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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쓴 글에서 발해의 동경용원부東京龍原部야 말로 대조영 일가의 세거지였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이제 "동경용원부" 영역을 보자. 한규철 선생 책에 올라있는 그림인데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것을 퍼왔다.
용원부 서남쪽에는 남경이 있다. 대략 남경남해부는 북청 함흥 일대로 고려의 북쪽 경계를 이루던 지역에 해당한다. 남경남해부와 동경용원부 경계는 어디쯤이었을까?
당연히 이전에도 이 두 지역의 지리적 경계였던 마운령 어디쯤으로 생각할 수 있겠다.
발해가 망한 후 고려는 남경남해부 일부를 점거하고 천리장성을 쌓은 상태였다고 할 수 있겠는데, 윤관의 북벌은 동경용원부와의 경계까지 진출하여 남경남해부 전체를 석권한 전역이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바로 그 진출 경계선이 진흥왕 순수비가 서 있는 지점이었다고 하겠다.
발해시대, 남경남해부와 동경용원부 경계는 진흥왕 순수비가 서 있는 그 언저리 어딘가였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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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의 용원龍原이라는 이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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