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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 THESIS

머스트 팜 Must Farm, 3천년 전 화재가 남긴 영국의 폼페이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4. 3.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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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search reveals ‘cosy domesticity’ of prehistoric stilt-house dwellers in England’s ancient marshland


https://www.cam.ac.uk/stories/must-farm-prehistoric-stilt-house-dwellers?utm_source=facebook&utm_medium=social&fbclid=IwAR2lwcuAUHSrgpbg6gU28g964DiD20M81qTHuGRe6IOxDFCAtq3sKqyFzAQ

Research reveals ‘cosy domesticity’ of prehistoric stilt-house dwellers in England’s ancient marshland

Detailed reports on thousands of artefacts pulled from “Britain’s Pompeii” reveals the surprisingly sophisticated domestic lives of Bronze Age Fen folk, from home interiors to recipes, clothing, kitchenware and pets.

www.cam.ac.uk


 

이거 보면 평범하기 짝이 없는 마을 유적이다. 적어도 우리 고고학 눈에는 그렇다.


 
'영국의 폼페이 Britain’s Pompeii'에서 뽑아낸 수천 점 유물에 대한 상세한 보고를 통해 가정 인테리어부터 조리법, 의류, 주방용품, 반려동물에 이르기까지 청동기 시대 습지에 살던 원시부조민[펜포크 Fen folk]의 놀라울 정도로 정교한 가정생활을 알 수 있다.

거의 3천년 전 화염에 휩싸인 수변 마을 stilt village 유적에 대한 주요 보고서는 영국의 선사시대 습지 거주인들 fenlanders 의 일상을 전례 없이 상세히 보여주고 있다.

머스트 팜 Must Farm 은 기원전 850년경에 형성된 청동기시대 후기 정착지로, 케임브리지대학 고고학자들이 4개 큰 나무 둥근 집 wooden roundhouses 과 네모난 진입로 구조물 square entranceway structure 을 발굴했다. 이 구조물들은 모두 유속이 느린 강 수변에 건설되었다.

마을 전체는 강바닥 기준으로 약 2미터 상부에 있었고, 주요 주택 일부를 연결하는 보도가 있었고, 2미터 높이 날카로운 기둥 성책城柵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이 정착촌은 만든지 1년이 채 되지 않아 건물과 그 내용물이 아래 흙탕물로 무너져 내리는 대재앙으로 소실됐다. 화재와 물이 덮치면서 보존상태가 남달리 좋았다.

따라서 이 유적은 영국의 폼페이에 견준다. 

몇 년간에 걸친 연구 결과 이 초기 펜포크 사람들은 현대의 집과 비슷한 실내 배치, '꿀 바른 사슴고기 honey-glazed venison' 식사, 그리고 정교한 아마 린넨으로 만든 옷, 그리고 심지어 재활용 쓰레기통까지 포함해 놀랍도록 편안한 생활 방식을 누렸음이 드러났다.
 
 

A member of the Cambridge Archaeological Unit displays one of the Bronze Age pots unearthed at the Must Farm site.


아울러 이 유적에서는 길이 3m가 넘는 자루가 달린 창 뭉치, 덴마크와 이란 등지의 멀리 떨어진 곳에서 가져온 구슬로 장식한 목걸이, 그리고 심지어 많이 만져서 맨들맨들해진 인간 두개골도 출토했다.

이 두 개골은 아마도 사람하는 사람의 그것으로 잃어버린 유품일 것이다.

케임브리지 고고학자들에 의하면, 로마인들이 영국 해안에 발을 들여놓기 약 8세기 전, 이 유적은 이스트앵글리아East Anglia 늪지대에 산 사람들의 원형 건축물, 집 인테리어, 그리고 전반적인 가정생활의 독특한 "청사진"을 제공한다.

2015-16년 피터버러 Peterborough 근처 휘틀시 Whittlesey 가장자리에서 발견된 케임브리지 고고학팀(CAU)이 발굴한 머스트 팜 유적 전체 연구 결과는 두 가지 보고서로 출판되며, 둘 다 케임브리지 맥도널드고고학연구소  McDonald Institute for Archaeological Research에서 이용 가능하다.

"이 사람들은 자신감이 넘치고 뛰어난 주택 건설자들이었다.

그들은 서서히 물에 잠기는 풍경에 아름답게 작용하는 디자인을 구사했다"라고 CAU 공동 저자이자 발굴 책임자인 마크 나이트 Mark Knight는 말한다.

