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문화재연구소, CCTV 관제센터에 밀려 서울로
손현규 / 2022-07-18 21:22:55
(인천=연합뉴스) 손현규 기자 = 인천 강화군 소유 건물을 임시로 빌려 쓰고 있는 국립 강화문화재연구소가 새로 들어올 폐쇄회로(CC)TV 관제센터에 밀려 한동안 서울로 이전할 처지에 놓였다.
18일 강화군 등에 따르면 강화문화재연구소는 2017년 2월 국립문화재연구원 소속 연구기관으로 설립된 이후 올해까지 6년째 강화군 소유인 옛 군립도서관 건물을 무상으로 빌려 쓰고 있다.
이 사안 언뜻 보면 대수롭지 않은 것만 같다. 하지만 복잡한 속내들이 있다.
사안은 간단해서 문화재청 산하 국립문화유산연구원, 다시 그 산하 지방연구소 중 하나인 국립강화문화재연구소가 이름처럼 인천시 강화군에다가 본부를 두고 있지만, 그 본부가 더부살이 신세라
강화군 땅과 건물을 무상임대 형식으로 사용 중이었는데 '아주 잠시간' 비워주는 모양새라 언뜻 하등 이상한 점이 없는 것만 같다.
국비를 들여 아예 문화재청 재산으로 강화군에 있는 땅을 사들여 그쪽에다가 연구소 건물도 번듯하게 짓고 해서 더는 기초자치단체 눈치 볼 것 없이 보란 듯이 제 집 살림할 작정이었다.
하지만 이래저래 일이 꼬이기 시작해 그만 신청사 건립 계획이 차질을 빚었다.
그 기간 임대 계약도 끝나고 해서 곤혹스러워진 연구소가 자존심 좀 굽히고 강화군에 굽신거려 지금 무상으로 사용하는 강화군 건물을 임시로 더 사용하기로 했지만 그 기간마져 끝나자 강화군이 철퇴를 내렸다.
"방 빼!"
이 얼마나 쪽팔린 일인가? 중앙정부 부처 기관이 기초자치단체한데 내쫓기다니?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이나 할 법한가? 다른 기초자치단체는 중앙정부 기관 유치 못해 환장인데 대체 강화도는 왜 이렇단 말인가?
이를 이해하기 위해 강화문화재연구소 태동에 얽힌 일화와 지금의 강화군수 이야기를 파고 들어야 한다.
국립강화문화재연구소는 2017년 2월 28일, 딱 한 사람을 제외한 누구도 원치 않은 가운데 느닷없이 출현했다. 그 딱 한 사람이 이번에 절치부심 끝에 다시 인천시장으로 돌아온 유정복이었다.
유정복은 2013년~2014년 3월에는 안전행정부 장관이었다.
안행부가 얼마나 막강한 기관인지 일반에는 제대로 인식되지 않는 측면이 있는데, 정부부처 중에서는 예산편성권을 틀어쥔 기획재정부보다 힘이 쎄다. 왜인가? 조직을 틀어쥐었기 때문이다. 조직과 예산이 붙으면 조직이 이긴다. 과거 그 무시무한 내무부였으니 말이다.
이 안행부 장관 자리를 인천시장을 위해 던진 유정복은 인천시장에 당선되어 2014년 7월 1일부터 2018년 6월 30일까지 제14대 인천시장으로 재임한다.
얼마 전까지 조직을 장악한 유정복은 인천시장이 되어서는 그 힘을 인천시민들한테 증명해야 했다. 그 일환으로 중앙부처 조직 하나를 끌어온다. 그것이 바로 강화문화재연구소 유치였다.
하지만 강화문화재연구소는 어느 누구도 반기지 않았다는 데 태생의 한계가 있었다.
첫째, 문화재청 어느 누구도 이를 반기지 않았다. 강화연구소는 신설이었다. 신설이니 4급 기관장 자리가 하나 늘고 그만큼 조직도 늘었다. 그럼에도 왜 문화재청은 이를 반기지 않았던가?
문화재청이 원한 것은 강화문화재연구소가 아니었다. 문화재청 산하 연구소 조직을 보면 현재는 국립문화유산원으로 간판을 바꾼 국립문화재연구소와 더불어 목포에 본부를 둔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가 투톱을 이룬다.
전자가 육상 문화재를 전담하는 반면 후자는 국내 유일한 해양문화재 전문조사기관이다. 소장은 같은 고공단이라 병렬 조직이다.
