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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훈과 함께하는 paleopathology

누가 외치를 죽였는가: 유럽 최초의 살인사건 전말 (4)

신동훈 (서울의대 생물인류학 및 고병리연구실)

이제 외치에 대한 이야기를 써 볼 때이다. 

외치가 발견 된 이후 이 미라가 무려 5,000년 전 사람임이 확실시되면서 유럽의 관련 연구자들은 흥분했다. 유럽의 미라 연구 전통은 아주 길다. 나폴레옹이 이집트 원정 후 미라 붐이 일어나면서 소장가들과 박물관들은 열심히 이집트 미라를 수집했고 이렇게 수집된 미라는 곧 연구 대상이 되었다. 

물론 유럽이라 해서 처음부터 미라 연구가 진지했던 것은 아니었다. 마치 당시 유행한 서커스가 온갖 종류의 노동 학대를 동반한 것처럼 이집트 미라 연구도 처음에는 그런 대중의 흥미를 먹고 자랐다. 미라 연구 초창기에는 붕대에 감긴 미라를 돈을 받고 극장에서 공개적으로 풀며 해체하는 "쑈"도 있었다고 한다. 

19세기 말의 미라 조사 광경. 미라 조사라 하지만 이 쯤되면 이런 작업을 왜 하는지도 의문일 정도. 

그러던 것이 20세기 후반 들어서는 더 진지한 과학연구 대열에 바야흐로 합류하게 되었지만 유럽 연구자들에게는 하나 충족하지 못한 갈증이 있었으니 바로 그것은 그들이 연구한 미라가 대부분 유럽인과는 무관한 이집트 미라였다는 점이다. 물론 나중에 소개하겠지만, Bog body라던가 하는 유럽인 미라도 존재는 한다. 하지만 그 시대가 약 2000년 전 정도로서 이집트 미라에는 연대가 훨씬 못 미치는 터라 아무래도 부족함이 있었을 것이다. 

Bog body. 늪에 빠져 미라가 된 시신으로 타키투스의 "게르마니아"나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갈리아전기"의 시대에 해당한다. 


이때 벼락처럼 등장한 무려 5,000년 전 유럽인 조상 미라. 

이것 하나만으로도 외치 발견은 당시 유럽 세계를 뒤흔들었다. 

앞에서 이야기 했지만 볼차노 시는 인스부르크로부터 외치를 돌려받은 후 남티롤고고학박물관을 외치 전용 박물관으로 삼아 이곳에 외치와 관련 유물을 모두 전시하였다. 

남티롤 고고학 박물관: 링크 

이 박물관에 들어서면 외치가 전시된 곳에 들어가기 전에 관객이 선택을 할 수 있게 되어 있다. 볼 것인가 말 것인가. 이런 전시를 혐오하는 사람은 보지 않아도 될 권리를 위해 우회로를 만들었다지만, 외치를 보러 온 사람들이 우회할 리가 있겠는가? 아마 우회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을 듯. 눈가리고 아웅인 셈이다. 


실제로 외치는 위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작은 pothole을 통해 보게 되어 있다. 그리고 그 내부는 기온과 습도 등이 외치가 발견된 빙하지대와 동일하게 맞추어져 있다. 


이 사진을 보면 외치가 누워있는 방 안 모습을 본다. 벽면이 벽돌처럼 되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을 텐데 이는 벽돌이 아니고 얇게 얼린 얼음판이다. 외치가 누워 있는 방 안 벽면 전체를 이런 얼음판으로 발라놓았다. 그리고 외치가 마르지 않도록 증류수로 정기적으로 물을 분사한다고 들었다. 평소에 외치는 전시된 상태에서도 피부 표면이 얇은 얼음막으로 얼린 상태를 유지하는데 이것이야 말로 알프스 빙하지대와 동일 조건이라는 것이다. 

외치는 엄청나게 중요한 존재이므로 바깥으로 출장은 가지 않으신다. 대신 연구자들이 이 박물관에 와서 연구를 하고 있으며 앞에서도 썼듯이 이 도시에는 외치 연구만 전담한 연구소도 있다. 아래에 그 링크를 볼 수 있다. 

http://www.eurac.edu/en/research/health/iceman/Pages/default.aspx


EURAC 연구소 강당. 국제학회가 자주 개최되는 곳이다. 다음번 Mummy Congress도 이곳에서 아마도.. 

외치에 대한 연구는 발견된 직후 부터 지금까지 한마디로 안해 본 연구가 없을 정도로 많은 보고가 있었다. 새로운 기법이 나왔다는 소식만 나오면 득달같이 연구가 적용되어 바로 결과가 발표되었고, 지금까지 외치에 대해 시행된 연구들은 그 수준이 최상급으로 보고된 저널도 세계적 수준이었다. 

외치 연구를 통해 5,000년 전 당시 유럽인들이 입던 옷이 복원되었다. 


외치가 발견된 곳 주변에서 수습된 외치의 의복들. 

우리가 보기엔 딱 넝마수준이지만 이 의복 유물을 기반으로 당시 사람들이 어떻게 옷을 입었는지 아래와 같이 복원하였다. 


레깅스도 하고, 상의를 착용하고 도롱이와 모자를 쓴다. 

이런 부분은 하나의 예에 불과하고 의학적 견지에서 접근한 외치 연구는 별의 별 것을 다 밝혀냈다. 혈액형은 물론이고 DNA분석 (요즘 그 동네 사는 사람과 비슷한 유전형이라 한다), 식생활분석 (마지막 저녁식사를 뭘 먹었는가까지 위의 내용물을 분석해 밝혀내었다)까지..., 

외치 피부를 검사한 연구자는 그의 피부에 문신이 남아 있는 것을 확인하고 보고하였다. 


외치 몸에 남아 있는 문신. 

이 문신을 연구한 사람들 중에는 외치의 문신이 중국에서 기원했다고 믿어지는 침술의 시술 위치와 거의 일치한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침술은 원래 신석기 시대 이전부터 전세계에 퍼져 있던 것으로 중국에만 있던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중국인들은 이런 주장에 결사 반대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