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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S & MISCELLANIES

[발굴 품질 개선을 위한 문화재청의 역할(1)] 위대한 0.19%의 힘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3. 12.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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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래는 영남지역문화재조사연구기관협의회와 중부지역문화재조사연구기관협의회가 주최하고 한국매장문화재협회(현재는 한국문화유산협회로 개칭)가 후원해 2017년 12월 13일(수) 13:00~18:00 대전 유성 레전드 호텔(3층 금강홀)에서 열린 '매장문화재 국가부담과 공공성 확보를 위한 토론회' 내 발표문이다. 

발표문이야 어차피 파일 통째로 올려놔도 읽는 사람이 없으므로, 챕터별로 나누어 싣는다. 

그때랑 시대상황이 달라진 지금, 그때 이야기가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하겠지만, 저에서 표출한 문제의식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판단하며, 무엇보다 지금의 나를 지배하는 매장문화재에 관한 생각들을 집약한다 생각하는 까닭에 새삼 상기 차원에서 전재한다. 
물론 저에서 인용한 통계수치라든가 하는 대목은 대체가 필요할 수도 있다.

이런 한계를 염두에 두고 음미했으면 싶다. 

그럼에도 저 발표는 한국매장문화재협회(현재의 한국문화유산협회)이 의뢰한 까닭에, 일방적으로 그네들 편에 섰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음을 잘 안다.

물론 그런 측면이 없을 수는 없다. 그 자리는 한매협을 비판하기 위한 자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아가 저 시대 문화재계 증언이라는 측면도 없지는 않다. 오죽 저 무렵 복잡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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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 품질 개선을 위한 문화재청의 역할

                                               김태식(연합뉴스) 


목차
          Ⅰ. 0.19%의 힘
          Ⅱ. 규제완화의 희생물
          Ⅲ.“문화재 문제의 근원은 조사단”
          Ⅳ. 문화재는 선택이 아닌 필수
          Ⅴ. 문화재청은 매장문화재 보호에 나서라
 

 
 
Ⅰ. 0.19%의 힘  

간밤에 2018년도 정부 예산안이 진통 끝에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에 의하면 내년도 정부 총지출은 428조8천억 원으로, 당초 정부안(429조원) 대비 1천억 원이 감소했다. 이 중에서 문화재청이 쓰라고 할당한 돈은 8천17억 원이다. 대략 반올림하면 정부 전체 예산안에서 문화재청이 차지하는 비중은 0.19%다. 

이를 타전하는 관련 언론 소식 중에 ‘SOC(사회간접자본) 예산 증액의 법칙은 올해도 유효…1조3천억원 순증’이라는 보도가 있다. 이에 의하면 내년 SOC 예산으로 총 19조 원이 확정됐으니, 이는 이명박 정부 출범 후 사대강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SOC 예산을 3조6천억 원가량 늘린 2009년 이후 9년 만에 가장 큰 증가 폭이라 한다. 단순 수치로 비교하면 문화재청 연간 예산보다 더 큰 폭이 SOC 예산으로 증액됐다는 것이다.  

연말이라 그런지, 각 지자체별 내년도 예산 편성에 대한 소식이 언론에서는 줄을 잇는다. 최종 확정된 규모인지는 내가 미쳐 확인하지 못한 곳도 있지만, 근자 이런 소식들을 추려보면,

예컨대 충북 충주시가 예산 1조원 시대를 열었다 하며, 내 고향 경북 김천시 역시 내년 예산안으로 1조50억 원을 편성했다 한다. 경남 양산시도 1조 원 시대를 돌파했다 하고, 서울에 인접한 경기 안양시는 1조3천489억 원을 편성했으며,

강원도에서는 춘천시 내년 예산안 규모가 1조2천억 원이라 한다. 뿐인가? 1조원 시대가 언제일지 감감하기만 한 문화재청으로서는 더욱 부럽기만 보이겠지만, 평창 동계올림픽 국내 후원·기부금액이 벌써 1조원을 돌파했다는 소식도 있었다. 

애초 문화재청 정부 예산안은 7천746억 원이었다가 국회 심의 과정에서 271억 원이 증가했다. 정부 전체 예산 규모는 정부안보다 줄었는데도, 문화재청 예산은 소폭이긴 해도 늘어났다.

이런 현상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지난 20년간 내가 지켜본 정부 예산 편성 과정을 보면 문화재청 예산은 거의 언제나 정부안보다 최종 예산이 보통 200~300억 원 규모로 증가했다. 이른바 쪽지 예산이 끼어드는 까닭이다.

