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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연호로 다이쇼大正 7년이 되는 1918년, 새해 벽두인 1월 1일(양), 조선 경성에 살던 총독부 고적조사위원 야쓰이 세이이쓰(谷井濟一, 1890-1957)에게 연하장 하나가 날아든다. 발송처는 충청남도 부여 읍내에 있던 여관 '부여관扶餘館'.
여관에서 왜 연하장을 보냈을까?
지금도 그렇지만 100여 년 전 일제강점기 초기의 고적조사는 여러 명이 오랜 시간 외지를 떠돌아야만 하는 출장이었다. 어떤 때는 노숙도 감수해야하고, 강도 걱정도 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게다. 그러니 따순 밥 먹고 비 피할 지붕이 있는 숙소가 중요했을터. 부여 같은 시골에서는 더욱 더 그런 숙소가 간절했을지도 모른다.
시골 여관의 입장에서도 장기 투숙에 여러 명이 한꺼번에 자고 가는, 게다가 관官의 높으신 분인 고적조사위원들이 큰손 아니었겠는가. 그러니 새해에도 바라옵건대 부여 들르시거든 꼭 저희 여관에 묵어주십사-하고 연하장을 부친 것일 것이다. 야쓰이 자료 중에 이런 연하장이 수십 통 넘게 전해진다니 고객 유치를 위한 숙박업소의 경쟁심리가 피부로 느껴진다.
"이랏샤이마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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