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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S & MISCELLANIES

민음사와 갈라선 이문열, 그는 소설가가 아니라 사상가요 역사가다

황교안과 만난 이문열


소설가 이문열씨가 민음사와 동반관계를 끝냈다고 한다. 

그 소식이 오늘 우리 공장을 통해 공식화했으니, 아래 기사가 그것이다. 


이문열, 민음사와 '40년 동반항해' 끝냈다

송고시간 | 2019-06-09 0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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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열씨는 내가 학창시절을 보낼 즈음, 하나의 문화현상이었다. 그만큼 그가 일으킨 선풍은 컸다. 

특히 이제는 줄거리조차 가물가물한 《사람의 아들》은 나한테는 우리 문학계, 소설계에도 이런 작품, 이런 작품을 쓰는 작가가 있구나 하는 충격파가 자못 컸다. 


그러다가 나는 이문열을 잊고 지냈다. 나 스스로가 문학을 멀리한 까닭도 있거니와, 그래 맞다, 먹고 살기 바빠서였다. 

그런 그가 느닷없이 나한테도 무시할 수 없는 사람으로 등장하기도 했으니, 이른바 보수-진보 논쟁이 거세게 일기 시작한 2000년대 초반 무렵, 이문열은 기자로서 내가 커버해야 하는 인물이기도 했다. 


그는 스스로 그리 말하기도 했거니와, 실제로도 보수 진보를 가르는 성향에서 보면 분명 보수다. 

그런 보수 성향은 마침내 정치권에도 일정 부분 영향을 끼쳐, 보수당 공천심사 등에도 관여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렇다면 내가 보는 사상가로서의 이문열을 어떠한가? 

이문열을 향한 비난과 비판이 무지막지하다는 걸 나는 잘 안다. 그가 언젠가 토로했듯이 작가로서는 치욕적이게도 분서갱유를 당한 일도 있을 정도였으니 오죽하겠는가?  


그럼에도 나는 보수와 진보를 통털어 이문열을 이 시대 가장 뛰어난 사상가의 한 사람으로 본다. 어줍잖은 진보론자이거나, 혹은 그럴 듯한 구변으로 이른바 진보 수괴를 자처하는 그 어떤 사상가보다 이문열의 사고는 깊고도 크다고 본다. 


왜 그러한가 나더러 보기를 하나 들라 하면, 나는 서슴없이 아래 내 기사에서 언급한 이 글을 꼽는다. 


이 글을 대하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이문열을 대중성을 꽤 확보한 뛰어난 소설가 정도로만 알았다. 

하지만 이 글을 대하고는 내가 한대 얻어맞은 듯했다. 

그는 어떤 사상가, 어떤 역사가보다 역사를 보는 눈이 적확했고, 그 시각이 분석적이었으며, 그 깊이는 음울하리만치 깊었다. 


그는 그 어떤 사상가에 견주어서도 사고 깊이가 탁월한 사람이다.   

이 글을 접한 이후, 나는 그 어떤 피상적인 비난도 이문열에게 퍼붓지 아니한다. 


그가 보수당 공천심사위원인가 뭔가로 들어간다 했을 때, 


첫째, 안 들어갔으면 했고 

둘째, 들어간다 했으니, 저런 보수라면 아주 좋다 


고 생각했다. 




덧붙이건대 이문열은 단순히 진보 보수라는 시각으로 판단할 인물은 결코 아니다. 

그보다 훨씬 더 크다. 


그는 사상가이며 역사가다. 


이런 역사가는 일찍이 없었다. 


황교안과 만나 담소했다 해서, 그걸로 비난할 수 없는 깊이가 있다. 


2003.02.26 14:30:13


이문열씨, "정치적 목적이 역사를 왜곡"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스스로를 "구제받을 수 없는 보수사관에 골수까지 물든 한 소설가"로 규정한 이문열씨가 정치적 목적이나 특정 이데올로기에  의해 역사가 조작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씨는 최근 발간된 계간 역사교양지 「한국사 시민강좌」(책임편집 이기백) 32호에 기고한 '역사와 관점'이라는 글에서 그러한 대표적 사례로 신라에 의한 삼국통일과 동학운동 두 가지를 꼽았다.


그는 이 글에서 "(문학가인) 리얼리스트가 포착한 리얼리티도 결국 작가에게 선택된 것들로 구성된 리얼리티의 일부에 지나지 않듯이 역사가 추구하는 진리라는 것도 '실제 그러함' 자체이기 보다는 역사가에게 선택된 사실들로 구성된 그  무엇"이라고 하면서 문학과 역사학의 같은 생명줄로 리얼리즘을 꼽았다. 



이씨는 그러나 "이제 사관의 문제는 사실 뒤에 숨어 있는 역사가의 주관을 넘어 당대인의 역사의식을 좌우하는 척도로서 엄격하게 규명되어야 할 것이  되어버렸다"면서, 당대인에 의해 왜곡된 역사로 우선 신라에 의한 삼국통일을 꼽았다.


이문열씨는 10년전 쯤 어떤 후배 소설가가 이름있는 잡지에 김유신과  삼국통일을 소재로 한 소설을 연재하다가 일부 독자층의 반발로 연재가 중단된 사례를  소개하면서 김유신과 삼국통일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비판했다.


이씨는 "삼국통일에 대한 부정적 시각의 원인 중 가장 큰 것은 민족주의적 관점이었다. 이민족인 당나라 군대를 끌어들여 동족인 고구려와 백제를 멸망시켰다는 게 신라를 비난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이씨는 "1300년 전 신라에게 고구려와 백제를 상대로 민족적  동질성을  느끼지 못했다고 비난하는 것은 영어를 알지 못했던 조선시대 사람을 무식하다고  나무라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삼국통일과는 반대적인 관점에서 그 시각이 긍정 일변도로 급격히 변한  사례로 동학운동을 든 이문열씨는 봉기, 의거, 전쟁 등의 의미부여를 거쳐 "솟아오른  기세로 보아 머지않아 (동학운동은) 혁명으로 불리게 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그는 동학운동에는 혁명적인 외양과 요소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동학란'으로 불려온 것처럼 민란(民亂)이라는 성격 또한 지워버리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동학운동에 내재된 다양성이라는 측면에서 이문열씨는 동학군에 맞선 의병이 있었다는 사실과 동학도가 저지른 각종 폭력행위 등을 증거로 들면서 "그런데도  갈수록 그 조건들이 무시되고 특정한 방향으로의 과장과 미화가 이뤄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부정적인 측면은 고의적으로 은폐되고 있는 듯한 의심까지 든다"고 말했다. 


이 두 가지 사례를 근거로 이문열씨는 "요즘 역사학계를 보면 뻔한 정치적 의도가 사관을 위장하여 목소리를 높이고 명백한 사실도 그 사관을 유지하기 위해  멋대로 염색되고 재단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면서 "부디 그런 느낌이 쓸데없는  민감함이거나 구제받을 수 없는 보수사관에 골수까지 물든 한 소설가의 기우로 끝나기를 빈다"는 말로 끝맺음을 하고 있다. 

taeshik@yna.co.kr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