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자가 누차 여기에 경화사족이라는 것이
조선후기 일정 시점에 대두된것이 아니고 고려시대 이후
단한번도 경화사족이라는 것이 우이를 놓친적이 없고,
재지사족은 아주 일시적으로 빛을 본적이 있지만
사족으로서의 영향력이 현재 크게 과장되어 있다는 이야기를 여기 썼었다.
조선후기사를 바라보는데 있어,
문중이 보는 주관적 시각이 알게 모르게 조선후기사를 바라보는데 크게 영향을 주고 있으니,
어느 특정 가문의 입장을 반영하는 것을 비하인드 스토리인양 들고 나와 객관적 사학으로 포장하는 경우도 본다.
적어도 사학이라면 문중사학에 휘둘려서는 안될 것이다.
사학이 의지할 곳은 문헌 밖에는 없다.
문중의 비하인드 스토리는 의존해서는 안되며
특히 야사류는 야사일뿐 이것을 가지고 지남을 삼아서는 안된다.
문중의 입장에서 쓴 이야기들,
특히 재지사족의 입장에서 쓴 이야기들은 필연적으로 자기 집안을 옹호할 수 밖에 없고
자기 집안을 크게 포장하는 경향이 있어 객관적 시각이 필요하다 하겠다.
이러다 보니 조선시대 사족들을 일컬어 국반이니 뭐니 하며 어느 집안이 대단했다고 포장하는 경우도 보는데,
이런 집안의 계보를 유심히 찾아보면, 조선왕조 국성 일개 파의 계보 수준도 안되는 경우가 많다.
이런 경우에는 또 전가의 보도 처럼 유림의 명망이니 절개니 하는
객관적 잣대를 대기도 어려운 이야기를 들고 나와 우리는 사림의 존경을 받던 유종이라는 이야기를 많이들 하는 경우를 보는데,
솔직히 필자가 그동안 찾아본 결과를 보면 동의하기 매우 힘든다.
조선은 누가 뭐래도 조선왕국은 국성들,
그리고 경화사족들이 500년 동안 움직인 나라이다.
지방 재지사족의 입장이 해방이후 지나치게 과대평가되어 이야기 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되,
단순히 자기 집안 자랑이라면 얼마든지 들어줄수 있겠지만
이런 입장이 적어도 학문의 영역에는 넘어와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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