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도 더러 쓰는 말로 양조釀造라는 말이 있고, 술이나 된장 간장 만드는 공장을 양조장釀造場이라 하니, 우리 때는 술 만드는 공장은 술도가라 하는 일이 많아, 그 아들은 무척이나 아버지 잘만난 케이스였다.
예서 보이는 양釀이라는 글자는 벌써 설문說文에서 보이니, 그것을 풀기를
醞也。作酒曰釀。周禮:酒人掌爲五齊三酒。爲猶作也。[빚는다는 뜻이다. 술을 빚는 일을 양釀이라 한다. 주례周禮에 이르기를 [관직 중 하나인] 주인酒人은 오제삼주五齊三酒 만드는 일을 관장한다. 여기서 爲는 만든다[作] 말과 비슷하다.]
라 하니, 이에서 보이는 오제삼주는 오제五齊와 삼주三酒라는 뜻인데, 종묘 제사에서 쓰는 다섯 가지 술과 세 가지 다른 술을 말한다.
참고로 예서 말하는 오제는 범제泛齊·예제醴齊·앙제盎齊·제제緹齊·침제沈齊를 말하는데, 세부까자 파고 들기에는 너무나 번다하니 그런갑다 하고 지나가자.
흠순이 빨리 불러달라 기다리는 까닭이다.
그래도 내친 김에 하나 더.
결국 양釀이라는 글자는 곡물을 빚어 발효케 해서 술을 만든다는 뜻이니, 저 풀이에 동원한 온醞 이라는 글자를 같은 설문에서 찾아보면
釀也。从酉聲。[빚는다는 뜻이다. 주酉가 의미, 양襄이 소리인 형성자다.]
라 하니, 설문에는 이런 식의 돌려막기 낱말 풀이가 아주 많다.
암튼 양釀이건 온醞이건 다 같이 술을 빚는다는 뜻의 동사요, 그래서 두 글자는 같이 붙여서 양온釀醞이라 하거나 순서를 바꾸어 온양醞釀이라고는 합성동사로 만들어도 썼다.
물론 아예 목적어로 술[酒]을 내세워 양주釀酒라 하거나 온주醞酒라 하는 일도 많다.
19세 흠순공欽純公 전에 바로 이 술 만드는 이야기가 나온다.
공은 젊은 시절 술을 좋아했다. 그래서 (마누라 보단菩丹) 낭주朗主가 직접 술을 빚어 다락방에 두고서는 (남편이 찾을 때마다) 드렸다.
친히 술을 빚었다는 말을 친자양주親自釀酒라 하고, 다락방이라 옮긴 말이 원문에는 루樓라는 말로 보이는데, 이 글자를 설문에서 풀기를
重屋也。从木婁聲。
라 했으니, 누층 집을 말한다. 나무[木]가 뜻이요, 婁가 소리인 형성자다 라는 뜻이다. 결국 다락방이다.
이 다락방이 시골에 산 나 같은 사람은 너무 잘 알겠지만, 치명적인 약점이 있어 쥐가 많다. 신라시대라고 쥐가 없었겠는가? 한데 쥐는 천적인 뱀을 부르기 마련이다. 저 구절에 이어지는 일화다.
하루는 공이 술을 찾자 (보단) 낭주가 다락에 올라갔다가 내려오지 않았다. 공이 이상히 여겨 다락에 올라가니 큰 뱀이 술독에 들어가 취한 상태였고 낭주는 놀라 넘어져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공이 이에 낭주를 업고 내려왔다. 결국 다시는 술을 마시지 않았다.
이 뱀은 틀림없이 구렁이였을 것이다. 큰 뱀이라 했으니 한반도에서 큰 뱀은 구렁이밖에 없다. 또 가정집에 같이 기거하는 뱀 역시 구렁이밖에 없다.
이 구렁이는 독성이 없다고 알거니와, 또 그 황금빛 색깔이 신령하다 해서인지 구렁이는 죽이는 일이 잘 없다. 대신 나는 잡아서 소주 대병에 담군 일은 있다고 고백한다. 미안하다 누랭이야.
이 구렁이가 아마도 쥐를 찾아 왔다가 술독에 빠져서는 탈출하지 못한 채 헤롱헤롱한 상태였던가 본데, 그에서 작은 바가지로 술을 꺼내서 남편한테 대접하려 한 마누라가 기절초풍한 것이다.
나아가 낭주가 빚었다는 술은 여러 정황으로 보아 막걸리 종류였음이 분명하다.
이 일이 젊은 시절[少]에 있었다 했다. 흠순이 대단한 것이 이 일을 계기로 해서 아예 술을 끊어버린 것이다.
그만큼 금슬이 좋았고, 그만큼 마누라라면 끔찍히 아꼈다는 일화로 김대문이 채록한 것이겠다. 더구나 흠순은 김대문에게는 외삼촌이었으니 말이다.
한데 이 사건은 아마도 보단 입을 통해서였을 텐데, 흠순한테는 또 하나의 행운을 안겨다 준다.
마침내 술까지 끊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장인 어른 보리가 다른 딸까지 덤으로 흠순한테 시집보내버리기 때문이다.
처를 아끼는 마음이 이와 같아면 둘째를 주어도 좋겠다.
보리는 이렇게 말하고는 둘째 딸도 흠순한테 보냈다고 한다.
그 본마누라 보단이 얼마나 절세가인이며 경국지색인지는 우리는 앞서 보았다. 그 동생 이단利丹이 어땠는지는 아쉽게도 화랑세기는 침묵한다. 다만, 그 언니가 저랬으니, 그 동생이라고 특별히 다를 것은 없다고 본다.
구렁이 헤롱헤롱 사건은 이렇게 해서 흠순한테 행운을 가져다 주었다.
아, 마누라가 하나도 아니요 둘인 일이 꼭 행운이라 할 수는 없겠다.
나 같음 질식했을 테니 말이다.
왜? 마누라는 마누라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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