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창 선운사 도솔암에서
한시, 계절의 노래(299)
봄날 흥취 열두 수 중[春日漫興十二首] 둘째
[明] 설혜(薛蕙, 1489~1541) / 김영문 選譯評
풀 새싹 반쯤 돋아
푸릇푸릇 벽옥 빛
꽃술도 처음 열려
담홍색 은은하네
어떻게 황금 얻어
북두까지 높이 쌓아
청제에게 모두 보내
동풍을 사오리요
草芽半吐參差碧, 花蕊初開淺淡紅. 安得黃金高北斗, 盡輸靑帝買東風.
봄맞이 선운사 꽃무릇
물론 시인이 이 시를 쓰면서 황금으로 동풍을 사올 수 있다고 믿은 건 아닐 터이다. 아직도 문학적 비유를 펙트 체크하며 시를 감상하는 분들은 안 계시리라. 너무나 발걸음이 더딘 봄을 더 빨리 맞이하기 위한 조바심이 이 비유에 내포되어 있다. 고귀(高貴)한 봄이라고 할 때의 고귀(高貴)에는 무엇으로도 살 수 없는 값비싼 보배라는 뜻도 들어 있다.
그 값비싼 보배는 컬러풀하다. 겨울에 얼어붙었던 흑백의 틈새로 조금씩 고운 채색이 배어나온다. 납매와 영춘화의 노란색, 동백의 붉은색, 홍매의 분홍색, 백매의 하얀색, 청매의 초록색에서 시작하여 산수유, 개나리, 진달래, 철쭉, 오얏꽃, 살구꽃, 앵두꽃, 복사꽃 등등 그야말로 “울긋불긋 꽃 대궐”이 온 산천에 들어선다. 봄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바로 채색이다. 흑백을 벗어던진 컬러야말로 봄의 전부다.
고목에도 봄은 오기 마련
이 시가 봄노래임은 새싹, 꽃술, 청제(靑帝), 동풍이란 시어에서도 잘 드러나지만 더욱 우리의 시선을 현란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시의 컬러다. 한 눈에 봐도 컬러풀하다. 첫째 구의 벽옥색, 둘째 구의 담홍색, 셋째 구의 황금색, 넷째 구의 푸른색이 어울려 찬란한 채색 잔치를 벌이고 있다.
마지막 구절 푸른색 청제(靑帝)는 동쪽에서 봄을 관장하는 신이다. 사신(四神)의 동청룡(東靑龍)과 음양오행의 동방 목신(木神)이 이에 해당한다. 자신은 푸른색 옷을 입고 있지만 자연의 모든 색을 존중한다. 봄의 신 청제의 비호 아래 천지만물은 제 자리에서 제 본연의 색깔을 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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