"이 유적을 발굴하면서 이들 청동기시대 주민이 이제 이제 막 떠났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 여러분은 늘어진 벽에 걸린 금속 도구의 반짝임에서부터 양조한 죽이 풍기는 날카로운 우유 냄새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세계를 거의 전부 보거나 코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산책로, 그리고 울타리와 함께 5개 건축물 흔적이 발견되었지만, 원래의 정착지는 이보다 두 배 넓었을 가능성이 높다. 20세기 채석 공사로 절반이 날아갔지만 말이다.

고고학도들은 이 유적이 가족 단위 최대 60명 주민을 수용했을 것이라고 한다.

이 공동체 아래를 흐르는 강은 얕고, 유속이 느리며, 초목이 무성했을 것이다. 이는 그을린 잔해가 떨어진 곳을 완충시켜 위에 서 있던 고고학적 "거울"을 만들어 고고학도들이 이 구조물들을 어떤 배치였는지를 지도로 그려낼 수 있게 했다.
 


그 공동체 아래로 흐르는 강은 얕고, 느리고, 초목으로 무성했을 것이다.

이는 불 탄 잔해가 그 자리에서 그대로 붕괴된 채로 묻히게 만드는 '거울' 효과를 냈으니, 이를 통해 연구자들은 그 구조물 레이아웃을 지도로 만들게 되었다.

머스트 팜은 기원전 850년경에 형성된 청동기 시대 후기의 정착지로,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고고학자들이 4개의 큰 나무 둥근 집들과 네모난 진입로 구조물을 발굴했다.

마을 전체는 강바닥에서 약 2미터 위에 서 있었고, 주요 주택의 일부를 연결하는 보도가 있었고, 2미터 높이의 날카로운 기둥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건물과 그 내용물이 아래 흙탕물로 무너져 내리는 등 대재앙으로 소실된 지 채 1년도 채 되지 않은 정착지였다. 진흙탕에 파묻혀 보존상태가 남달랐다.

그 장소는 "영국의 폼페이"로 묘사되어 왔다.

이 유적지에서 수천 점의 유물에 대한 수년간의 연구에 따르면, 초기 원시부족들은 현대의 집과 비슷한 국내 배치, "꿀을 바른 사슴고기" 식사, 그리고 정교한 아마 린넨의 옷, 그리고 심지어 재활용 쓰레기통까지 포함하여 놀랍도록 편안한 생활 방식을 가지고 있었다.

원형 주택 중 50평방미터에 이르는 한 집은 현대식 주택에 버금가는 뚜렷한 활동 구역이 방별로 나뉘었던 것으로 보인다.

CAU (Cambridge Archaeological Unit, 캠브리지 고고학단) 공동저자이자 고고학팀장인 데이비드 깁슨 David Gibson 은 "머스트 팜 Must Farm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는 것은 부동산 중개인이 청동기 시대 고택을 둘러보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부엌이 있는 1구역 [Structure One]을 네 구간으로 나눈 북동쪽 지점에서는 작은 컵들 cups과 사발 bowls, 그리고 커다란 저장용 항아리 storage jars 등 질그릇과 나무로 만든 용기들이 발견됐다.

심지어 어떤 항아리들 pots 은 공간 활용을 높이고자 안에다가 서로 켜켜이 쌓기도 했다. 

텅 빈 북서쪽은 아마도 잠을 자기 위한 공간이었을 것이고, 동쪽에는 금속 도구들이 보관되어 있었다.

동남쪽 공간에는 실패 bobbins, 방추자 loom weights 와 함께 천 조각이 많았다. 이것은 추가적인 빛이 직물 작업에 도움이 되었을 가능성이 있는 입구에 가까웠다.

원형 건물터 남서쪽 구역은 어린 양들을 실내에 두기 위한 공간이었다.

화재에 인간이 죽었다는 증거는 없었지만, 어린 양 몇 마리가 갇혀 산 채로 불에 탔다.

유골은 이 어린 양들이 태어난 지 3개월에서 6개월이 지났음을 보여주었는데, 이는 이 정착촌이 늦여름이나 초가을 중 어느 시기에 파괴되었음을 시사한다.

이 목조 건축물이 여전히 "녹색" 이라는 증거는 건축이 약 9개월에서 1년 전에 이루어졌음을 확인시켜 준다.
 


