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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춘동의 도서문화와 세책

세상의 지식과 상식을 담은 세책본 《고담낭전》

by taeshik.kim 2020. 3.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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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춘동 강원대 국어국문학과 


*** 얼마전까지 필자는 선문대 소속이었다가 근자 이직했다. 


고소설 《고담낭전》은 미천한 신분의 소년 ‘담낭談囊’이, 어른이자 고을 수령인 ‘태수(太守)’와 만나 ‘지혜 겨루기’ 문답問答을 나누고, 문답 내기 끝에 마침내 소년이 승리한다는 내용을 담은 작품이다. 이본에 따라서 이후에 큰 상이나 관직을 받거나 태수의 딸과 혼인하는 내용이 더 기재된 것도 있다.


세책본 <고담낭전>의 첫 면(2019ⓒ)



고소설에서 이처럼 어른과 어린이의 대결, 어린이의 승리로 끝나는 작품은 《공부자동자문답公夫子童子問答》이  있다.  두 작품은 고소설사에서 매우 이례적인 작품으로 평가받아 그동안 이 작품의 형성 과정, 구조와 의미, 문체적 특징 등을 구명究明하는 노력들이 이어져왔다. 하지만 속시원히 이 작품의 형성을 해결해줄 만한 단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최근 이 소설이 돈을 받고 사람들에게 책을 빌려주는 세책본貰冊本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책은 현재 중구 산림동에서 영업했던 세책점의 대본貸本으로, 사진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을미(1895년) '산림동' 세책점에서 사람들에게 대여해주던 것이다.


세책본 <고남당전>의 마지막 면(2019ⓒ)



이 작품은 '고소설'이라고 하기엔 정말 재미없는 내용으로 꽉 채워져 있다. 성인으로 추앙받는 공자孔子가 왜 성인인지, 역대 제왕은 누구며, 효자, 충신, 문장가, 의술가, 잡술가, 명필가, 미녀 등은 누구인지, 그리고 하늘과 땅의 크기, 바다의 깊이는 얼마인지, 마지막으로 인간은 왜 태어나고 죽는지, 자식은 어떻게 해야 얻을 수 있는지 등을 두 사람이 주고받는 문답을 쭉 정리해 놓고 있다. 

그러나 가만히 이 내용을 들여다보면, 이 소설에서 주고받는 내용은 사실상 이 세상 사람들, 특히 '지식인'이나 '교양인'으로 자처하는 이들이 꼭 알아야 할 핵심 지식이자 상식이다. 이 소설의 가치는 바로 여기에 있다. 꼭 알아야 하고 공부해야 하지만 사실 자세히 알기는 귀찮은 것... 이런 것들을 바로 사람들에게 익숙한 소설로 만들었다. 


그리고 이 소설은 바로 당시 책을 통해서 '돈'을 벌려는 '세책업자'의 손에서 '탄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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