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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S & MISCELLANIES

단재주의가 말살한 신라와 가야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2. 12.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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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재주의란 무엇인가? 드넓은 만주가 한민족 영역이며 그에서 기반한 대륙지향 주체적 강성군사 대국이야말로 우리가 지향해야 하는 미래의 길이며, 그것을 준거로 그에서 벗어난 역사는 치욕과 굴종으로 치부하는 사관史觀이다.

그가 그 롤모델로 삼은 데가 고구려라, 그의 사관이 지향하는 모든 종착은 오직 고구려로 향했다가 고구려에서 뻗어나올 뿐이다.

강고한 내셔널리즘에 기반한 저 단재주의는 그 태동 공간에서는 강한 흡인력을 발판으로 제법 쓸모가 있었고, 그것이 이른바 식민주의를 청산하는 가장 호소력 큰 구호이기도 했으니, 문제는 그 유산이다.

그때는 쓸모가 있었고, 어쩌면 그랬기에 시대사명이기도 한 저 구호 혹은 저 정신이 21세기에 접어든 지금에서도 버전을 달리하며 재생산된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저 고구려 강성주의를 받침하는 권리장전 중 하나가 광개토왕비라,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國岡上廣開土境平安好太王 이라는 기나긴 시호를 갈채하며, 탄복한다.

그 갈채와 탄복, 그리고 열광은 그것이 말한 업적이 사실事實이며 사실史實이라는 종교적 믿음에 기반한다.

그래 죽 훍어보면 그렇다. 이렇게 훌륭한 군주 없다. 이렇게 땅을 드넓힌 군주도 없고 백성을 사랑한 군주도 없다. 그의 치세 천하는 태평성대였다. 물론 그 태평성세를 이룩한 바탕은 강력한 군사력이라는 전제 혹은 믿음이 있다.

그러고 보니, 저 위대한 왕은 백제도 박살내고, 더구나 20~21세기 한국에는 철천지 원수 같은 왜구를 박살냈다 하니, 이 얼마나 유쾌 통쾌 상쾌한가?

왜군에 시달리는 신라를 구원하러 5만이나 되는 보병과 기병을 발동하여 일시에 그들을 까부시고 위기에 처한 신라를 구출했다 하니, 이 얼마나 유쾌 통쾌 상쾌한가?

그 갈채와 환호와 열망은 등신 같은 신라, 그보다 더 등신 같은 가야, 그리고 그 말 발굽 아래 스스로 신하되기를 맹세했다는 백제를 희생으로 삼는다.

저 텍스트는 철저히 고구려 중심 일방의 기술이며, 그렇기에 거짓과 과장과 축소로 얼룩진 마스터베이션일지도 모른다는 일말의 의구 혹은 의심은 그 어디에도 없다.

말로는 역사학 출발은 사료에 대한 엄밀한 비판에서 출발한다 하지만, 그 정신은 광개토왕비 앞에만 서면 갑자기 사라지고 만다.

그리하여 심지어 가야 주체 역사를 부르짖는 자들도, 나아가 신라 주체 역사를 한다는 자들도 위기에 처한 가야, 함락 일보 직전인 신라를 광개토라는 위대한 이웃집 주인이 강포한 왜적을 일시에 몰아내고 평화를 선사한 메시아로 받아들인다.

신공황후가 신라를 정벌하고 신라왕 무릎을 꿇렸다는 일본서기 기사, 강대한 왜국이 한반도 남부를 200년간이나 지배했다는 이른바 임나일본부는 단 한 놈도 사실이라 하지 않는 그런 똑같은 자들이 어찌하여 저 광개토비만큼은 오직 史實과 事實만을 말한다는 철석 같은 믿음이 있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뭐? 고구려가 5만을 주어 신라를 구원해? 뭐 고구려가 백잔을 깨뜨리고 백제를 신하로 삼았다고? 그래? 어떤 놈이 이따위 망발을 일삼는단 말인가?

등신 같은 가야, 더 등신같은 신라는 고구려에 주어도 되지만 일본에는 줄 수 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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