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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현장

해직기간 능산리고분 발굴현장 가이드 되어


오늘로부터 꼭 2년 전인 작년 6월 23일이었을 것이다.  

그날 어찌하여 나는 순천향대 공자아카데미가 기획한 국내 공자아카데미 중국 원장님들 부여 답사에 가이드 비스무리한 일을 했다. 순천향대 공자아카데미 홍승직 원장 요청이었다. 

찌는 날, 부여 일대 주요한 백제 관련 유적 몇 곳을 안내했으며, 개중에 능산리고분군이 포함됐다. 

 


마침 부여에 소재하는 한국전통문화대학교가 능산리 고분군을 발굴 중이었으니
그 정보를 입수하고는 미리 기별을 넣어 발굴현장까지 안내했다. 

능산리고분군에는 그것과 능산리절터 사이에도 제대로 보고되지 않은 백제시대 고분이 밀집했으니, 그 성격 구명과 실태 파악을 위해 조사가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 나는 해직 중이었으니, 아주 불행하게도 이 일이 있고 나서 그 다음달에 대법원 확정 판결을 통해 복직이 결정되고 말았다. 
나는 이 소송이 오래가길 바라고 또 바랐으며, 특히 1심과 2심 완판승을 거둔 마당에 대법원 판결이 질질 늘어져 당시 박근혜 정권이 정식으로 끝나는 그날까지 지속되었으면 했더랬지만 신은 나를 버렸다. 

백수지만, 차곡차곡 하루하루 월급이 쌓이던 그 꿈과 같은 나날들, 탱자탱자하며 노니는데, 주최 측에서 내가 이쪽 가이드를 해줬으면 하는 눈치라, 전연 할 일도 없으면서도 짐짓 바쁜 체 하는 모습을 연출해 가며, 겨우 시간을 빼는 듯한 자세로 부여로 갔더랬다. 


이런 현장이 가이드한테 좋은 점이 많다. 

무엇보다 현장 안내는 발굴조사단에 맡겨 버리면 된다. 

예서 관건은 내가 놀고 거져 먹는다는 느낌을 주지는 말아야 한다는 뜻이다. 

이를 모를 리 없는 나는 현장에서 이 말을 빼먹지 않았다. 

"이런 발굴현장은 외부에 함부로 공개하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내가 부탁해서 이런 소중한 현장을 다름 아닌 당신들이 두 눈으로 직접 보게 되었다. 자세한 설명은 조사단에서 하실 것이다." 



현장에 유람단을 쳐박아 두고 나는 이렇게 유유자적 셀피나 찍고 탱자탱자했다. 

참고로 이 현장을 부여 능산리 서西고분군이라 하는데, 식민지시대에 존재가 알려졌고 일부 조사가 되긴 했지만, 극히 제한적이라 자세한 정보를 알 수가 없었다. 

백년만에 속살을 풀어헤친 이 고분군은 거의 다 도굴되기는 했지만, 사비시대 독특한 백제양식으로 아주 잘 만든 왕릉 혹은 그에 버금하는 당시 유력지배층 무덤임이 드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