문제는 육상 문화재연구소가 지역 요소에 분신 역할을 하는 지방연구소를 둔 데 비해 해양연구소는 그 역사가 문화재연구소에서 분리했고, 또한 아직 역사가 일천해 그 중요한 지방연구소를 산하에 두지 못했다. 그러다가 변수가 발생했다.
충남 태안 앞바다가 해저보물들을 쏟아낸 것이다. 그리하여 태안 앞바다는 바닷속 경주라는 화려한 각광을 받으며 이를 기화로 지역사회에서도 이제는 태안에 어엿한 국립태안해양문화재연구소가 있어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었다.
이 태안연구소 신설이 당시 문화재청이 가장 크게 원한 조직확대 시나리오였다. 분위기는 좋았다고 나는 기억한다. 나도 태안해양연구소가 생기는 줄 알았다.
한데 웬걸? 느닷없이 강화문화재연구소를 만든다는 것 아닌가? 더 웃긴 건 그 직능을 보니 강화를 필두로 서울 지역까지 포괄한다는 것이었다.
잉? 서울이라면 말할 것도 없이 풍납토성을 말함인데 풍납토성 발굴을 전담해야 할 연구소 산하 조직이 강화연구소라니? 이 무슨 얼토당토 않은 이야기인가 했더랬다.
기왕 이쪽 지역 조사를 전담하는 육상연구소가 생긴다면 그건 국립서울문화재연구소여야 했다. 그럼에도 느닷없이 강화로 낙찰되었으니 이것이 바로 유정복의 공작이었다.
당시 인천시장 유정복은 직전 행안부 장관임을 배경으로 느닷없이 자신의 지역구인 강화도로 국립강화문화재연구소를 데려간 것이다.
여담이나 낙동강 오리알 된 태안에는 서해문화재과라는 목포 본부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산하 과 조직 하나가 던져진다. 지금 전시관도 운영하는 그 서해문화재과는 강화문화재연구소라는 유탄이 던진 상흔이다.
독립한 지방연구소가 되지 못하고 대신 그리 낙찰되어 목포에 있어야 할 과 하나가 짐을 빼고선 태안에다 임시 살림을 차린 것이다.
또 당시 내 기억이 정확한지 자신할 수는 없지만, 문화재청에서는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를 고공단 기관으로 격상하려 했다. 다른 연구소와 경주는 격이 맞지 않는다. 그 막강 위상에 걸맞게 경주문화재연구소장은 이제 고공단으로 격상해야 한다는 여론이 오래전부터 있었고 실제 노무현 정부 말기에는 그리하기로 했다가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고 그에 따른 정부 조직 슬림화 방향에 따라 없던 일로 유야무야되고 말았으니 말이다.
아무튼 강화연구소는 유정복을 제외한 그 누구도 태동을 반기지 않았다. 이 반대 움직임 주축 중 하나에 뜻밖에도 강화 지역 일부 인사가 있었다. 그 인사가 이번 대선과 동시에 진행된 지방선거에서 연임한 강화군수 유천호였다.
이 양반은 문화재랑 아무튼 악연이 있는 듯한데, 그 악연은 훗날 다른 기회를 빌리기로 하고 아무튼 문화재청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다. 사석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어 보니 문화재에 대한 반감이 무지막지했다.
그런 양반이 강화군수로 연임했으니 얼마나 강화문화재연구소가 가시 같겠는가? 잘 걸렸다 싶었는지, 이 참에 아주 강화연구소를 강화에서 쫓아내고 싶은 심정이 아닌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방 빼!!! 라고 외치지 않았겠는가?
느닷없이 던져진 강화연구소는 출발 자체가 기형이었다. 연구소 건물도 없이 덩그러니 강화군에 빌어붙어 그 건물과 땅을 무상으로 썼으니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이런 실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기재부는 그 독립을 위한 예산 책정을 차일피일 미루다가 이제서야 겨우 땅 하나 사게 해줬을 뿐이다.
그나저나 문화재청이 요새 안쓰럽기만 하다. 어쩌다가 명색이 중앙부처인 문화재청이 저리도 온통 전국 지자체한테 동네북 신세로 전락했단 말인가? 달라들지 않는 지자체가 없다.
그래서 내가 그리 입이 아프도록 지적했다. 지자체랑 관계 정말로 잘 구축해야 한다고 말이다.
문화재청이 그런 관계 설정을 잘 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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