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계절의 노래(300)
조씨 마을 살구꽃[趙村杏花]
[唐] 백거이(白居易, 772~846) / 김영문 選譯評
조씨 마을 붉은 살구꽃
해마다 필 때
십오 년 간 몇 번이나
보러왔던가
일흔셋엔 또 오기
어려울 터라
올봄은 이별 위해
여기 왔다네
趙村紅杏每年開, 十五年來看幾回. 七十三人難再到, 今春來是別花來.
백거이는 하남(河南) 신정(新鄭)에서 태어나 안휘(安徽) 숙주(宿州)에서 자랐다. 30대 중반부터 벼슬길에 나서 임직에 따라 장안(長安), 강주(江州), 항주(杭州), 소주(蘇州) 등지를 편력했다. 그러다가 53세에 태자좌서자분사(太子左庶子分司) 직에 임명되어 낙양으로 갔다가 그곳 산천의 아름다움에 반했다.
그는 낙양 이도리(履道里)에 집을 마련하고 인생 후반의 거처로 삼았다. 하지만 낙양에 거처를 마련하고도 여러 관직을 전전한 탓에 58세 봄 다시 태자빈객분사(太子賓客分司)로 발령 받고, 이어 59세 겨울 하남윤(河南尹)에 임명되고서야 낙양에서 여생을 보낼 수 있게 되었다.
이도리에서 서쪽으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조촌(趙村)이 있고, 그곳은 살구꽃으로 유명했는데 백거이는 낙양에 정착한 후 거의 매년 봄 조촌의 살구꽃을 구경하러 다녔다. 백거이의 모친이 꽃구경을 하다가 우물에 빠져 세상을 떠났음에도 백거이의 꽃사랑은 지극하다 할 정도였다. 매화, 모란, 복사꽃 등등을 읊은 그의 시는 모두 명편으로 인구에 회자된다. 살구꽃을 읊은 이 시도 마찬가지다.
살구꽃은 매화와 거의 비슷하여 언뜻 보면 구별이 힘들 정도다. 물론 매화가 지고 나서 살구꽃이 피므로 헷갈릴 염려는 없다. 또 향기에서 차이가 난다. 살구꽃 향기는 고매한 매화 향기에 비해 다소 소박한 느낌이 든다. 꽃받침의 모습도 다르다. 매화의 꽃받침은 꽃잎에 밀착되어 분리되지 않지만 살구꽃 꽃받침은 꽃잎에서 분리 되어 뒤로 젖혀져 있다.
시골 마을에 핀 살구꽃은 복사꽃과 함께 소박하면서도 화사한 모습으로 봄날의 경관을 아름답게 장식한다. “살구꽃 핀 마을은 어디나 고향 같다”는 시구가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화사한 살구꽃을 다시 만나러 온 백거이의 나이는 일흔둘이었다. 살구꽃을 바라보는 그의 뇌리에는 틀림없이 유희이(劉希夷)의 「대비백두옹(代悲白頭翁)」 구절이 떠올랐으리라.
“옛 사람은 더 이상 낙양 동쪽에 없는데, 지금 사람만 여전히 꽃 지는 바람 마주하네. 해마다 세월마다 꽃은 서로 비슷하나, 세월마다 해마다 사람은 같지 않네.(古人無復洛城東, 今人還對落花風. 年年歲歲花相似, 歲歲年年人不同.)”
매년 만나러 오던 살구꽃을 내년에는 다시 볼 수 없을 것 같은 예감에 이제 이 시로 마지막 이별을 고한다. ‘잘 있거라! 내 사랑 살구꽃이여 안녕……’
백거이는 정말 다음 해 조촌의 살구꽃을 다시 보러 오지 못하고, 그 다음해 세상을 떠났다.
***연재가 300회에 이르렀습니다. 제 스스로도 놀랍고 뿌듯한 느낌이 듭니다. 여러분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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