나는 이에서 우리 문화재의 역설을 본다. 개발에는 걸림돌이 된다 해서 곳곳에서 얻어터져 존재 기반까지 위협받는 문화재가 한편에서는 국회의원을 비롯한 정치인들에게는 지역구에서 생색내기용 쪽지 예산 편성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매장문화재협회가 후원하고, 영남지역문화재조사연구기관협의회와 중부지역문화재조사기관협의회가 공동 주최하는 오늘 이 자리 ‘매장문화재 국가부담과 공공성 확보를 위한 토론회’는 내가 알기로 조승래를 비롯한 여․야 국회의원 17명이 2017년 11월 15일 발의한 ‘[2010182] 매장문화재 보호 및 조사에 관한 법률(이하 매장문화재보호법) 일부개정법률안’이 직접 촉발한 것으로 안다.

구체적으로는 이 개정법률안이 일방적으로 사업시행자들에게 유리한 내용을 담았으며, 그런 까닭에 의원 발의 형태로 이를 밀어붙이고자 하는 문화재청을 성토하고자 하는 목적이 있다고 안다. 

내가 정부 예산에서 문화재청이 차지하는 비중을 새삼 논급하는 까닭은 먼저 우리 사회 전반에서 문화재가 처한 냉혹한 처지를 다시금 인식했으면 하는 소박한 생각에서다. 단순가중치로 매기면 문화재가 우리 사회 전반에 차지하는 비중은 0.19%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대목은 그 0.19%가 적어도 문화재 관련 문제에 국한하는 한 문화재청이 전제군주 혹은 폭군에 버금하는 절대의 영향력을 행사하는 밑천이라는 사실이다.

물론 문화재청은 아니라고 볼멘소리를 하곤 한다. 수조 원, 혹은 수십 조 원을 주무르는 다른 거대 정부부처에 견주어 국무회의 참가 자격도 없으며, 전체 예산이라 해 봐야 충주․김천․양산만도 못하고, 한강에 다리 하나 건설하는 비용에 지나지 않는 외청이 무슨 힘이 있느냐고 반발할지도 모른다.

나 역시 문화재 기자였던 시절 초창기에 이런 문화재청의 ‘읍소’ 논리에 상당히 압도당하면서, 그래 문화재 예산은 대폭 늘어나야 한다고 맞장구를 친 적이 많음을 고백한다. 

하지만 조선시대 관위 체계에서 정5품 혹은 정6품에 지나지 않는 이조전랑이 직급이 높아 막강한 힘을 행사하지는 않았다. 비근한 예로 박근혜 정부시절, 이른바 문고리 삼인방이 직급이 높아 국정을 농단한 것은 아니다. 그들의 직급과 직책은 1급 대통령 비서관이 지나지 않는다. 

문화재청 역시 부나 처 단위 다른 정부부처는 물론이요, 그 하위 16개 외청 중에서도 예산 규모나 그 청장 의전 서열에서 꼴찌를 다툰다고 하지만, 단군조선 이래 최대 국책사업 중 하나로 꼽혔다는 경부고속전철의 경주 도심 통과 구간을 외곽으로 돌려세웠는가 하면, 김영삼 정부의 주된 지역 개발 공약 중 하나인 경주경마장을 눈앞에서 무산케 했고, 4만 명이 운집하는 서울 시내 대표적 인구 밀집 지역인 서울 송파구 풍납동에서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는 일을 막은 것은 다름 아닌 그들의 존재 이유인 문화재였다.

이런 점들로 보면 정부 예산 0.19%가 지닌 힘은 결코 작다고는 할 수 없다. 아니, 그 힘은 위대했고 지금도 위대하다. 

그렇게 작지만 강한 문화재가 곳곳에서 위협받고 있다. 이런 현상이 비단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건만, 그런 간난을 꿋꿋이 견디며 살아남은 문화재가 갈수록 힘을 잃어간다.

그 원인이야 여러 가지를 꼽을 수 있겠지만, 주최 측이 오늘 나에게 할당한 주제는 문화재청의 역할 부문이다. 더 쉽게 말하면, 문화재청이 중심을 잡지 못하고 공사시행자들의 논리에 떠밀리는 바람에 문화재가 점점 더 위기국면에 몰린다는 것이다.

나 역시 주최 측의 이런 판단에 일정 부문 동의하기에 이 자리에 섰다.

무엇이 문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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