와 더불어 사서史書가 기재한 진한시대 인새印璽 제도를 엿보게 한다. 

역사기록에 근거할 때 한나라 초기 여후呂后 시대에 제1대 남월왕南越王 조타趙佗는 일찍이 “남월무제南越武帝”라 참칭했고, 그 손자가 계위繼位하여 제2대 남월왕이 되고서는 참칭僭號하기를 “남월문제南越文帝”라 했다 한다.

이는 그것을 사실로 증명한다.

제3대 조영제趙嬰齊는 제帝라 칭하지 않았다.

이 금인은 묘주墓主 흉복부에서 출토되어 묘주인을 확정했다. 

우부인右夫人璽 구뉴금인龜鈕金印. 1983년 상강象崗 남월왕묘南越王墓 출토. 서한남월왕박물관 소장

 
남월왕묘 묘주는 네 부인夫人을 순장殉葬했으니, 이 금인은 우부인右夫人 소지품이다.

보통 황제와 황후가 쓰는 인印을 “새璽”라 하지만 이곳에서는 우부인이 그런 칭호를 썼으니, 여러 비 중에서도 우두머리 같은 자리를 차지한 까닭이 아닐까 짐작한다고. 
 

진자泰子 구뉴금인龜鈕金印. 1983년 상강象崗 남월왕묘南越王墓 출토. 서한남월왕박물관 소장

 
“진자泰子”란 곧 “태자太子”다. 이를 통해 남월국이 진한秦漢王 왕조 체제를 본떠 “예립태자預立太子”, 곧 미리 태자를 세우는 제도를 시행했음을 본다.

남월왕묘에서는 이 “泰子” 금인金印 말고도 1매 “진자泰子” 옥인玉印이 있어 두 인印은 모두 묘주墓主 신상 칠합漆盒 안에서 발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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