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선 어릴 적에 누에를 쳤다. 이른바 양잠이라는 농업이다.
지금보다 조금 더 지난 시점, 뽕나무가 파릇파릇 이파리를 올릴 즈음이면 씨를 깠다. 그것이 누에로 발전하고, 한창을 쳐먹다가 나중에는 고치집을 짓고 그 안에 들어가 누에는 번디기가 된다.
누에는 방 양쪽 시렁을 치고 그에다가 키웠다. 누에는 온도에 민감하므로 불을 때야했다. 잠은 어디서 자는가? 누에 시렁을 양쪽에 걸친 방 가운데 골에서 잔다. 더러는 시렁 밑에 기어들어가 자기도 했다.
한데 이 누에란 것이 더러, 아니 자주 방바닥으로 떨어졌다. V라는 영화가 있다. 파충류 외계인 영화다. 한데 이 누에가 퍼런 뽕입을 쳐먹어 그것이 터지면 퍼랬다. 푸른 피를 쏟은 것이다. 한데 자다 보면 떨어진 누에가 등때기에 짓눌리고 사방 난리를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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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서울로 유학 오니 신촌 거리에서 번디기를 팔고, 그걸 맛있다고 우거적우거적 쳐먹는 사람들을 보고는 기겁을 했다.
세상에 서울에서는 번디기를 쳐먹네? 하도 맛있게들 쳐먹어서 나도 한번 먹어봤다. 그 자리서 오바이트 했다.
누에 얘기 나온 김에 누에 칠 무렵이면 온동네가 뽕 전쟁이었다. 누에를 쳐먹이려면 정신없이 뽕을 따다 날라야 했다. 초반기에는 뽕을 따다가 먹이지만, 조금 더 자라고 왕성해지기 시작하면 이걸로는 택도 없다. 그래서 뽕은 줄기째 잘라서 실어나르기 마련이다.
이를 위한 뽕나무 가시개가 따로 있었다.
이 무렵이면 닥나무도 베어와서 한지를 만들곤 했다. 가끔 닥나무 이파리를 먹이기도 한다. 뽕이 없을 때 말이다. 뽕은 절대량이 부족하기 마련이다. 특히 뽕 기갈은 누에가 갓 자라기 시작하는 무렵이면 극심했다.
이때 뽕이파리는 겨우 새순을 내는 때이므로 부족한 뽕을 마련하러 산뽕이라 해서 산에 나는 뽕을 따러 온산을 뒤지곤 했다.
(2015. 3. 21)
***
뽕이파리 돋기 시작한 무렵 그에 격발해 갈리지 않았나 한다.
뽕 이라면 이미숙 주연 영화를 떠올리며 그에서 야릇한 상상을 하겠지만
또 수천년전 시경 이래 뽕을 소재로 삼은 시가 다 야동이었지만
내가 겪은 뽕 혹은 뽕밭은 온통 고통이었다.
누에농사는 여타 농사가 다 그렇듯이 피와 땀을 앗아가는 고역 중의 상고역이었다.
엄마 아부지는 그 고역을 하며 살아남고자 버둥쳤다.
뽕엔 낭만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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