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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詩 & 漢文&漢文法

눈 녹고 태동하는 봄의 초목

고창 선운사에서 지난 주말



한시, 계절의 노래(298)


소[牛] 


[宋] 구양수(歐陽修 , QuyangXiu, 1007~1072) / 김영문 고르고 옮기며 논평함 


동쪽 울에 해가 뜨니

참새가 놀라 깨고


눈 녹은 후 봄이 태동

초목에 새싹 돋네


흙 언덕 완만한 곳

비탈 밭 드넓은데


가로로 아이 싣고

송아지도 데려 가네


日出東籬黃雀驚, 雪銷春動草芽生. 土坡平慢陂田闊, 橫載童兒帶犢行.



고창 선운사에서



《주역(周易)》의 우주론에 의하면, 태극에서 양의(兩儀)가 생기고, 다시 사상(四象)·팔괘(八卦)·육십사괘(六十四卦)로 나아간다. 개벽은 까마득한 태초에 일어난 단 한 번의 사건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생생불식(生生不息)하는 자연 속에서 지금도 끊임없이 발생한다. 우리가 의식하지 못할 뿐이다. 


캄캄한 밤이 지나고 태양이 밝아오는 새벽은 하루의 개벽이다. 지리산 천왕봉에서 구름바다를 뚫고 솟아오르는 일출을 본 분들은 암흑의 혼돈이 걷히고 천지자연의 질서가 자리 잡는 개벽의 순간을 느꼈으리라. 천왕봉까지 갈 것도 없다. 지금 나의 창문으로 비쳐드는 새벽 햇살도 마찬가지다. 


장상 황룡 우(牛)시장에서



추운 겨울 끝에 마침내 박두한 새봄은 사계절의 개벽이다. 땅이 녹고 꽃이 피고 훈풍이 불어온다. 만물은 생명의 용틀임을 시작한다. 지금 바야흐로 사계절 개벽의 새싹이 푸르게 돋아나고 있다. 


저 완만한 언덕 평평한 비탈 밭에 한해 작물의 씨를 뿌림은 일년 농사의 개벽이다. 지금은 아무 것도 없는 황량한 대지에 씨앗을 뿌려 바야흐로 싹을 틔우고 무성하게 길러서 결실을 거둔다. 


새싹, 아이, 송아지는 모두 태초의 개벽이 뿌린 씨앗이다. 씨앗은 ‘인(仁)’이다. 생명의 모든 가능성이 저 작은 씨앗에서 발원한다.

봄날 아침 푸른 새싹 돋은 동쪽 울타리에 해가 비칠 때 송아지 딸린 어미 소 등에 어린 아이를 태우고, 완만한 산기슭 비탈 밭에 씨앗을 뿌리러 가는 그림이야말로 개벽의 신비가 층층으로 겹친 놀라운 광경이다. 


이 시는 태초의 개벽이 멀고 먼 과거에만 일어난 사건이 아님을 알려준다. 무심히 지나친 일상 속 개벽을 깨닫는 순간 우리의 삶은 새 기운을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