가재 도구들은 눈에 띠게 일관성이 있다. 둥근 집들에는 각자  “공구 세트 tool kit”가 있어, 그에는 나무를 자르고 다듬는데 사용하는 도끼라든가 머리를 자르기 위한 구부러진 '가우징'은 물론이고 작물을 수확하는 낫도 있었다. 

건물 대부분은 물레 spindle whorls에서부터 실패에 이르기까지 직물을 만들기 위한 기계가 있었으니, 그 분포 양상을 보면 섬유를 함께 꼬는 과정인 "잣기"가 세 개 둥근 집에서 이루어졌음을 시사한다 할지라도, Structure One은 이 원사가 직물로 변환된 곳이었다. 

이에서 찾은 직물들은 유럽에서 발견된 이 시기 가장 좋은 것으로, 그 구체 양상을 보건대 의류에 부드럽고 거의 벨벳 같은 느낌을 주었을 "pile tufts"라든가 깔끔한 솔기와 밑단을 위한 “튜브형 셀비지 tubular selvedge”와 같은 것들이 있다.
 


이들 원형 집 지붕은 3개 층으로 구성됐으니, 잔디 위에 단열 짚을 얹고 점토로 완성하여 따뜻하고 방수가 되게 하면서도 통풍이 잘되게끔 했다.


CAU 프로젝트 고고학자 크리스 웨이크필드 박사는 "추운 겨울, 바람이 울타리를 가로질러 지나간다 해도 이 원형 집들은 꽤 아늑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구조물 4는 더 작은 사각형 건물로 정착지 입구 역할도 했던 것으로 보인다.

커다란 나무 양동이가 그 안에서 발견됐으니 그에서는 훼손된 청동 제품 몇 개와 닳은 도끼 머리가 들어 있었으니 다른 도구로 만들기 위한 재활용품이었다. 


각 건물터 주위에서는 "쓰레기 더미 middens", 위에 있는 스틸트 마을에서 버려진 쓰레기의 후광, 부러진 화분, 도살된 동물의 뼈, 그리고 "코프로라이트" 또는 화석화한 배설물이 있었다.

일부 인분에서는 기생충 알이 발견됐는데 그 분석을 통해 저들이 
장 기생충들과 싸웠음을 보여준다.

구조물 1 바로 아래에 있는 진흙에서는 손상되지 않은 도끼가 발견됐으니, 이는 아마도 행운의 징표, 또는 건축물이 완성될 때 어떤 종류의 영혼에게 바치는 제물이었다고 보인다.
 

스트럭처 원에서 발견된 도끼

 
수천 년 동안 진흙 속에 묻혀 있었음에도 많은 유물에는 여전히 일상 생활 흔적이 고스란히 남았는가 하면 아울러 주민들이 화재를 피하고자 갑작스레 버린 소유물도 발견되었다.

예컨대 점토에는 제작자 지문이 찍힌 질그릇에는 여전히 마지막 식사, 즉 염소나 붉은 사슴으로 추정하는 동물성 지방이 섞인 밀알죽이 담긴 상태로 발견되었으며 젓는 데 사용한 나무 주걱이 그릇 안쪽에 놓인 상태로 수습됐다.

크리스 웨이크필드 Chris Wakefield박사에 따르면 “거주자들이 죽 토핑으로 사용하고자 고기 주스를 저장한 것으로 보인다” "이 사이트는 우리에게 청동기시대 아침 식사와 구운 저녁 요리법에 대한 힌트를 제공한다."

"사발과 항아리에 대한 화학 분석 결과 사슴과 같은 반추동물 고기와 함께 꿀 흔적이 나타났으니, 이는 이러한 성분이 결합되어 선사시대 꿀을 바른 사슴 고기 형태를 만들었음을 암시한다."

이 수변 마을 거주자들은 좋아하는 고기 부위가 따로 있었으니, 예컨대 종종 구울 때 멧돼지 앞다리만 가져오는 일도 있었다. 선호한 수생 요리에는 강꼬치고기 [pike] 와 도미 bream가 있다.
 

구글링하면 pike는 이런 물고기라 한다.

 

나무 주걱과 함께 젤라틴질 밀밀 스튜 또는 죽이 든 질그릇

 
여러 개 작은 개 동물 두개골을 보면 이들 동물이 아마도 애완용으로 사육되었을 뿐만 아니라 사냥할 때 먹이를 쫓는 데도 도움이 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개는 주인 식사에서 나온 찌꺼기를 먹었음을 보여준다.

