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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훈과 함께하는 paleopathology

누가 외치를 죽였는가: 유럽 최초의 살인사건 전말 (7)

연재관련 공고: 


제가 요즘 일이 폭주하고 있어 이전 처럼 1주 2회 연재가 어려울 것 같습니다. 


당분간 1주 1회로 연재를 줄이겠습니다. 

휴재도 생각해 봤습니다만 한번 휴재했다가는 다시는 못 쓸거 같아서...


독자제위께 양해 바랍니다. 다음 연재는 8월 17 일 (토)입니다. 


신동훈 (서울의대 생물인류학 및 고병리연구실)



내셔널 지오그래픽 2007년 7월 기사로 실렸던 "외치살인사건 이야기" 


외치 갈비뼈에 나 있는 골절흔을 방사선학적으로 검사하려던 계획이 뜻밖에 굉장한 발견으로 이어진 이야기까지 했었다.

화살촉이 발견되어 외치가 사고사가 아니라 살해 당했다는 것이 밝혀지자 그 동안 연구성과로 외치가 사망하는 날까지 상황을 재구성하게 되었다.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1) 나이 40대 중반의 외치는 가지고 있는 소지품을 볼때 사회적 신분이 좀 되는 사람이었다. 신석기시대 종말기에 해당하던 당시 고가품인 순동 도끼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만 봐도 이 사람이 사회적으로 유력자란 것을 짐작할 수 있다. 


(2) 외치는 사망 당시 구리 도끼 외에도 부싯돌 키트, 돌 단검, 나무껍질로 만든 용기를 소지하고 있었다. 옷은 3벌을 껴입고 레깅스와 곰가죽으로 만든 신발을 입고 신고 있었다. 


(3) 외치는 죽기 전 원시적 형태의 빵을 먹었다. 곡물을 갈아 만든 가루를 가지고 빵을 만든 것 같은데 빵에는 돌가루가 포함되어 있었다. 산양고기도 먹은 것 같다. 



볼차노 마을은 사방에 외치 사진이다. 5000년 전 형님이 마을을 먹여 살린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모델은 창스기. 


(4) 외치는 죽기전 6개월 사이에 최소한 3번의 질병을 앓았지만 그가 사망한 원인과 직접 관련이 있었던 것 같지는 않다. 


(5) 외치는 편충에 걸려 있었다. 물론 죽은 이유와는 상관 없다. 


(6) 활과 화살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 중 화살은 급히 화살대를 다듬다가 저격당해 사망했던 것 같다. 서둘러 화살대를 다듬었다는 것은 이전에 가지고 있던 화살을 다 사용했다는 뜻이다. 아마도 화살을 모두 발사해야 하는 급박한 상황에 있지 않았을까. 


(7) 외치는 손에 아물기 시작한 상처가 있었다. 이것은 격투 때 입은 상처일 가능성이 높다. 이미 상처가 아물기 시작했으므로 죽기 며칠 전 입은 상처일 것이다. 이 상처를 입은 사건과 사망한 사건은 서로 연결되어 있었을 수도 있다. 


(8) 꽃가루 분석을 해보면 그의 마지막 이동 경로를 짐작할 수 있다. 외치가 (손에 입은 격투 사건 후) 마을을 떠난 것은 봄철이다. 처음 소나무가 많이 있는 지역까지 높이 올라갔다가 다시 낮은 곳으로 내려 온 다음 그가 죽기 전 하루나 이틀 전, 사망한 장소까지 다시 올라갔다. 뭔가에 쫒기고 있었다고 생각해 볼 수도 있다. 


볼차노 마을 중심에 있는 성당


(9) 그가 죽은 지역에서 등뒤로 화살을 맞았다. 화살은 대혈관을 건드려 즉사하지 않았더라도 몇시간 못 살고 죽었을 것이다. 


(10) 처음 쓰러졌을때 등쪽으로 자빠져 있던 것을 화살을 뽑기 위해 외치를 배쪽으로 돌려눕혔다. 그리고 화살을 뽑았다. 화살을 뽑은 사람과 화살을 쏜 사람은 같은 사람일 것이다. 이 과정에서 외치의 기묘한 팔 자세와 입술 모양이 결정되었다. 


(11) 외치를 쏜 사람은 굳이 화살대를 뽑았다. 화살촉은 몸안에 남았으므로 그의 목적은 "화살대를 뽑는" 것이었다. 왜 그랬을까? 화살대를 그대로 두면 쏜 사람의 신원이 노출될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고고학자들은 본다. 신석기시대 사람들의 화살대는 사람마다 차이가 있어 마치 총을 쏘면 남은 증거로 어떤 총에서 발사한 것인지 추적할 수 있듯이 당시 사람들은 화살대만 보면 누구 화살인지 알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외치를 쏜 사람은 자기가 누구인지 감추고 싶었던 모양이다. 이렇게 보면 살인자는 사회 질서를 수호하기 위한 당당한 집행자는 아니었던 듯도 하다. 


(12) 외치를 쏜 사람은 강도가 아니다. 값나가는 물건인 구리도끼를 남겨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의 목적은 단지 "외치를 죽이는 것"이었던 것 같다. 오히려 구리도끼를 들고 다니면 자신이 그를 죽인 사실이 탄로날 수 있으므로 그의 물건은 손도 대지 않았을수도 있다. 그는 외치가 잘 아는 사람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볼차노에서 열린 학회. 토론 중. 2009년. 


(13) 외치가 쓰러진 후 바로 눈이 내렸고 그는 빙하에 묻혔다. 20세기 후반에 다시 발견될 때까지 그가 밖으로 노출된 것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5,000년만에 햇빛을 다시 본 것이다. 



볼차노 마을에서 본 티롤리안 알프스 전경. 이렇게 아름다운곳에서 5,000년 전 살인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20세기 들어 발견된 고고학적 성과 중 외치처럼 말 많고 시끄러웠던 것은 별로 없다. 


외치는 5,000 년 후에 발견되어 많은 과학자들, 고고학자, 역사가들에게 연구할 주제를 던져주었고, 또 알프스 자락의 이 촌구석 동네를 전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만들어 주었다. 


외치 이야기는 끝난 게 아니다. 작년에 외치를 다룬 영화까지 개봉했다. 제목은 "Iceman"


하지만 왜 그가 나이를 그렇게 많이 먹은 상태에서 가족의 애도속에 죽지 못하고 알프스 산꼭대기에서 누군가 그의 목숨을 노린 사람의 화살을 맞고 쓸쓸이 죽어가야 했을까. 


아직도 이 의문에 대해서는 많은 추정이 나오지만 이에 대해서는 현재로서 더 규명이 어려울 것 같다. 사실 미라를 연구하다 보면 사망 원인에 대해서는 짐작도 못하는 것이 태반인데 이 경우 여기까지 밀고 온것만 해도 기적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하나 확실한 것은 "암살자"는 스스로의 신원을 노출시키기 싫어했다는 것이다. 아마도 그는 외치도 아는 사람이었을 것 같고 그의 지인들 중의 하나였을수도 있겠다. 도대체 무슨 한이 있었길래 알프스 꼭대기까지 쫒아 올라가 그를 죽여야 했을까. 


알 수 없는 일이다. 정말로.. (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