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dern boy에 대한 소리옮김이 식민지시대 문건을 보면 거의 예외없이 모던 뽀이다. bus 역시 뻐스가 많았다.
그러다가 언제부터인지, 아마도 외래어 표기법이 생기면서가 아닐까 하는데 예외없이 모던보이 버스가 되었다.
어쩌면 종래의 한국어 표기에서는 볼 수 없는 이런 유별난 표기를 통해 이것이 외래어임을 증명하고자 했는지도 모른다.
한국어 ㅂ과 ㅍ은 입술소리다. 그에 해당하는 영어로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b와 p 역시 입술터짐 소리다. 이외에도 ㅃ이 이에 속한다.
영어에서는 f와 v가 순음 계통에 속하나, 이것은 한국어에는 없다. 한데 이건 음성기호라는 사실이 곧잘 망각되곤 한다. 편의상 가깝게 들리는 음을 근사치로 대응한데 지나지 않는다.
한국어를 모국어로 쓰는 사람들은 ㅂ과 ㅍ을 확실히 구분한다. 더불어 ㅃ도 확실히 구분한다. (하긴 몇몇 경상도 사람은 '씨발'을 발음하지 못해 시발이 되기도 하고, '쌍쌍파티'도 '상상파티'가 되긴 하더라만....)
그럼에도 왜 boy는 뽀이, bus는 뻐스로 적었을까?
이 사람들이 무식해서가 아니다. 외려 지금보다 더욱 소리에 민감한 흔적으로 나는 본다.
한국어를 모국어로 쓰는 사람들은 의식적으로 발음하지 않는한 영어를 모국어로 쓰는 사람들이 발음하는 boy를 제대로 발음할 수 없다.
이걸 흔히 '보이'로 발음하나, 실은 이 자체도 문제가 적지 않아 영어 boy는 음성학에서 말하는 단음절어라, 보이라 적을 수는 없다. 한국어 '보이'는 '보'와 '이'의 씰러버스가 벌써 2개가 된다.
나아가 어두에 오는 소위 말하는 무성음 계열 b는 단순히 ㅂ에 대응하지 않는다. 터짐의 강도가 한국어 ㅂ보다 훨씬 강해 실은 p에 가깝다. 나 역시 이를 의식하지 않으면, boy를 영어를 모국어로 쓰는 사람들 수준으로 발음할 수는 없다.
한국어 ㅂ에 견주어 boy의 b는 실은 훨씬 더 입술을 딱 붙였다가 발음하니, 요새는 발음을 직접 들을 곳이 많으니 한번 비교해 보면 된다.
왜 모던 뽀이인가?
단순히 그네들 영어실력이 지금의 우리보다 떨어졌기 때문이 아니다. 식민지시대 혹은 양놈들을 처음 접한 그 시기 사람들은 b과 ㅂ이 다르다는 점을 확실히 알고 있었다는 흔적이라고 나는 본다.
한데 이번에는 거꾸로 영어를 모국어로 쓴 사람들은 때려죽어도 어두에 오는 무성음 계열 한국어 ㅂ을 구별할 수 없다는 문제에 봉착한다.
이는 실은 다른 어두 무성음에서도 광범위하거니와 '대구'를 Taegu로 쓰는 까닭은 그네들은 때려죽어도 어두 무성음 한국어 ㄷ을 발음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부산을 요즘은 Busan으로 적지만(이것도 순전히 한국에서 주도한 표기다), 저놈들은 그 어두음 ㅂ을 발음할 수 없기에, Pusan으로 적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한국어 우수성의 증좌라며 한글로는 모든 표기를 할 수 있다는 믿음이 횡행한다.
새빨간 거짓말이다. 모든 언어를 표기한다 해서 그 언어가 다른 언어에 견주어 더 과학적이라는 증거는 하늘에도 땅에도 없다. 그리고 한국어 무슨 모든 표기를 가능케 한다는 말인가?
언어는 각기 존재성을 지니며, 인류가 실험한 무수한 정보와 역사를 내장한다.
모던뽀이라는 말 하나에도 새로운 문화를 접한 흔적이 오롯이 있다. (2017. 11.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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