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고려거란전쟁 흥화진 전투 한 장면이었다고 기억하는데, 양규가 고군분투하는 흥화진 공략을 위해 거란군이 포로로 잡은 고려 노인과 어린아이들을 앞세우고서는 성벽을 기어오르게 하는 장면이 있었으니,
이를 두고선 작가 상상력 운위하겠지만 놀랍게도 이것이 실은 거란 실제 전투 전법 중 하나였다.
요사遼史 중 병위지兵衛志는 글자 그대로 거란의 군사조직과 그 운용방식을 정리한 대목이라,
개중 권34 지志 제4 병위지 상兵衛志上을 보면 그네가 전쟁을 하는 방식이 잘 소개되어 있는데 개중 한 대목이 이렇다.
그(거란) 타초곡 집안 병사들[打草穀家丁]이 의갑衣甲을 갖추고 병기를 들고서 둥글에 부대를 이루는데 모름지기 먼저 윈림園林을 베고난 뒤에 노인과 어린이들을 잡아다가 흙과 나무를 달라서는 호참壕塹(해자)를 메우게 한다.
성을 공격할 때는 반드시 그들(노인과 어린이들)을 먼저 오르게 하여 화살과 투석과 쇠뇌와 나무[나무 무기를 말하는 듯]이 다 떨어지게 하니, 노약자와 어린이만 다치게 된다. [其打草穀家丁,備衣甲持兵,旋團為隊,必先斫伐園林,然後驅掠老幼,運土木填壕塹;攻城之際,必使先登,矢石擂木並下,止傷老幼。]
저 타초곡은 간단히 말해 선봉부대라 생각하면 되겠다.
뭐 요새도 범죄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흔히 보는 장면이라, 가족이나 애인 마누라 인질로 붙잡고서 부리는 행패 딱 그것이다.
거의 모든 성곽은 해자라 해서 성벽 안팎을 두른 도랑 겸 연못을 파게 되는데 그 기능은 다목적이라, 무엇보다 2중 방어선을 구축한다.
성벽이 바로 적과 접촉하면 그것이 무너지면 성이 무너진다.
그래서 2차 3차 방어선을 구축하게 되는데 성벽이 위로 세운 방벽이라면 해자는 땅을 파서 만든 방벽 구덩이다.
따라서 성을 공략할 때는 무엇보다 이 해자를 메워야 하는데, 그 해자를 메우고자 가장 먼저 주변 산림을 베어서 그것들과 흙을 져다 날랐던 것이니,
하지만 공습에 휘말리니, 아군 피해를 줄이고자 거란이 개발한 전략이 포로들을 총알받이로 삼는 방식이었다.
포로 중에서도 노약자랑 어린이만을 골라서 저와 같은 강제노동에 혹사했으니, 그러는 이유는 차마 아군이 그들을 공격하지 못할 것이라는 인정에 기댄 참말로 더러운 전법이었다.
그 일환으로 저들을 직접 총알받이로 썼으니, 그 총알받이를 처치하다가 상대편 무기가 떨어지길 기다려서 공격에 나섰다 하니, 하긴 뭐 전쟁이 언제 인도적이었겠는가마는 저 방식은 해도해도 너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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