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서 대동보의 각파는 성립 연원이나 족보에 들어온 시기가 다 다른 것을
하나의 조상 아래 일거에 일어나 수십 개 파로 나뉘는 것을 정리된 것이라는 말을 한 바,
옛 족보를 보면 그 과정이 적혀 있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어떤 문중에 어떤 파는
그 파가 들어온 연원이 자세한 바,
첫 족보가 17세기 초반에 나왔는데 이때 이미 자기들끼리 잘 아는 고려 말의 인물 후손 집안 10개파는
비교적 수월하게 계보를 꾸려 적어 놓았는데,
문제는 이 시기에 자신들도 같은 시조 자손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향촌 사족으로 있었다는 점이 문제였겠다.
그런데 아무리 궁구해 봐도,
이쪽이 가지고 있는 계보, 그 계보라고 해 봐야 고려 건국 시점의 시조 한 분에서 내려오는
단선계보였는데,
누구한테 계보를 이어 붙여야 하는지 도대체가 알 수 없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에이, 우리 집안 아닙니다, 하기에는 저쪽도 어쨌건 사족이고
향촌에서는 세력을 이루고 있는지라 뻥치지 마세요, 하고 미뤄버릴 수도 없어,
결국 족보 제일 뒤에 별도로 계보를 싣는 것으로 타협을 했고,
그로부터 약 100년 뒤에 나온 족보에서는 대략 상계의 대수를 세어 맞다고 생각하는 쪽에 이어 붙이는 것으로 타협이 된 모양이다.
이 경우는 그래도 비교적 나은 편으로
그 후의 족보를 보면, 이런 이야기도 나온다.
어느 도 어디 사는 사족이 와서는
자기들 일족이 누구 후손이라고 이야기하는데
도저히 모르겠다.
그래서 여기 일단 적어둘 테니
나중에 후학의 질정을 바라노라.
그 질정은 결국 100년이 지나도록 아무도 하지 않았고 (그걸 어떻게 알겠는가?)
결국 그 후 어느 시점에는 대략 상계 대수를 세어 비슷하게 보이는 쪽에 이어 붙이는 것으로 결론이 난 모양이다.
이렇게 합보하는 경우에는 대개 합보를 요청하는 쪽도
어쨌건 시골 사족이라고 해도 사족은 사족이라 그냥 무시할 수 없는 경우가 많았던 듯 하다.
이렇게 하나 둘 새로운 파가 들어오다 보면
나중에는 수십 개 파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우리는 옛 사람들이라고 해서 그 양반들이 전부 일족은 두루두루 알고들 지냈을 것 같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우리가 요즘 같은 문중이라고 해도 만나면 남남이나 마찬가지였듯이
부계 족보를 꾸린 후에는 출신과 계보가 천차만별이라,
만나면 누구세요? 하고 통성명부터 해야 할 판인 것은 그 당시나 요즘이나 별 차이 없었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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