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은 성리학 경전에 대한 자기 주를 남겨 소위 다산경학의 토대를 이루었는데
필자는 남아있는 다산 경학의 주를 전부 읽지는 않았다.
다만 옛적에 논어 윤독을 할 때 다산의 논어고금주를 옆에 두고 하나씩 축자로 따라가며 본 적이 있는데
다산의 논어고금주 하나만을 읽고 그의 경학을 모두 이야기하는 것은 무리라 할 수도 있겠지만
독서기를 겸해 아래에 좀 적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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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다산 경학에서 주희는 다산이 절대로 직접 까지 않는다.
물론 당시 이미 교조화해버린 조선성리학의 풍토에서 주자에 대한 직접 비판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지
우리는 잘 알기에 일면 이해할 수 있는 부분도 있지만,
그런 부분을 감안하더라도 다산 경학은 절대로 주자주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필자는 이 부분은 논어고금주에 대해서는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전권을 축자로 따라가며 검토했기 때문이다.
다산경학이 주자주를 벗어났다는 주장도 많이 보이던데
도대체 뭘 가지고 그렇게 이야기들 하는지 필자는 이해할 수 없다.
지금 다산경학에서 가장 접근하기 쉬운 것이 바로 논어고금주라 생각하는데
그 논어고금주 어디에 주자주를 부정한 것이 있는지 한 번 설명을 부탁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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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의 논어고금주에서는 한당漢唐 고주는 모두 다산의 밥이라 실컷 비판한다.
하지만 사서의 주희주는 거의 비평이 없다는 점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우선 다산이 논어의 주를 달기 위해 방대한 서적을 섭렵한 것은 틀림없다.
언젠가 여기 썼지만 다산 만년의 방대한 저술은 그가 정말 열심히 살았던 사람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그의 소위 다산경학은 동 시기 일본의 소위 고학파에 비해 그 한계가 상당히 분명한데
그 한계의 이유는 그가 자신의 생각이 분명히 따로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주자주를 거의 직접 건드리지 않았던 데서 기인한다.
주자주를 직접 거역하지 않으면 제대로 된 근대성을 확보할 수 없다.
이는 다산경학의 명확한 한계라 할 수 있다.
아무리 참신한 생각을 하더라도 주자주를 부정하지 않으면 근대성을 띨 수 없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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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보기엔 다산경학은 일본에서 보자면
일본의 에도시대 유학에서 가장 보수적이라 할 수 있는
후지와라 세이카 이래의 막부관학인 소위 경학보다도 보수적이라 할 수 있다.
다산이 근대의 선구가 아니라 조선성리학의 황혼인 이유가 된다고 하겠다.
다산은 다산으로 보아야지 우리의 이해관계에 따라
근대성의 옷을 입혔다가 탈각시켰다가 할 수는 없다.
진정 다산학이란 것이 존재한다면
근대성이라는 것부터 취소시키고
처음부터, 바닥부터 다시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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