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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벼루 덕후 유득공이 채록한 명품 벼루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2. 1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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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벼루〔東硯〕

유득공柳得恭(1748~1807), 《고운당필기古芸堂筆記》 제3권

김도산金道山이라는 자는 홍주의 아전이다. 벼루 만드는 솜씨가 뛰어나 서울에 떠돌며 살 때 사대부들이 다투어 불러 갔으니, 평생 만든 벼루가 아마도 수천 개는 넘을 것이다. 나도 그에게 검은 벼루와 푸른 벼루 두 개를 만들게 하였다. 김도산이 벼루 만드는 석재를 품평하여 이렇게 말하였다.

“남포석藍浦石이 가장 유명하지만 너무 검고 어두운 것이 애석하고 화초 무늬도 그다지 뛰어나지 못합니다. 위원석渭原石은 그 청색은 흡주석歙州石 같고 자주색은 단계석端溪石 같아 상품에 속합니다. 허나 은은한 청색에 흰색을 띠고서 두드리면 맑은 소리가 나고 옥처럼 온윤하며 발묵이 잘 되는 종성鐘城의 치란석雉卵石만은 못합니다. 평창의 자석紫石과 고령의 현석玄石도 좋습니다. 단천의 황석黃石은 너무 단단하고, 풍천豐川의 청석靑石은 너무 거칠며, 안동의 마간석馬肝石이 가장 열악하니 벼루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이를 기록하여 《동연보東硯譜》를 보충한다.


[주-D001] 동연보東硯譜 : 실제의 책이 확인되지는 않으나 조선의 벼루를 주제로 한 유득공의 저술로 추측된다. 유득공의 《경도잡지》 〈풍속〉에서도 벼루의 재료로 남포의 오석연烏石硯, 위원의 자석연紫石硯 등을 언급하고 있다.

ⓒ 한국고전번역원 | 김윤조 (역) |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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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루 모양 고려시대 묘지명



벼루 명장 김도산이 본래는 벼루 전문 장인이었다가, 나중에 이것으로 소문 나서 나중에는 홍주 관아 아전이 되었음을 엿본다. 홍주 지방공무원으로 취직하게 된 힘이 벼루였음을 추찰한다. 이 증언이 나한테 우선 심상치 않다.

벼루 하나 잘 만들면 지자체 학예연구사로 특채됨을 본다.

다음으로 이 품평을 통해 당시 조선사회에 통용된 벼루 중요 산지를 정리한다.

등장 순서로 보면 남포석藍浦石·위원석渭原石·흡주석歙州石·단계석端溪石·종성鐘城 치란석雉卵石·평창 자석紫石·고령 현석玄石·단천 황석黃石·풍천豐川 청석靑石·안동 마간석馬肝石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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