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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현장

신주단지가 된 최치원, 정읍 무성서원井邑武城書院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19. 5.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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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치원을 정말로 신주단지로 모신다는 정읍 무성서원井邑武城書院을 찾은 때는 봄날이었음에도, 한여름 같은 날이라, 나른함이 물밀듯 밀려들었다. 

이 그림 같은 풍광 저편 어딘가에 무성서원이 똬리를 튼다. 



지금은 풍광이 사뭇 변해 지금은 동네사람들 휴게하는 자리, 혹은 버스 휴게실 정도겠거니와, 저곳에 벌러덩 자빠졌다. 

이 일대가 그 옛날에 녹록치 않은 지위를 차지했음을 보여주는 안내판이라랄까? 주변으로 저런 석불입상과 삼층석탑이 있다는 사실은 현장 방문을 통해 비로소 알았으니, 결국 무성서원 다음으로 저들을 찾아 나섰다. 


무성武城은 이 일대를 지칭하는 이전 지명이라, 그러고 보니, 중앙 정계를 떠난 치원 公이 이곳 태수인가를 지냈다는 흔적을 어딘가에선 본 적 있는 듯하거니와 

실상이 어떻든, 그는 조선 유학의 시원을 연 인물 중 한 명으로 꼽히거니와, 그런 내력에 착목한 조선시대 지역사회가 최치원을 우리 고장 인물으로 묶어둘 요량으로 그를 쳐받들기 시작했으니

무성서원은 그런 탄생배경을 삼으리라. 


아마도 도지 몇 섬으로 이곳을 관리하는 듯한 이 동네 어떤 할매 한 분 마침 현가루 올라 나무 바닥을 닦는다. 

그를 따라 올라 전후좌우 사방을 두리번 하거니와 

사뭇한 풍광보다는, 사뭇한 풍광보다는 

내가 보지 아니한 무수한 명멸明滅이 왔다리갔다리 

이것이 싯타르타가 말한 제행무상이던가? 


나는 언제나 그랬다. 

언제나 제행무상이었다. 



나무 바닥에 등가죽 뱃가죽 교대로 대고 뒹굴며 

내가 예는 왜 왔던가 물으니 

아무도 말은 없고 

썩소 한번 지어주고는 먼지 털고 

일어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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