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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보 이야기

족보의 신뢰도는 어떻게 검증하는가 (1)

by 신동훈 識 2026. 2.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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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조방목(규백육본)

 

연구 목적으로 이용할 때 족보의 신뢰도는 어떻게 검증할 수 있을까. 

필자의 경험으로 아래에 약간 써본다. 
 
1. 아주 예외적인 몇몇 종족을 빼면, 우리나라 고려시대의 세계는 확인하기 힘든다. 

조선시대에 크게 번성한 종족도 고려시대에는 단선계보를 가지고 있는 정도에 불과한 경우가 많고, 

그 사람들도 공식기록에서 확인 불가능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고려사 고려사절요 등에 이름이 나오면 확인이 가능하겠지만, 

고려사에 나오는 사람이 족보에서 전혀 안보이는 경우도 무척 많다 (오히려 나오는 경우보다 더 많은 듯)

이는 조선시대에 번성한 씨족들이 고려시대에 번성한 씨족과는 다른 계통의 혈족 (같은 동성이라 해도)이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그만큼 무신란 이전과 이후의 우리나라 지배계층에는 급변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이복남李福男 만력 식년 무과방목


 
2. 조선 시대 전 시기에 있어 족보의 정확도를 검증할 최고의 자료는 역시 방목이다. 

방목 중에서도 문과방목은 정확도 최고수준을 보여준다. 

장담할 수는 없지만, 문과 급제자라고 족보에 기록된 사람들 중, 

문과방목에서 검출되어 나오지 않는 경우 뭔가 문제가 있는 기록이라 보면 된다. 

사마방목의 경우 (소과급제자), 문과방목 정도의 완전한 자료는 아니라고 하지만 (70프로 정도 모여 있다고 한다)

그래도 왠만한 집안 소과급제자는 정말 급제자가 맞다면 사마방목에 다 걸려 나온다. 

문제는 무과방목이다. 

무과급제자는 방목에 검출되어 나오는 경우가 매우 희귀하다. 

족보에 있는 무과 급제라는 기록이 날조일 가능성도 있고, 

방목이 부실해서일 수도 있는데, 어느 쪽이 문제인지 알 수가 없다. 

어쨌건 방목의 기록이 나오면, 위로 3대조까지, 그리고 외조까지 이름과 직역이 확인된다. 

신빙성이 높은 족보의 경우, 방목의 기록과 거의 백프로 일치한다. 

차이가 있다면 생원을 진사로 표기 해 놓은 정도인데, 

같은 소과 급제자라도 평판에 있어 진사를 좀 더 높게 쳤던 까닭이 아닐까 싶기도 하지만, 

어쨌건 어차피 소과 급제자로 마찬가지이니 큰 차이라고는 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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