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되기까지 걸린 시간 10년이나, 원수로 돌변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불과 하루면 족하다.
어느 시대라고 별 달랐겠는가?
하지만 우리는 지금 극단에 치닿은 불신의 시대를 살고 있다는 건 분명하다.
불신이 극단에 이르면 매양 나오는 구호가 "우리가 남이가"이며, 그것이 더욱 극단으로 치달으면 "믿을 건 그래도 피붙이밖에 없다"는 말이지만 내가 겪은 바로는 이 역시 가당치도 않은 말이다.
배신은 이 남이가에서 생겨나며, 배신은 피붙이에서 싹을 틔운다.
나는 "우리가 남이가"를 믿지 않으며, 피붙이 혹은 천륜이라는 말도 더는 믿지 않는다.
심지어 자식에 대한 사랑도 맹목적인 부모의 사랑이라는 것도 끊임없는 학습과 세뇌의 효과라는 걸 나는 절실히 느낀다.
한비자는 인간 심성의 저부, 폐부를 찔렀다.
줄곧 한 말이지만 한비자가 처단되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까닭은 누구나 알면서도 감히 발설하지는 말아야 할 비밀을 폭로한 까닭이다.
얼마전 박신혜 김래원 주연 '닥터스'라는 드라마가 있었다.
부패한 병원장 아들을 대신하여 그보다 더 부패한 늙은 아버지가 감옥에 들어가는 장면을 보았다.
옥중 면회 장면을 작가나 피디가 무슨 생각으로 그리 다루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이 부패한 부자가 서로 독박을 쓰겠다고 다투면서 우는 장면이 있었다.
눈물이 매마른 나는 그 장면이 그토록이나 감동일 수 없었다. 모르겠다. 나이가 들어가서인지, 자꾸만 그 아버지에게서 선친을 보아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내가 학습한 천륜의 한 장면이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엄마는 내가 대학 입시를 준비하던 시절
정한수(이것도 표준말로는 정화수로 한다더만) 매일 집 감나무 밑에다가 놓고는 못난 아들놈 합격시켜 달라 삼신할매께 백일을 빌었다.
내 엄마의 사랑만이 천륜의 표상이라는 어줍잖은 얘기는 하고 싶지 않다. 그래도 그것이 학습이건 아니건 천륜은 자고로 이러해야 한다고 나는 본다.
내가 저 아들놈에게 이리할 수 있을까? 묻는다면 나는 못한다.
한데 내 모친은 손주놈에게 또 그리하더라.
불신이 국가적 사태이며 사회 현상인가?
그걸 나는 모르겠다.
뒤르켐이라면 틀림없이 사회현상으로 봤을 테지만, 그 단안을 할 능력이 나에게는 없다.
어제는 잠들기 전 심심해서 그러했는지 모르지만, 내가 포스팅한 페이스북 과거 사진들을 죽 살펴봤다.
그것이 내 삶의 얼마를 반영하는지 자신은 없다. 그러고 보니 나한테 정작 중요한 사람들은 절반 이상은 그에는 없더라.
하지만 그 등장 인물 중 적어도 몇 번 이상 등장하는 사람들이 한때는 나랑 절친이거나 그에 가까웠던 사람들이었던 것만큼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런 사람들이 과연 지금은 몇이나 남았는가를 문득 생각해 봤다.
원수로 돌변한 사람도 있고, 원수보다 못하게 된 사람도 있다.
반백을 넘기는 지금, 이제는 새로운 사람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아는 사람들을 관리할 때가 아닌가 한다.
이래저래 생각이 많은 아침이다. (2016. 12.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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