머스트팜 Must Farm 주민들은 반경 2마일 이내 지역 삼림 지대를 이용해 멧돼지와 사슴을 사냥하고 양을 방목하며 밀, 아마와 같은 작물과 건설용 목재를 얻었다. 수로는 이런 것들을 운송할 때 필수였다.

오래된 나무를 베어 속을 비운 9척 통나무 카누 배 유적이 상류에서 발견되었으니, 그것을 만든 연대는 청동기 이래 철기 시대에 걸치거니와 머스트 팜 발굴품과 동시대 배도 일부 있다.

Wakefield는 “이 지역이 짧은 기간 운영되는 사이에도 갈대 늪을 거쳐 삼림 지대까지 보트 여행이 여러 번 이루어졌을 것”이라며 "여름에는 모기떼를 헤쳐나아가야 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머스트팜 출토 유물 대부분은 현대 우리 삶에서 우리가 사용하는 TV 리모콘이나 커피 머그에 해당하는 청동기시대 일상용품이었다. 하지만 일부 품목은 귀중품이었을 것이다.
 
유리 glass, 호박 amber, 미사암 siltstone, 그리고 셰일암 shale으로 만든 구슬 목걸이 necklace of beads가 불구덩이 속에서 수습됐다. 실제 장식용 구슬이 현장 바로 건너편에서 발견되기도 했다.

머스트팜 유리구슬 49개 중 한 개를 제외하고는 모두 북유럽과 동유럽은 물론 중동까지 멀리 떨어진 곳에서 온 것이다.

Wakefield가 말하기를 “이러한 품목은 일련의 소규모 거래를 통해 점차 수천 마일을 가로질러 간 것이다”고 했다. 

연구자들은 청동기시대가 폭력적일 수 있고 유적 구조 측면을 보면 이것이 명백히 방어적인 반면, 그 위치는 자원과 많은 관련이 있을 수 있다고 말한다.

현장에서 발견된 최대 길이 3.4m 창과 칼은 경쟁 그룹과 마찬가지로 동물 사냥에도 사용될 가능성이 높다.

반복적인 접촉으로 맨질맨질한 성인 여성 두개골을 비롯한 몇 구 인간 유해가 회수되었다.

이는 이것이 전쟁이 아닌 사랑의 유품이었을 수 있다는 신호일 수 있다.

CAU 데이비드 깁슨 David Gibson은 “정착지를 휩쓴 화재은 왜 일어났는지는 아마도 결코 알려지지 않을 것”이라고면서 "어떤 사람들은 거주자들이 얕은 바다에서 꽤 쉽게 회수할 수 있었을 물품을 가져오지 않았기 때문에 공격을 받았을 수도 있다고 말한다"고 한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것이 사고일 가능성이 더 높다고 생각한다.

원형집 중 하나에서 내부 화재가 발생하면 몇 분 안에 촘촘하게 짠 구조물들로 화재가 퍼질 것이다.

“이런 정착지는 아마도 한 세대 정도 수명이었을 것이고, 그를 건설한 사람들은 분명히 이전에도 비슷한 부지를 건설한 적이 있을 것이다. 화재가 발생한 후 다시 시작되었을 수도 있다”고 Gibson은 덧붙인다. 

"이런 정보를 함유할 정착지 유적이 펜랜드 전역에 묻혀 우리가 찾기를 기다리고 있을 수도 있다."

110만 파운드 규모인 이번 주요 발굴 프로젝트는 Historic England와 건물 공급업체인 Forterra가 자금을 지원했다.

유적 위치와 향후 보존에 대한 우려로 기록 및 분석을 위해 유해는 수습됐다.
 

 
Published 20 March 2024

All images by Cambridge Archaeological Unit other than the illustrations of family life and material harvesting, which are copyright of Judith Dobie/Historic England.
 
Cambridge Archaeological Unit

We are delighted to announce the release of the Must Farm pile-dwelling settlement publications. Volume I is a synthesis covering the landscape, architecture and occupation of the site while Volume II comprises in-depth studies and specialist reports.

Both are available Open Access to read online and Volume I is also available to purchase as a physical book from Oxbow Books.  

Volume I is available here: https://doi.org/10.17863/CAM.106697 

Volume II is available here https://doi.org/10.17863/CAM.106698

Published by the McDonald Institute for Archaeological Research the project was carried out by the Cambridge Archaeological Unit of Cambridge Archaeology and funded by Historic England and Forterra UK.

We’ll be highlighting some of our favourite findings and discoveries from the report over the coming days and we hope you enjoy reading more about this incredible si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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