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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S & MISCELLANIES

번데기를 쳐먹는 야만, 고역으로 얼룩진 누에농사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1. 3.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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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에선 어릴 적에 누에를 쳤다. 이른바 양잠이라는 농업이다.


지금보다 조금 더 지난 시점, 뽕나무가 파릇파릇 이파리를 올릴 즈음이면 씨를 깠다. 그것이 누에로 발전하고, 한창을 쳐먹다가 나중에는 고치집을 짓고 그 안에 들어가 누에는 번디기가 된다. 


누에는 방 양쪽 시렁을 치고 그에다가 키웠다. 누에는 온도에 민감하므로 불을 때야했다. 잠은 어디서 자는가? 누에 시렁을 양쪽에 걸친 방 가운데 골에서 잔다. 더러는 시렁 밑에 기어들어가 자기도 했다.

 

한데 이 누에란 것이 더러, 아니 자주 방바닥으로 떨어졌다. V라는 영화가 있다. 파충류 외계인 영화다. 한데 이 누에가 퍼런 뽕입을 쳐먹어 그것이 터지면 퍼랬다. 푸른 피를 쏟은 것이다. 한데 자다 보면 떨어진 누에가 등때기에 짓눌리고 사방 난리를 쳤다. 

 

 



내가 서울로 유학 오니 신촌 거리에서 번디기를 팔고, 그걸 맛있다고 우거적우거적 쳐먹는 사람들을 보고는 기겁을 했다.

세상에 서울에서는 번디기를 쳐먹네? 하도 맛있게들 쳐먹어서 나도 한번 먹어봤다. 그 자리서 오바이트 했다.


누에 얘기 나온 김에 누에 칠 무렵이면 온동네가 뽕 전쟁이었다. 누에를 쳐먹이려면 정신없이 뽕을 따다 날라야 했다. 초반기에는 뽕을 따다가 먹이지만, 조금 더 자라고 왕성해지기 시작하면 이걸로는 택도 없다. 그래서 뽕은 줄기째 잘라서 실어나르기 마련이다.

이를 위한 뽕나무 가시개가 따로 있었다. 

이 무렵이면 닥나무도 베어와서 한지를 만들곤 했다. 가끔 닥나무 이파리를 먹이기도 한다. 뽕이 없을 때 말이다. 뽕은 절대량이 부족하기 마련이다. 특히 뽕 기갈은 누에가 갓 자라기 시작하는 무렵이면 극심했다. 


이때 뽕이파리는 겨우 새순을 내는 때이므로 부족한 뽕을 마련하러 산뽕이라 해서 산에 나는 뽕을 따러 온산을 뒤지곤 했다.

 

(2015. 3. 21)

***

뽕이파리 돋기 시작한 무렵 그에 격발해 갈리지 않았나 한다.

뽕 이라면 이미숙 주연 영화를 떠올리며 그에서 야릇한 상상을 하겠지만

또 수천년전 시경 이래 뽕을 소재로 삼은 시가 다 야동이었지만

내가 겪은 뽕 혹은 뽕밭은 온통 고통이었다.

누에농사는 여타 농사가 다 그렇듯이 피와 땀을 앗아가는 고역 중의 상고역이었다.

엄마 아부지는 그 고역을 하며 살아남고자 버둥쳤다.

뽕엔 낭만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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