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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와 함께한 나날들

국립세계문자박물관, 단 한 번의 예외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4. 3.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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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내 기억에서 사라져 냉각 망각한 일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나는 딱 한 번을 제외하고선 어떤 자리 혹은 직책을 달라한 적 없다.

그런 까닭이기도 하겠지만 그래서 내가 어떤 자리를 가야 하겠다 나대는 인간들을 증오한다.

내가 저 자리 가야겠다 나대는 인간 중에 제대로 된 인간 못 봤다. 능력도 재주도 없는 놈들이 내가 이런 자리 가겠다 나대는 꼴을 보면 솔까 구토난다.

그래서 남들 보기엔 그럴 듯한 자리 한 번도 못했는지도 모르지만 불러주면 나한테 크게 손해나지 않으면 응락했고 안 불러준다 해서 따진 적 한 번도 없다.

내가 기억하는 딱 하나의 예외가 있다. 일전에 잠깐 언급은 한 듯한데 국립세계문자박물관 운영위원 자리가 딱 그렇다.

이건 내가 달라 해서 간 자리다. 운영위원? 그거 암것도 아니다. 기억에 스무명 남짓한 그 무수한 위원 중 한 명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힘도 없다. 운영위라 해서 연중 두어번 하는 회의가 전부다.

그럼에도 나는 저 자리를 달라했다. 당시 박양우 장관한테 직접 부탁했다. 저 자리 꼭 가고 싶으니 넣어달라고. 그래서 그 운영위 2기에 내가 들어갔다.

기자 혼자 들어가기 머쓱해서 서울신문 서동철을 끼워서 들어갔다. 언론홍보 쪽 전문가라는 이름으로.
 



이것도 우여곡절이 있었다. 누군지 모르겠지만 반대가 있었다. 이유는 성격이 너무 강하고 무엇보다 반 박물관 성향이 있다는 누가 그랬단다.

저 자리를 내가 들어가야겠다고 자청한 이유가 있다. 내가 보니 배가 산으로 가고 있었다. 저러다 언제 개관할지도 몰랐다. 그걸 나로선 바로잡고 싶었고 기왕 만들기로 한 박물관 제대로 했음 싶었다. 이런 뜻을 박장관께 전달했고 그걸 박장관은 받아들였다.

그 많은 운영위원 중 한 명이었지만 나는 내 역할을 그런대로 했다고 본다.

나는 내 역할이 산으로 가는 논의의 방어였다고 생각했다. 꼭 박물관이 아니라 해도 보통 그런 신생기관 설립이 늦어지는 까닭은 외압 때문이며 그 외압은 놀랍게도 운영위 자체에 있음을 나는 알았다.

그 운영위의 지나친 간섭을 배제하는 일이 내가 해야 하는 일이라고 나는 생각했고 실제 그랬다.

이런 운영위 가 보면 천차만별이라 각자 생각에 따라 박물관을 주물하려 한다.

이건 이래야 하고 저건 저래야 한다 호통치거나 요구하는 일이 대부분이라 그대로 다했다가는 언제 개관할지 모르는 형국이 빚어진다.

그때마다 나는 항상 말미쯤 마이크를 잡고선 이런 말을 했다.

지금까지 위원님들 말씀 다 반영하면 박물관 걸레 됩니다. 믿고 맡깁시다. 저들 실무진들 다 이 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들이고 전문성 우리보다 백배나 뛰어난 사람들입니다. 저들이 마음껏 자기 꿈을 그리도록 우리가 도와줘야 합니다. 믿고 맡깁시다.

이런 공략이 나는 나름 주효했다고 본다.
 



작은 밑거름이었지만 저 설득은 그런대로 보람은 있어 그런대로 순탄하게 박물관이 일정대로 공기 내에 건립하게 되었다고 나는 자평한다.

이는 비슷한 시기에 출발했지만 국립현대문학관과 비교해 보면 안다.

문학관? 지금도 준공 삽도 못 뜨고 있다.

남들이야 아니꼽게 생각하는 이 없지는 않겠지만, 유독 저 문자박물관만큼은 그런 까닭에 나는 내 박물관이라 생각한다. 

저 박물관은 김태식 박물관이다. 이건 꼭 남기고 싶어서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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